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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애인과 헤어진 충격에서 허우적대는 딸이 걱정인 50대 주부

중앙일보 2014.05.28 00:05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Q 남매를 둔 50대 초반 주부입니다. 25살 큰딸 때문에 고민입니다. 남편 직장 때문에 학창시절을 미국에서 보내고 미국 명문대를 나왔습니다. 모범생 스타일이라 지금껏 크게 속 썩인 적이 없고 현재 한국의 좋은 회사에 합격한 상황입니다. 외모도 예쁘장합니다. 그런데 1년 전부터 사귀던 남자 친구와 최근 헤어진 후 하루 종일 얼 빠진 사람처럼 울면서 보내는데 기가 막힙니다. 첫사랑이라 상처가 크겠다 싶어 위로해보기도 하지만 그 남자가 없으면 자신도 끝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화가 치밀어 올라옵니다. 수십 년 키운 부모도 있는데 몇 달 만난 남자 때문에 자기 인생 다 없어진 것처럼 이야기하니 섭섭합니다. 부모로서 딸에게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하나요.

로미오와 줄리엣의 미친 사랑? 뇌의 이 기능 떨어진 탓이라는데
Q: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는 25세 딸
첫사랑과의 결별 후 계속 울기만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실연 아픔, 상실의 고통이라기보다
중독성 강한 사랑의 금단 현상
뇌는 곧 합리적 상태로 돌아올 겁니다



A 자유·사랑·힘 중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다양한 답이 나옵니다. 아내는 사랑이라는데 남편은 자유라고 해 아내가 섭섭해 하기도 합니다. 기업하는 친구에게 물으니 “줄곧 힘이라 생각했는데 요즘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하네요. 이처럼 우선 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자유·사랑·힘에 대한 갈망은 가장 본질적인 욕구인데요. 이 세 요소는 배타적이면서 보완적입니다. 힘에 대한 집착은 자유와 사랑을 희생시키기도 하지만 힘 없이는 자유와 사랑을 지킬 수 없습니다. 자유는 독립성을 지키려는 분리개별화 욕구인 반면 사랑은 완전히 상대방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융합의 욕구입니다. 그런데 자유는 사랑을 향한 도전이기도 하죠.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내 사랑을 찾아 새 가족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오늘 사연의 주인공, 열심히 산 결과 좋은 대학 나와 좋은 회사에 합격했군요. 그러나 생존을 위한 독립만으로는 완전한 자유를 느끼지 못합니다. 자유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돼야 완전해지는 모순이 존재합니다. 첫사랑이 심리발달을 위한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던 셈이죠. 아픈 첫사랑 없이 그냥 회사에 들어가 모범적으로 지내는 것보단 지금이 분명 힘들겠지만 인생에서 의미있는 순간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부모로서는 얼마 만나지도 않은 남자 때문에 자기 인생 끝난 것처럼 이야기하는 딸을 보면 속상하고 화가 납니다. 당연한 감정입니다. 딸의 비이성적인 태도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사랑을 unconditional selflessness라고 정의하더군요. 의역하면 ‘조건없이 내 존재를 지움’ 정도가 될까요. 사람은 자기 존재의 경계를 명확히 지키려는 속성이 강한데 사랑을 하면 그런 경계가 희미해지는 거죠. 누군가와 완전한 하나가 되기 위해 내 정체성을 녹여 버리는 셈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모호할 때 사람은 큰 고통을 느끼는데 사랑의 본질이 자신을 없애고 상대방에게 융합하려는 욕구이니, 사랑은 심리학적 상식을 벗어나는 매우 특이한 감정 반응인 셈입니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를 이용하면 뇌의 영역별 활성도를 찍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학이나 예술의 영역이었던 사랑에 대해서도 신경생물학적 연구를 하는데요. 몇 가지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먼저 사랑은 중독 경향을 갖는다는 겁니다. 사랑에 빠졌을 때 도파민이라는 쾌락 물질이 나오는 뇌 영역이 활성화합니다. 이 쾌락 물질은 마음의 즐거움을 주는 보상 시스템의 스위치를 켭니다. 마치 마약처럼요. 동시에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혈압을 올리는 흥분 호르몬도 쏟아져 나옵니다, 중독적인 흥분제가 작용할 때와 유사한 반응입니다. 사랑이 중독적이라는 건 금단 증상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랑할 대상이 떠나서 힘든 것 같지만 실은 사랑이라는 뇌 활동이 중단된 게 실연이 주는 고통의 더 큰 원인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강박적으로 만드는 경향도 있습니다. 집착하게 하죠. 그런데 그 집착 때문에 상대방을 힘들게 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예측할 수 없고 불안정한 감정을 안정적으로 조절해주는 물질이 뇌 안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인데요. 사랑을 할 때면 이게 줄어 더 집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미친 사랑’을 만드는 건 이런 신경생물학적 변화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그만큼 간절했구나, 싶기도 하지만 사실 매우 무모하기도 하죠. 얼마든지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쟁취할 수도 있는데 왜 이런 선택을 했나 싶은 아쉬움마저 듭니다. 그러나 두 연인이 비극적인 예술 작품 안에서만 존재하는 캐릭터는 아닙니다. 강렬한 사랑에 무모한 용기가 동반되는 건 합리적인 판단 아래 행동을 조절하는 전전두엽 기능이 저하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위험에 반응하는 선조체라는 뇌 영역도 기능이 떨어집니다. 비이성적인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생기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사람이 실제로 변합니다.



 자, 오늘 사연으로 다시 돌아가보면 딸의 반응은 매우 정상적인 것입니다. 첫사랑만큼 강렬하게 뇌를 흔드는 사건은 없죠. 처음 느끼는 자극이기에 더 달콤하게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이 멈추면 뇌에는 강력한 금단 증상이 찾아옵니다. 타인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 때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힘 있는 사람이라 여깁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기분을 경험합니다. 최고의 황홀감이죠. 그러다 보니 금단증상 또한 강할 수밖에 없죠. 완전한 나에서 무가치한 나로, 순식간에 자아가 쪼그라들어 버리니까요.



 누구나 첫사랑의 슬픔이 있지만 지금 웃으며 살 수 있는 건 상실의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더 큰 상실의 고통도 극복해냅니다. 자녀도 아마 마찬가지일 겁니다. 안타깝지만 삶의 성숙을 위한 과정이라고 여유롭게 지켜봐주는 게 중요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어머니가 챙겨주면 좋은 게 있습니다. 사랑했던 대상과 나를 사랑에 빠지게 했던 대상을 분리하는 작업입니다. 나를 버리고 간 대상은 나쁜 자식이죠. 그러나 그 대상 안에 나를 사랑에 빠지게 했던 매력적인 요소는 아직도 존재합니다. 그건 분리해서 파악해야 합니다. 남자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를 아는 게 배우자 선택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결혼을 잘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나랑 잘 맞는 남자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둘째, 그 남자를 내 남자로 만들 수 있는 능력입니다. 다들 두번째에만 신경쓰는 경향이 있는데, 첫번째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매력적이기만 하면 인생이 복잡하게 꼬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남자와 잘 맞는지 모르는데 남자들이 결혼하자고 달려드니 잘못된 배우자를 선택하기 쉬워지는 겁니다.



 슬픔이 좀 가시면 사연주신 분 따님은 다시 뇌가 합리적인 상태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때 첫사랑의 경험을 바탕으로 딸이 원하는 남자를 함께 그려볼 것을 권합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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