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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정몽주의 폐가입진(廢假立眞)

중앙일보 2014.05.26 10:23
KBS의 역사 드마마 “정도전”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욕심 많은 이성계는 고려조를 무너뜨리고 당대 최고의 인물 양정(兩鄭) 포은과 삼봉을 앞세워 새로운 왕조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포은 정몽주는 대나무가 될지언정 칡넝쿨이 되기를 거부하고 결국 고려 충신으로 생을 끝낸다.



혈통이 의문시 되는 우왕의 아들 창왕을 폐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는 삼봉 정도전의 역모를 꺾고자 정몽주는 “폐가입진(廢假立眞)”이라는 역발상을 내세워 고려 왕조를 지키려고 애쓴다. 창왕의 아버지 우왕은 본래 신돈의 자식이므로 가짜 신(辛)씨 왕을 폐하고 진짜 왕(王)씨 왕(공양왕)을 내 세우자는 발상이다.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개성의 현화사 주지 신돈을 만나게 된다. 공민왕은 신돈의 시국관을 듣고 그를 왕사(王師)로 중용한다. 후사가 없는 공민왕에게 신돈은 자신의 노비인 반야(般若)를 후궁으로 바친다. 공민왕은 반야와의 사이에 외아들 우왕을 얻는다. 그러나 반야가 공민왕을 만나기 전에 이미 신돈의 아이를 임신해 있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공민왕은 이를 걱정하여 우왕은 반야의 아들이 아니고 궁인 한씨의 소생임을 분명히 해 두었다. 공민왕이 죽은 후 당시 권력자 이인임의 후원으로 우왕이 왕위를 계승한다.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된 것을 안 반야는 공민왕의 어머니(명덕태후)를 찾아 자신이 왕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린다. 놀란 이인임 세력은 반야를 몰래 죽이고 임진강에 수장시켰다.



이는 조선조에 발간된 고려사에 나오는 기록으로 조선이 개국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고려 말 왕실의 혈통을 문제 삼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는지 모른다.



이 보다 1500년 앞서 중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인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BC259-BC210)도 본래 진나라 왕실의 영(?)씨가 아니고 여(呂)씨라고 한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와 조(趙)나라는 휴전을 하면서 진나라 왕자 자초를 조나라에 인질로 보냈다. 그 때 조나라의 거상이었던 여불위가 자초의 장래를 내다보고 가까이 한다. 타국에서 곤궁한 자초에게는 그러한 여불위가 나쁘지 않았다. 여불위는 외로워하는 자초에게 자신의 첩 조희를 바친다. 자초는 조희를 아내로 삼지만 조희의 뱃속에는 이미 여불위의 아이가 잉태되어 있었다고 한다. 자초의 아버지가 진나라의 왕위에 오르자 태자가 된 자초가 귀국을 하게 된다. 그는 조희와 아들 정(政) 그리고 자신의 보호자 여불위와 같이 귀국한다.



귀국한 자초가 아버지를 이어 왕(장양왕)이 된 후 여불위를 승상으로 앉힌다. 그리고 3년 후 자초가 죽자 13세 밖에 안 된 조희의 아들 정(政)이 왕이 된다. 나중에 진시황이 되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승상 여불위가 섭정을 하지만 후에 정이 친정을 하게 되자 왕은 여불위를 자결케 한다. 자신에 대한 출생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다.



한(漢)나라의 사관(史官)인 사마천은 한나라의 개국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한고조 유방이 진시황과 그의 아들 2세의 진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폐가입진”을 보여 주기 위한 것 이라고 설명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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