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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번역가, 피트니스 DJ, 사이버 장의사 어때요

중앙일보 2014.05.28 00:54 경제 2면 지면보기
젊은이들이 창직(創職·Job Creation) 시대를 열고 있다. ‘키스펫 스튜디오’를 만든 임한빛(33)·고희정(29·여) 대표는 반려동물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준다.


지난 주말 서울 양재동의 한 스튜디오. 임한빛(33)·고희정(29·여)씨가 “몽실아”를 외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사진 찍는 게 낯선 몽실이가 카메라를 보는 순간을 잡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몽실이는 세 살짜리 수컷 요크셔테리어. 임씨와 고씨는 반려동물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키스펫 스튜디오’의 공동 대표다. 강아지·고양이뿐만 아니라 이구아나·앵무새·뱀 등 이색 반려동물 사진도 찍는다. 고 대표는 “반려동물 사진을 찍을 곳이 별로 없다 보니 제주도·울릉도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고 전했다.

[연중 기획] 젊은이에게 길은 있다
젊은이들의 창직 이야기
동물 스튜디오 낸 임한빛·고희정씨
현수막으로 가방 제작 박미현씨 …



 작심하고 반려동물 전문 스튜디오를 열려던 것은 아니었다. 임 대표가 대학 졸업반이던 2009년 ‘사람·사물 말고 동물을 찍어 오라’는 과제가 우연한 계기가 됐다. 문득 ‘남들이 찍지 않는 사진을 찍으면 기회가 더 많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임 대표는 “창직은 바로 희소가치가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8년 동료 3명과 함께 재활용 전문기업 ‘터치포굿’을 만든 박미현(29·여) 대표는 ‘재활용’을 넘어 ‘새활용’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터치포굿에선 다 쓴 현수막·광고판·폐타이어 등이 독특한 디자인을 입고 가방·필통·핸드백 등으로 재탄생한다. 터치포굿은 재활용품을 쓰기 때문에 재료비는 거의 안 든다. 저소득 미취업자들과 수작업을 진행하면서 어려운 사람을 위한 일자리도 만든다. 구매자에게는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제품이 팔릴수록 ‘1석3조’다. 지난해 서울시 환경상 대상을 받은 박 대표는 “우리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세상에 도움이 된다고도 하니 되레 우리가 고마운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창직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세계 미래학자들은 임종설계사, 탄소배출권 거래중개인, 디지털 고고학자(디지털 기술로 유물 발굴), 최고 경험 관리자(고객에게 최고의 경험 전수), 유전자 상담사(유전자 정보로 건강관리) 등을 유망직종으로 선정했다. 특히 유연한 근무를 가능케 한 정보기술(IT) 발전은 다양한 창직이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을 뒷받침해준다. 온라인에 있는 개인 기록을 삭제해주는 일을 대행하는 ‘사이버 장의사’나, e메일 등을 통해 동영상을 받고 여기에 나오는 말을 옮겨 치는 ‘디지털 영상 속기사’ 같은 직업이 탄생한 게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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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봉’ 김광호(37) 대표는 생활 속 상품 아이디어를 인터넷에서 거래하는 ‘아이디어 오디션’을 운영한다. 지난해 한 회원이 ‘뷔페용 접시에 구멍을 파서 국그릇을 끼우게 하자’는 의견을 냈다. 뷔페 식당에서 국그릇과 음식 접시를 따로 들어야 하는 불편을 덜기 위해서다. 그는 디자인 전문가의 의견을 결합해 음식과 국물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곰발접시’를 출시했다. 지금까지 수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김 대표는 “수익은 아이디어 제안자와, 아이디어를 보완한 전문가, 그리고 운영업체인 우리가 3분의 1씩 나눠 갖는다”며 “인터넷·디지털 기술이 진화한 덕분에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비즈니스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전통산업과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도 있다. 2007년 창업한 웹디자인 업체인 ‘스튜디오헤이데이’는 UX(사용자 경험)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하던 소규모 IT 회사였다. 하지만 2010년부터 전통 제조업인 가구에 웹디자인을 접목한 디자인 가구업체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그 덕분에 자본금 3000만원에 불과하던 회사는 현재 연매출 35억원, 직원 35명의 중견 벤처기업으로 컸다. 노동균(32) 대표는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닌 ‘어떻게 디자인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산업 영역 구분이 이젠 무의미해졌다”고 강조했다.



 창직은 한국의 산업구조를 기술·자본 중심의 산업경제에서 혁신과 아이디어가 결합한 창조경제로 업그레이드시킬 수단으로 기대를 모은다. 현실적으로도 청년 취업난을 해결할 수단으로 꼽힌다. 27일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한국의 취업유발계수(10억원을 투자할 때 직간접적으로 늘어나는 취업자 수)는 1995년 24.4명에서 2011년 12.3명으로 줄었다. 취업계수(부가가치 10억원당 취업자 수)도 1970년대 111.2명에서 2010년대 25.3명으로 급감했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성균관대 경영학과 박명섭(한국무역학회장) 교수는 “전통 제조업의 의미가 사라지면서 이젠 성장이 고용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고용이 성장을 만드는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며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창직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창직을 하면 만족감은 더욱 높아진다. 20∼30대 청년들은 삶의 성공 기준으로 주관적 만족감(36.2%)을 금전적 보상(27%)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대통령 직속 청년위 조사)



 박성익(30) 대표가 운영하는 ‘사람 도서관’에서는 책 대신 사람을 빌려준다. 만나고 싶은 ‘사람책’(사람)을 신간 서적 예약하듯 주문하면, 그가 특정 장소를 찾아가 자신의 경험담과 사연을 직접 들려준다. 여행이나 연애 스토리, 왕따나 일진 경험, 고아나 편부모 가정에서 성장한 얘기 등 개개인의 성장경험이 독자에게 전달된다. ‘성공’이 아닌 ‘성장’에서 삶의 소중함을 배우는 게 목표이기에 유명인은 사람책에서 배제한다. 박 대표는 “매출과 순이익은 적지만 아쉽지 않다”며 “사람책을 읽고 치유돼 또 다른 사람책이 된 주변 사람들이 더 큰 기쁨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손해용·채윤경·김영민·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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