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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 수족관 그대로, 중국서 만들어 달라네요

중앙일보 2014.05.26 00:55 경제 2면 지면보기
국내 최고의 수족관 전문가로 꼽히는 김기태 63아쿠아리움팀장은 중국으로의 ‘수족관 수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김 팀장이 서울 여의도 63씨월드 펭귄 전시관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 한화 호텔&리조트]


‘분명 수조에 물이 가득 차 있어야 하는데….’

연중기획 퍼스트 펭귄 ⑮ 수족관 설계 26년, 김기태 63아쿠아리움 팀장
처음엔 자료 모자라 일본책 번역
해외 탐방, 다이빙자격증도 취득
여수·제주 … 국내 곳곳 '작품' 제작
전시기법 특허에 해외진출도 앞둬



 1990년 여름 서울 여의도 63빌딩 수족관. 출근해 보니 아마존에서 공수해온 1m가 훌쩍 넘는 피라루크(세계 최대의 민물 열대어)들이 수조 바닥에 누워 커다란 아가미를 껌뻑껌뻑하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63씨월드 입사 3년차 김기태씨는 하늘이 노랬다. 수조와 연결된 밸브가 느슨해 밤새 물이 다 빠진 모양이었다. 게다 1∼2m 크기 피라루크는 마리당 3000만원이 넘는다. 죽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싶어 김씨는 얼른 수조에 물을 채웠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2014년 5월. 실수 만발 김씨는 51살의 ‘수족관 베테랑’이 됐다. 다니던 회사는 그사이 신동아그룹에서 한화호텔&리조트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그를 ‘수족관의 대부’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수족관’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수족관 중국 수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21일 63빌딩 아쿠아리움에서 김기태 63아쿠아리움팀 팀장을 만났다.



 그가 작은 수조를 가리켰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디스커스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다. “불빛에 따라 몸 색깔이 바뀌는 물고기예요. 관람하는 손님들은 물고기만 보시는데, 제 입장에선 좀 서운할 때가 많아요.” 그가 서운해(?)하는 이유는 이렇다. 물고기 밥을 주고 돌보는 ‘아쿠아리스트’와 달리 그가 하는 일은 수족관 물고기들이 잘 사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이를 관람객이 ‘잘 볼 수’ 있도록 설계를 한다. 쉽게 말하자면 관람객의 동선을 계획하고, 수조 배치를 하는 등 수족관을 ‘설계’하는 일이 그의 업이다. 이렇다 보니 작은 수조 안에 있는 수초 하나, 돌 한 덩이 모두 그에겐 의미가 있다. 그는 디스커스 수조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민물고둥을 가리켰다. “민물고둥 새끼가 부화해 벽에 붙어있는 거거든요. 너무 귀엽죠? 이런 것들도 못 보고 ‘에이 별거 없네’ 하시며 지나가는 손님들이 계실 때가 제일 속상해요.”



김기태 팀장이 직접 설계한 ‘먹이 주기’ 체험용 통로를 열자 수달이 달려와 먹이를 받아먹고 있다.
 처음부터 수족관 설계 일을 한 건 아니었다. 강원대 삼척캠퍼스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작은 회사를 다녔다. 그러다 1988년 63씨월드에서 사람을 뽑는단 소리에 ‘경력’으로 입사서류를 내면서 수족관이 평생 일터가 됐다. 1985년 국내에서 처음 문을 연 63씨월드는 일본 수족관 기술을 그대로 가져와 고기 이름부터 모든 것이 ‘일어’로 되어 있었다. 물고기 특성에 맞게 수온을 맞추고, 물을 순환시키고, 물고기에게 맞는 조명을 맞춰주는 일을 해야 하는데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수산통론』 『양식학 개론』 같은 교재를 사다가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일본 서적을 입수하면 몇 장씩 직원들과 나눠 번역한 뒤 공부도 했다. 틈틈이 짬을 내 다이빙 자격증도 땄다. 사육사들과 함께 수조에 들어가지 않고선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물고기가 잘 살도록 하려면 정기적으로 수조 청소를 해야 했다. 간혹 물때가 잘 닦이지 않을 땐 화학약품을 동원해 청소를 한다. 물을 다시 채우기 전에 중화제를 써서 수질을 맞추는데 ‘실수’ 때문에 다음 날 아침 죽어버린 물고기 떼를 본 것도 수두룩했다. ‘인재(人災)’였다. 수백 개의 수조 때문에 물을 공급하는 펌프는 밤새 돌아갔다. 냉난방 공조시설도 24시간 가동해야 해 한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었지만 몇 번씩 ‘사고’가 났다. 안 되겠다 싶었다. 공부가 필요했다. 이웃 나라 일본은 60∼70곳의 수족관이 있는 데 반해 우리는 배울 곳이 없었다. 그가 일하는 곳이 ‘국내 1호 수족관’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배움터가 된 건 해외였다. 처음엔 포상 차원에서 회사에서 보내준 해외 수족관 탐방이 시작이 됐다. 다른 관람객들은 상어며, 피라니아와 같은 이색적인 물고기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그는 수조 모양과 수초, 돌, 수족관의 관람 동선을 유심히 봤다.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호텔에 돌아오면 꼬박꼬박 일기를 썼다. ‘아프리카’만 빼고 전 세계 수족관은 모두 돌아다녔을 정도가 되자, 모은 사진이 수만 장을 넘어섰다.



 2007년 속초시에서 연락이 왔다. “수족관을 만들어 달라”는 거였다. 처음엔 수족관을 짓는 공사업체를 소개해주고 말았는데 설계를 맡은 회사에서 “수조를 재미있게 만들고 싶은데 도와달라”며 찾아왔다. 머리를 맞대고 원통 모양의 수조를 만들었다. 속초의 5억원짜리 사업이 끝나자 이듬해엔 10억원 규모의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의 바다동물관 개·보수 사업 의뢰가 들어왔다. 자신감이 붙으면서 ‘설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전남 영광 원자력발전소의 ‘에너지아쿠아리움’(50억원·2009년) 사업까지 줄줄이 이어졌다. 여수 엑스포장의 대형 수족관과 제주 한화 아쿠아플라넷(2012년 7월 개장)의 1000억원대 사업까지 도맡게 됐다. 여수와 제주의 수족관 설계를 하느라 근 4년을 집 밖에서 살아야 했지만 짜릿했다. 특허도 생겨났다. 일본의 한 작은 수족관에서 봤던 ‘진공수조’에 착안해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개방형’ 진공수조를 설계했다. 바닥을 통유리로 만들어 관람객이 위를 걸으며 발 아래 물고기를 볼 수 있도록 한 ‘스릴 워터(thrill water)’ 전시기법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아쿠아리움에 찾아온 아이들과 관람객이 통유리 위를 걷다가 ‘와장창’ 하는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들려주면 “꺄아” 하고 즐거운 소리를 지르는데, 그때가 제일 보람이 있다”고 했다. 그의 손을 거친 제주 한화아쿠아플라넷은 지난해 월 최다 방문객이 14만7000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김 팀장은 요즘 그 누구도 해보지 않은 ‘수족관 수출’을 준비하고 있다. 2∼3곳의 중국 업체에서 “63아쿠아리움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다”고 제안을 한 게 시초가 됐다. 63씨월드는 지난해 기준 월 최다 방문객이 28만9000명에 달하는 관람 명소다. 중국 관람객이 상당해 그는 중국 손님을 타깃으로 수족관 동선 맨 뒷부분 벽 전체에 선홍빛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헤엄치는 ‘붉은 수조’를 꾸몄는데, 그게 눈길을 끈 모양이었다. 그의 꿈은 ‘테마파크’ 설계. 수족관을 메인으로 하는 테마파크를 만들어 보고 싶어 지난 몇 년간 ‘공간 디자인’ 공부를 위해 대학원 입학시험에 응시하고 있다. 낙방을 거듭하고 있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열심히 수족관개론 같은 외국 서적을 보며 우리만의 ‘한국식’ 수족관학을 정리하고 있다”면서 “올해로 26년째 되는 경험을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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