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대한민국 총리 값이 11억인가

중앙일보 2014.05.28 00:10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 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안대희 사건으로 한국 사회는 다시 한번 불쾌한 검증을 치르게 됐다. 사건이 불쾌한 건 국민의 기대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국민검사라는 애칭을 줄 정도로 국민은 그를 믿었다. 그는 올라갔던 만큼 떨어지고 있다. 이런 낙폭은 처음이 아니다. ‘새 정치’ 전도사를 자처한 이는 구 정치의 늪에 빠져 있다. 안대희마저 이러니 ‘새 인물 주의보’라도 발령해야 할 참이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는 3가지 오류를 범했다. 우선 반(反)개혁적이고 비(非)순리적인 방법으로 거액을 모았다. 그리고 일단 ‘돈의 길’을 택했으면 그 길로 가야 했다. 그런데 그는 급하게 선회했다. ‘공직과 명예’까지 얻으려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민의 건강한 판단력을 시험하고 있다. 11억원을 내놓으면 허물이 덮어지리라 생각했다. 이는 미봉책이다. 떳떳하면 11억원이 아니라 110억원이라도 지켜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내역부터 밝히고 사죄하는 게 도리다. 11억 헌납으로 태풍을 피하겠다니 이 나라 총리 값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가.



 대검 중수부장을 거쳐 대법관까지 안대희는 ‘공직과 명예의 길’을 택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해 스캔들 하나 없었다. 그는 강북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살았다. 월급쟁이라면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세태로 보면 ‘법조 고위직’으로선 이례적이었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7월 노선 변경의 갈림길에 섰다. 그가 변호사를 개업하려 하자 몇몇 친구가 만류했다고 한다. 전관예우 논란에 걸릴 수 있으니 해외연수가 낫겠다는 권유였다. 안대희는 그러나 변호사를 택했다. 그러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 폭풍처럼 돈을 모았다. 일찍부터 그는 개혁파 인사로 분류됐다. 하지만 변호사로 질주할 때 그에게 개혁은 없었다. 법조계를 지배하는 낡은 관행을 그는 고스란히 접수했다. ‘5개월 16억원’은 전관예우 풍토가 아니면 불가능한 액수다. 질주가 거세니 판단력이 약해졌다. 국세청 세무조사감독위원장이면서도 그는 기업이 법인세를 깎으려는 소송을 맡았다.



 그뿐만 아니다. 그는 대기업 고문료라는 관행도 챙겼다. 대기업들은 검찰 고위직 출신을 앞다투어 고문으로 계약한다. 거물급이면 보통 10곳 넘게 고문을 맡는다고 한다. 고문료 수입만 한 달에 수천만원이다. 기업에 민원이 생기면 고문 변호사는 후배 검사들에게 전화를 걸어준다. 안대희 변호사는 주변에게 “대기업에 있는 친구들의 부탁에 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가 실제로 후배 검사들에게 전화한 일이 없어도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대표적인 개혁가로 분류되던 국민검사가 그 명성을 이용해 고문료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반(反)개혁적인 것이다.



 안대희가 왜 ‘돈의 길’을 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대선 때 박근혜 후보와 충돌한 후 그는 자신이 중용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무슨 생각이었든 선택은 그의 자유다. 하지만 일단 노선을 바꾸면 그는 새 길로 매진해야 했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양다리를 걸쳤다. 전관예우와 대기업 고문에 몸을 던지고도 공직의 길을 기웃거렸다. 개혁가답지 않은 무책임이다. 그는 대통령에게 이미 자신이 노선을 바꿨음을 알리고 정중히 사양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가 덥석 총리직을 수락하는 바람에 대통령과 국가는 혼란에 빠졌다.



 ‘11억 헌납’을 보면 그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알 수 있다. 그는 11억원이 “국민 정서에 비추어 너무 많은 액수”라고 했다. 그렇지 않다. 문제는 액수가 아니라 내용이다. 많이 벌어 세금을 많이 내면 애국자다. 그런데 당당하지 못한 돈이어서 문제인 것이다. 그는 내역을 공개하고 사죄부터 해야 했다. 헌납은 다음 문제다. 헌납한다고 덮어질 일도 아니지만···. 그는 수입 중 4억여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3억은 세월호 사건으로 총리 교체 가능성이 생긴 후였다. 안대희의 얕은 전략은 끝이 어디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또다시 고통스러운 시간을 마주하게 됐다. 그는 ‘5개월 16억원’을 검증하지 못한 걸 자책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책보다 중요한 건 판단이다.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와 ‘이해관계 취업’을 개혁하는 게 중요한 과제가 됐다. 안대희는 이런 개혁을 주도할 자격이 있을까.



 안 후보자는 인생 최대의 결단을 앞에 두고 있다. 총리가 되면 그는 대통령에게 장관을 추천해야 한다. 자신처럼 전관예우에다 이해관계 고용관계로 거액을 번 사람이 있다고 하자. 번 돈만 내놓으면 그를 추천할 것인가. 청문회가 열리면 안대희는 구차한 변명과 풀 죽은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초라한 ‘국민검사’를 국민이 지켜봐야 하나. 그렇게 총리가 된들 공무원들이 그를 존중할 것인가.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