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만서 설탕 만들고, 태국서 비단 짜고 …

중앙일보 2014.05.26 01:43 종합 22면 지면보기
제1회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받은 이완(35)의 영상 설치 ‘메이드 인 대만’(2013)의 일부. 왼쪽 사진은 설탕 종지를 빚고 있는 그의 손, 오른쪽은 지난해 여름 그가 두 달간 일했던 대만의 사탕수수 농장. ‘메이드 인’ 시리즈는 평범한 일상조차 전 지구적인 정치경제 상황으로 얽혀 있음을 드러낸다. 작품은 3채널 비디오와 설탕 종지로 구성돼 있다. [사진 삼성미술관 리움]


이 모든 것은 한 끼의 아침식사에서 비롯했다. 당근 주스에는 중국산 당근과 대만산 정백당이 들어있고, 편의점에서 산 국산 과자는 미국산 소맥분을 중국 공장에 가져가 말레이시아산 식용유로 튀겨 만들었다. 미술가 이완(35)씨는 “3년 전 문득 열 곳이 넘는 나라에서 온 음식들이 값싸게 내 식탁을 채우고 있음을 깨닫고 이 세상의 구조에 놀랐다”며 “우리는 점점 소비만을 하고, 그 소비를 위한 노동만을 한다. 음식뿐만 아니라 정치라든지, 거대한 구조의 이면들에 대해 점점 ‘몰라도 되는 사람’이 되어 간다”고 말했다.

'메이드 인' 시리즈 내놓은 이완
리움미술관 차세대 작가 뽑혀
본인이 직접 외국 현지서 일하며
노동의 국제화·소외 현상 빗대



 그래서 그는 지난해 8월 대만으로 날아갔다. 공항에서 400㎞ 떨어진 사탕수수 농장에서 두 달간 일한 끝에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설탕을 얻었다.



이완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스펙트럼 2014’전에 출품한 그의 영상·설치 ‘메이드 인’ 시리즈에는 어설픈 솜씨로 낫을 들고 사탕수수를 베어, 껍질을 벗기고, 돌로 으깨고, 끓여서 설탕을 만드는 그의 모습이 나온다. 직접 흙을 쳐 설탕 종지도 굽고, 버려진 냄비를 녹여 숟가락도 만들었다. 영상 옆엔 그 종지에 든 설탕을 전시했다.



 화면 속 자막이 진지하다. 대만의 설탕은 일제강점기에는 대표적 수탈 물자였다. 해방 후엔 수출 산업으로 육성,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된다. 이 ‘일부러 비효율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미얀마에선 3주간 수백만 원을 들여 3g의 금을 채취하고, 태국에서는 비단옷을 만들었으며, 캄보디아에서는 볍씨를 뿌렸다. 100년 전 인도의 간디가 자급자족을 투쟁 수단으로 삼아 식민지 착취 구조와 서구식 산업문명으로부터 이탈을 꾀했다면, 이완은 아시아 곳곳에서 직접 생산활동에 참여하며 동아시아 근대사를 꿰고, 노동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어 버린 우리네 현실을 돌아본다.



 리움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신설한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의 첫 수상자로 이완을 선정했다. 이씨는 2004년 동국대 조소과 졸업 후부터 놀이동산에서, 그리고 대형 마트에서 파는 상품에서, 또 버려진 물건 등에서 일관되게 시스템과 개인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심사를 진행한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 정도련 홍콩 M+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홍라영 리움 총괄부관장은 “아시아 근대화에 대한 사회의식이 돋보이는 ‘메이드 인’ 프로젝트를 내놓은 이완은 향후 국제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할 차세대 작가로 성장이 기대된다”고 평했다.



 이씨는 “전시한 4개국 프로젝트에 내년까지 중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8개국을 더해 하나의 식탁을 완성할 것”이라며 “어렵지 않았던 인류의 역사가 없더라. 세상의 균형을 위해 영감을 부여하는 작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시상식은 26일 리움에서 열린다. 상금 3000만원, 수상작가 기념전은 2년 뒤 서울 태평로 플라토에서 열린다.



 ◆다음달 29일까지 ‘아트스펙트럼’전= 2001년 시작된 ‘아트스펙트럼’전은 리움 큐레이터들이 미래가 기대되는 신진 작가들을 선정해 여는 전시다. 지난 4회의 전시를 거쳐간 이들은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활약한 이형구,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문경원, 2012년 런던 테이트 모던의 퍼포먼스 공간 ‘탱크’의 첫 전시에 초대된 김성환 등 38명이다.



 개관 10주년인 올해의 전시에는 리움 큐레이터 5인 외에 외부 인사 5인이 참여해 김민애·이은실·장현준·정희승·제니조·천영미 등 10인의 미술가를 선정했다. 오디션을 주제 삼은 박보나, 오픈 소스 인공위성 발사 프로젝트를 실현한 송호준, 어미새 이야기를 흑백의 드로잉 영상으로 보여준 심래정 등을 통해 젊은 미술가들의 세상에 대한 관점을 볼 수 있다. 다음달 29일까지. 기획전 입장료 6000원. 02-2014-6901.



권근영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