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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5월의 사랑

중앙일보 2014.05.26 00:16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들 하지만 5월만큼 모질고 서러운 달도 없다. 5·16은 쿠데타와 구국의 혁명 사이에서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 5·18의 붉은 피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담긴 역사 인식의 갈등으로 여태껏 마를 틈이 없다. 5월의 부엉이 바위를 스치는 바람에도 서글픔이 묻어난다.



 5월이 슬픈 것은 굴곡진 과거사의 기억 때문만이 아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은 왜 하필 5월의 봄날인가. 여덟 살 소녀가 계모의 주먹질에 맞아 죽고, 침몰하는 배의 선장이 승객들을 버려둔 채 맨 먼저 탈출하는 비정한 사회…, 그 절망의 봄에 찾아오는 가정의 달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수학여행 떠난 언니·오빠, 형·누나가 돌아오지 않는 어린이날, 봄꽃 같은 아들딸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어버이날, 제자들의 빈자리를 눈물로 채우는 스승의 날은 따뜻한 봄날이 아니다.



 “언제부터 창 앞에 새가 와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 저 산의 꽃이 바람에 지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꽃잎 진 빈 가지에 사랑이 지는 것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 저 언덕에 작은 무덤은/ 누구의 무덤일까.”(황금찬 ‘5월이 오면’)



 꽃이 바람에 지듯 우리 가슴에 사랑이 지는 5월이라면, 파릇한 풀잎 대신 아이들의 작은 무덤이 언덕에 돋아나는 새봄이라면, 그 5월은 결코 계절의 여왕이 아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는’ 4월이 잔인한 까닭은 메마른 황무지에 봄의 햇살이 다가와 새싹을 틔우라고 채근해대기 때문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희망의 잎을 내고 사랑의 꽃을 피울 수 없는 5월은 4월보다 더 잔인한 달, 따뜻해서 더 서러운 모순의 계절일 뿐이다.



 지진·쓰나미·화산폭발 등의 자연재해 위험이 크지 않은 우리나라는 어이없는 인재(人災)로 인해 자연재난 못지않은 참극을 번번이 겪고 있다. 낡은 배를 얼렁뚱땅 증축해 부당한 수익을 챙기다가 꽃다운 목숨들을 앗아간 20년 독점 기업 뒤에는 ‘관피아’의 검은 먹이사슬이 웅크리고 있었다. 생명의 윤리가 시들고 공공(公共)의 책임의식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인습에 젖은 관료들이여, 조직을 바꾸고 제도를 고치려는가. 먼저 사람이 달라져야 한다.



 대형 재난 앞에 속수무책인 정부가 국가개조를 부르짖는다. 그 어설픈 정부부터 개조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분열의 정치꾼들이 이 난국을 지나칠 리 없다. 온 국민의 충격과 슬픔 곁에서 정권투쟁의 촛불을 치켜든다. 학생인권조례와 무상급식에 목소리를 높이던 정치인들이여, 학생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는 대체 무슨 일을 했는가. 이익단체의 돈으로 외유나 즐기고 그들을 위한 청부 입법에 앞장섰다는 의혹에서 정녕 자유로운가. 너나없이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며 총체적 개혁을 요구하지만, 정치권만 개혁돼도 대한민국은 단숨에 달라질 것이다.



 정치권력뿐이겠는가. 국민의 권익보다 관료의 편의를 앞세우는 행정권력, 특권의식과 튀는 판결로 국민의 기대를 거스르는 법조권력, 진영 논리와 선정주의의 늪에 빠진 언론권력, 파벌 싸움과 상업화로 인문의 가치를 모독하는 문화권력, 세속적 물량주의로 타락의 길을 걷는 종교권력…, 독선과 탐욕에 찌든 온갖 권력의 자리가 개혁의 대상이다.



 온 나라가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성장을 향해 질주하는 동안 생명사랑과 공동체윤리의 바탕자리인 교육·문화·종교계만이라도 ‘바르게 살기’를 지향하며 성숙을 위해 고민했더라면 우리 사회의 도덕의식이 이토록 추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룩한 종교인들이여, 지식 없는 ‘교리의 이단’을 정죄하는가. 사랑 없는 ‘삶의 이단’이 더 큰 죄악이다.



 슬픔에 잠긴 가정의 달, 우리는 좌절 속에 주저앉을 수 없다. 사랑과 희망 가득한 5월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안전과 신뢰의 울타리를, 자식 앞세운 어버이에게는 위로와 치유의 손길을, 발붙일 곳 없는 소외계층에게는 이웃공동체의 열린 삶터를 활짝 펼쳐야 한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승무원의 책임을 다하고 숨진 박지영씨의 어머니는 조위금을 사양하며 더 어려운 이웃에게 써달라고 당부했다. 이것이 가정의 달 5월의 사랑이다.



 돈과 권력의 높은 자리들이 나눔의 손길, 섬김의 발걸음으로 저 낮고 그늘진 자리를 찾아가는 생명의 봄, 그 사랑과 희망의 계절은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시 ‘5월이 오면’은 이렇게 이어진다. “병풍에 그려 있던 난초가/ 꽃피는 달/ 미루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달…”. 이 잔인한 봄이 다 가기 전, 난초 같은 5월의 사랑을 꽃피워야 하지 않겠는가.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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