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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 집무실 개조해야 ③ <끝> '공간의 비밀' 을 아는 선진국들

중앙일보 2014.05.26 00:19 종합 30면 지면보기

세계 주요 국가는 최고 권력자와 참모의 사무실을 다닥다닥 붙여놓는다. 대통령제든 내각책임제든 같다. 신속하고 밀접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건물을 짓거나 개조할 때마다 그들은 되도록 가까이 ‘밀집형’으로 만든다. 그런데 한국은 건물을 지을 때마다 ‘분리형’으로 간다. 도대체 이 나라는 세계의 흐름을 알기나 하는가.

 미국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가졌다. 하지만 집무실은 세계에서 가장 좁은 권력자 중 한 사람일 것이다. 백악관의 면적은 7만3000m²(약 2만2000평)로 청와대(25만3504m²)의 3분의 1도 안 된다. 대통령과 참모 사무실은 웨스트 윙(West Wing)에 모여 있다. 구석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 오벌 오피스(Oval Office)는 76m²(약 23평)에 불과하다. 책상과 3인용 소파 두 개, 그리고 탁자 하나가 전부다. 참모들이 많이 모일 때는 소파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집무실 양쪽으로 참모 방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부통령·선임고문·비서실장·국가안보보좌관·대변인 사무실 등이다. 내각회의실도 작다. 대통령과 장관들은 어깨가 닿을 듯 모여 앉아 마이크 없이 얘기를 나눈다. 웨스트 윙 가운데에는 루스벨트 룸이 있다. 일종의 사랑방이다. 외부손님이나 부하들이 이곳에서 기다리면 대통령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온다. 밀집도 밀집이지만 개방도 활발하다. 오바마는 자주 집무실 방문을 열어놓는다고 한다. 참모들이 자유롭게 들어간다. 오바마 자신도 비서실장 방에 쑥 들어가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곤 한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곳 중 하나일 것이다. 화급한 안보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밀집·개방에서는 이스라엘 총리실도 백악관 못지않다. 예루살렘에 있는 관저는 총리 집무실에서 부속실 하나만 지나면 안보보좌관을 비롯한 참모들의 방이 기차처럼 연결된다. 총리의 집무공간과 총리가 가족과 지내는 관저가 따로 있어 이스라엘은 2009년 넓은 공간으로 옮겨 이를 합치는 알모그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러나 총리실로만 보자면 지금의 구조가 비상상황에 신속히 대응하기에 더 좋다는 지적 등이 있어 계획은 취소됐다.

 독일 연방총리관저는 주요국 중에서 가장 최근에 신축한 지도자 집무실 겸 관저다. 2001년 지어졌으니 1990년 통일 후 11년 만이다. 규모는 세계 최대급이어서 ‘통일 독일’ 축하 건물인 셈이다. 덩치도 그렇지만 소통의 효율에서도 세계 최고급이다. 본관에 총리의 아파트와 집무실 그리고 450여 명의 보좌진과 비서들이 일하는 근무공간이 모두 모여 있다. 특히 비서실장실은 총리 집무실과 같이 7층에 있다. 6층에는 각료 회의실이 2개 있다. 6층과 5층에는 장관실들이 있다. 5층 대연회장에서는 총리가 외국 지도자와 오찬과 만찬을 가진다. 총리와 장관, 참모진은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국사(國事)를 처리하는 것이다.

 영국 런던의 다우닝가는 ‘총리 동네’다. 10번지에 총리실, 11번지에 재무장관실, 12번지에 공보실이 있다. 비서실장 등 총리 보좌진은 10번지에 모여 있다. 10번지 2층에는 각료회의장이 있는데 하도 좁아 각료들은 지하철 승객처럼 앉는다.

 선진국들이 대통령과 참모의 업무공간을 붙여놓는 건 땅이 없거나 위세를 부릴 줄 몰라서가 아니다. 거리가 멀면 실패가 가깝다는 ‘공간의 무서운 비밀’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자꾸만 멀어진다. 본관을 새로 지으며, 세종시를 지으며 멀어진다. 공간의 비밀로부터 얼마나 더 상처를 입어야 생각을 고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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