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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라이벌] (14) 낙지 - 서민과 함께한 매운 맛

중앙일보 2014.05.28 00:05 강남통신 10면 지면보기
종로는 예부터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다양한 가게와 음식점이 분주하게 손님을 맞았지요. 1960년대 형성된 낙지골목도 그 중 하나입니다. 특유의 매콤한 맛으로 서민 입맛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70년대 불어닥친 재개발 바람으로 사라지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긴 곳도 많습니다. 이번 맛대맛 라이벌에 소개할 낙지집 중 한 곳은 재개발 이후 강남에서 새 터전을 잡은 집이고, 다른 한 곳은 3번이나 옮기면서도 종로에 남은 집입니다.


압구정점 '무교동 유정낙지'-강남 넘어온 무교동 낙지
"맛은 50년 전 딱 그 맛이죠"
서린낙지-"종로 식당은 종로에 있어야죠"
55년째 종로를 고집하는 이유

▶ 1·2위 어떻게 선정했나



江南通新은 레스토랑 가이드북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 천덕상 롯데호텔 무궁화 셰프,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배한철 총주방장, 식도락동호회 에피큐어 최유식 대표, 요리연구가 강지영·문인영씨의 추천을 받아 6개 식당을 후보로 추렸습니다. 이후 후보 식당 6곳을 4월 16일자 江南通新에 공지한 후 일주일 동안 독자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무교동 유정낙지와 서린낙지가 각각 1, 2위로 뽑혔습니다.



라이벌 ⑮ ’불고기’ 결과는 6월 11일 발표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냉면 투표 방법은 15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50년 이어온 ‘무교동 맛’ 살리려 주문 들어온 만큼만 바로 요리

신메뉴 개발도 … 매운맛 없는 낙지 튀김, 낙지 탕수육 등 선보여

“낙지를 매운 음식으로만 여기지 않았으면”




“장인·장모님이 1965년 무교동에서 장사를 시작하셨어요. 10년쯤 운영하다가 재개발 때문에 강남으로 이전하셨대요. ‘무교동’ 낙지집이 ‘강남’으로 갔으니,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당시엔 새로운 장소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는군요.”



 무교동유정낙지 압구정점을 운영하는 안범섭 사장 말이다. 강을 건넌 유정낙지는 강남역 뉴욕제과(현 에잇세컨즈 매장) 뒤쪽에 자리 잡았다. 장인은 그 곳에서 10여 년 더 장사를 한 뒤 막내동생에게 운영을 넘겼고, 30년 동안 유정낙지 본점 역할을 했다. 그러다 강남역점 운영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안 사장이 2011년 압구정점을 열었다. 이곳이 본점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현재 유정낙지라는 이름을 쓰는 가게는 수십 곳이지만 원조 유정낙지가 운영하는 직영점은 압구정점 한 곳뿐이다.



유정낙지에선 소스를 미리 만들어 놓지 않고 손님이 주문하면 살짝 데친 낙지에 고춧가루를 넣어 바로 볶는다.
 안 사장은 50년 전 맛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정낙지 맛의 핵심은 단지 낙지만이 아니라 고춧가루 빻는 방식에 있는데, 이를 계속 고집하고 있다는 거다. 이곳 고춧가루는 밀가루처럼 아주 곱다.



 “원래 장인어른의 형님이 무교동 낙지골목에서 장사를 시작했대요. 손님이 꽤 많으니 장인어른도 그 앞에 가게를 하나 더 낸 거죠. ‘정이 있는 곳’이란 뜻으로 유정(有情)이란 상호를 써서요. 그런데 장사를 좀 해보니 낙지 볶을 때 고춧가루가 너무 커서 잘 묻지 않더래요. 맛도 좋지 않고. 그래서 그걸 두번 세번 계속 더 빻아 곱게 만든 거죠. 써보니 양념이 잘 배고 맛도 더 좋아졌다더군요. 이때부터 10번 이상 빻은 고운 고춧가루만 쓰기 시작했대요.”



 장인은 주재료인 낙지는 천일염에 한 시간 동안 치대 겉은 탱글탱글하고 식감은 더 쫄깃하게 만들었다. 안 사장은 이 기술을 배워 그대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한가지 더. 양념소스를 절대 미리 만들어두지 않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딱 그만큼만 바로 요리를 한다. 손님이 한번에 몰릴 때면 음식 나오는 시간이 오래 걸려 원성을 듣기도 하지만 이 원칙을 꼭 지킨다. 그래야 옛 맛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차림도 마찬가지다. 그때 정취를 내려고 아직 단무지를 올리고 감자탕을 메뉴에서 빼지 않았다.



 “장모님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옛날엔 반찬이 별로 없어 단무지 하나 내놓으면 손님들이 그걸 낙지볶음 양념에 넣고 싹싹 긁어서 먹곤 했다고 해요. 마치 설거지 하듯 말이에요. 다들 그렇게 어려웠던 시절이었으니까.”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사람이 오면 장인은 간혹 음식을 그냥 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또 종로통에서 학생끼리 싸움이 나면 달려가서 해결해 주기도 할 만큼 정이 넘쳤다. 안 사장은 “주변에서는 그런 장인을 보고 ‘저 양반은 퍼주다 망하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며 “하지만 그런 정 덕분에 ‘그 시절에 정말 감사했다’며 아직까지 찾아오는 단골이 많다”고 말했다.



 안 사장이 가게를 처음 낼 때 원래 있던 감자탕을 없애려고도 했지만 그런 단골 손님 때문에 메뉴에서 빼지 못하고 있다. 강남까지 따라온 단골들이 “감자탕은 왜 안 하느냐”고 하도 물어서다.



 그렇다고 옛 방식을 답습만 하는 건 아니다. 시대에 맞게 가게 운영에 몇 가지 변화를 줬다. 핵심은 낙지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을 깨는 것이다.



 “낙지라고 하면 다들 매운 음식의 대표. 이렇게만 생각하잖아요. 그걸 좀 깨고 싶었어요. 그래서 매운 맛 강도를 좀 줄였죠. 우리집 음식에는 매운 맛 내는 캡사이신 소스같은 건 안 넣어요. 오로지 청양고추 비율로 조절해요. 그래서 단번에 확 매운맛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은근한 매운맛이 나요. 그런데 또 그게 맵지만은 않고 약간 단맛도 나요.”



 주 메뉴의 매운 맛을 떨어뜨리면서 신메뉴도 개발했다. 바로 낙지 탕수육과 낙지튀김이다. 낙지는 보양식으로 꼽힐 만큼 몸에 좋지만 매워서 못 먹겠다거나 어른들만 먹는 음식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안 먹는 사람을 위해 만든 메뉴다. 안 사장은 원래 부동산업을 했는데 그 시절부터 맛집 찾아다니는 걸 즐겼다고 한다. 그러다 문득 ‘오징어 튀김은 있는데 왜 낙지튀김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다들 비싸서 없는 게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요즘은 음식이 아무리 비싸도 맛만 있으면 먹는 시대잖아요. 기대반 호기심반으로 한번 만들어봤죠. 그런데 정말 맛있는 거예요. 튀김과 탕수육엔 낙지 다리 중에서도 굵은 부위만 쓰는데, 그래서인지 쫄깃한 낙지 식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요.”



 안 사장은 낙지 크기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손님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정보가 있다고 했다. 회나 전골·연포탕 등 종류에 따라 쓰이는 낙지의 크기가 다르다는 얘기였다.



 회로 먹는 산낙지는 다리가 가장 가늘고 작은 것을 쓴다. 생으로 먹는 낙지가 두꺼우면 식감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전골은 많이 끓여야 하기 때문에 가장 큰 낙지가 좋고, 샤브샤브식으로 먹는 연포탕에는 중간 크기 낙지가 적당하다.



 하나 더. 냉동 낙지를 고를 땐 색이 하얗고 뽀얀 걸 골라야 한단다. 4~5℃가 유지된 곳에서 잘 보관됐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낙지는 양식이 안 돼요. 그래서 대부분의 낙지집에서 산낙지가 아닌 중국산 냉동낙지를 쓸 수밖에 없어요. 냉동이라지만 따지고 보면 다 자연산이잖아요. 적정 온도에서 보관만 잘 했다면 냉동낙지라도 몸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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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서만 3대째, 재개발로 3번 이사하면서도 종로 안 떠나

낙지와 섞어 먹는 베이컨쏘세지, 이 집의 30년 넘은 별미

이젠 외상으로 손목시계 맡기던 낭만은 없지만 단골은 여전




“종로 음식점은 종로에 있어야죠. 종로가 서울, 아니 한국의 중심 상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종로에서 시작한 식당인 만큼 이곳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할머니와 부모에 이어 3대째 서린낙지를 운영하는 박범준(42) 사장 말이다. 1959년 할머니가 ‘서린실비집’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이 곳은 종로의 여느 식당과 마찬가지로 7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도심 도시개발 광풍(狂風)을 고스란히 겪었다.



 “원래 할머니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장소는 지금 위치에서 청계천 건너편, 그러니까 하나로빌딩 근처(현 서울 파이낸스센터 옆)래요. 그곳이 재개발되자 청계천을 건너 SK빌딩쪽(르메이에르 종로타운 맞은편)으로 갔다죠. 2층 양옥집 모양 건물이었어요. 한 개 층이 15평(약 49㎡)이나 될라나. 당시 청계천은 도로로 덮인 복개천이었는데, 주변에 이런 단층 건물이 주욱 늘어서 있었거든요. 국민학생(초등학생) 시절 여길 왔다갔다 했던 기억이 나요.”



이 집 단골은 먼저 베이컨쏘세지와 낙지볶음을 함께 주문해 섞어 먹는다. 벌써 30년 넘은, 이 집만의 독특한 낙지볶음 방식이다.
 이곳마저 재개발되면서 92년에 지금 가게가 있는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앞쪽으로 이전했다가, 또 재개발되면서 200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서울에 고층 빌딩이 하나 들어설 때마다 자리를 내어주고 이리저리 쫓겨 다닌 셈이다. 장사 하는 입장에서 가게를 계속 옮기는 게 좋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서린낙지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와중에 없어진 가게가 수없이 많다.



 “낙지집뿐 아니라 생선골목에 있던 수많은 가게들, 빈대떡집 등 오래된 집들이 많이 없어졌어요. 열차집이나 청일집, 또 청진옥 같은 곳은 살아남았지만 얼마나 많은 집이 없어진 건지 다 알기도 어려울 정도에요. 안타깝죠. 하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원망할 수는 없잖아요. 이것도 그저 역사의 일부분이라 생각해요.”



 박 사장 조부모는 개성 출신이라고 한다. 1959년 즈음 종로에 자리를 잡고 생계를 위해 음식점을 냈다. 서린실비집이란 간판으로 술과 각종 안주를 팔았다. 당시엔 웬만한 안주를 갖춰놓은 선술집을 실비집이라고 불렀다. 그의 할머니는 이 실비집에서 김치찌개와 갈비 등 수많은 안주를 팔았다. ‘낙지볶음’과 ‘베이컨쏘세지’은 그 중 하나였다. 그 많은 안주 가운데 가장 인기가 좋아 90년부터 주력 메뉴로 정했고, 그게 지금의 낙지집으로 이어온 거다. 간판은 70년대 들어 서린낙지로 바뀌었다.



 이곳의 두 메뉴는 각각 따로 먹어도 괜찮지만 같이 시켜 한 불판에서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매운 낙지와 짭쪼름하면서도 고소한 베이컨, 소시지가 제법 잘 어울린다.



 “낙지집에서 베이컨이 나오니 이걸 보고 새로 나온 퓨전음식이라고들 하는데, 수십 년 전부터 우리 집에서 팔던 거예요. 30년 전에 먹은 기억이 아직도 나요.”



 그는 이 베이컨소시지 볶음 음식으로 특허도 받았다. 본격적으로 대를 이어 가게 운영에 나선 지 2년 만인 2005년 일이다. 다른 가게들이 방식을 못 따라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모양이 비슷해도 어차피 음식 맛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다.



 식당을 운영한 지는 10여 년밖에 안 됐지만 어릴 때부터 식당에 자주 드나들었던 덕분에박 사장은 30여 년 전 풍경도 또렷이 기억한다.



 “아직도 기억나는 재밌는 풍경이 있어요. 당시 가게엔 철로 된 양푼이 크기의 손목시계통이 있었어요. 손님들이 돈이 모자라면 손목시계를 맡기고 갔던 거죠. 그런데 그걸 아마도 찾아가질 않는 거예요. 통에 가득 담긴 시계를 버리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보관을 해야 했죠. 몇 번 이사하다 어느 새 다 잃어버리고 말았지만요.”



 손목시계통뿐 아니라 가게 안 풍경, 그리고 주 손님층도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초기엔 세시봉같은 음악살롱에 다니는 음악가나 주변 언론사 사람이 주 고객이었다. 가족단위 손님보다는 직장 동료가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엔 가족단위 손님이 부쩍 늘었다. 주말엔 가게에 아이들 소리가 가득할 정도란다.



 “평일에도 뚜렷한 특징이 있어요. 요즘 들어 부쩍 30~40대 직장인이 가게에서 만나 오랜만에 만나는듯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많이 봐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온라인상에서 약속 잡고 우리집에서 만나는 거죠. 시내 중심가니까 이쪽에서 약속을 잡는 거겠죠. 그런데 이런 젊은 직장인 모임이 금요일만 되면 확 줄어요. 요즘 캠핑을 많이 가잖아요. 금요일 저녁이면 밖에서 친구 만나기보다 다들 가족과 나들이 갈 준비를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손님 성향이 변해가는 걸 보는 것도 여기서 장사하는 재미 중 하나에요.”



 아직도 할머니나 부모님을 찾는 단골이 많다. 하지만 이젠 그를 보고 오는 손님도 꽤 된다. 그는 매운 음식 좋아하는 여자 손님이 곧 결혼한다고 하면 무료 서비스 음식을 주기도 한다.



 “여자 손님은 결혼하면 임신과 출산 때문에 한 2~3년은 못 오더라고요. 한동안 좋아하는 낙지 못 먹을 테니 서비스로 그냥 드려요. 그만큼 정도 많이 들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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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심영주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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