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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리포트] 구사마 야요이, A Dream I Dreamed 전시회

온라인 중앙일보 2014.05.26 00:10
소녀가 보는 세상은 수많은 점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현실일까, 작가 머릿속일까 이 끝없는 점의 세계는

소녀는 눈 앞에서 어른거리는 점을 좇아 하나하나 붓으로 따라 찍기 시작했죠.



물방울 무늬, 일명 ‘땡땡이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구사마 야요이(85)의 이야기입니다.



물방울 무늬에 대한 끝없는 강박은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자신의 병을 예술로 승화시킨 구사마는 ‘전위미술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세계적 작가가 되었답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구사마 야요이―A Dream I Dreamed’ 전시를 찾아가봤습니다.



한가람미술관은 출입구부터 거대한 물방울 무늬로 뒤덮여 있었다. 로비를 통과해 전시실로 들어가면 드디어 끝없는 점의 세계, ‘구사마 월드’가 나타난다. 하얀 점이 찍힌 붉은 대형 벌룬 여러 개로 전시실을 가득 채운 설치미술 작품이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한다.



With all my love for the tulips, I pray forever(튤립에 대한 나의 사랑, 나는 영원히 기도).


바닥에 내려앉은 벌룬부터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벌룬까지, 만화 속 환상의 세계로 들어온 느낌이다. 벌룬 중 두 작품은 안에 거울을 설치해 또 다른 점이 끝없이 반복되어 펼쳐지게 만들었다. 관객은 둥근 구멍으로 얼굴을 집어넣거나, 벌룬 안으로 걸어 들어가 무한히 반복되는 점을 볼 수 있다. 붉은 벌룬의 전시가 끝나는 자리는 사방을 하얗게 칠한 뒤 형형색색의 물방울 무늬를 무차별적으로 그려놓은 방과 맞닿는다. 방 가운데엔 금속으로 만든 하얀 튤립 조각이 있지만, 그 역시 물방울 무늬에 뒤덮여 마치 숨은 그림처럼 정확한 형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구사마는 공황장애·편집증·강박증에 시달렸다. 그는 지난해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공황장애로 30년 넘게 고생했다.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 그리고 또 그렸다. 예술은 내게 최고의 의사다”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 호박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장윤진 큐레이터는 “작가가 아플 때 호박죽을 먹고 나은 경험을 한 뒤 호박은 치유의 상징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UV조명으로 꾸민 작업실. 작가의 눈에 보이는 환영을 체감하는 전시.
눈 앞에 보이는 헛것을 작품 속으로



장애를 이기기 위해 그리고 또 그리면서 그의 작품세계도 점차 변화했다. 장 큐레이터는 “젊었을 때의 작품은 다소 괴기스러웠지만 후기로 갈수록 밝아지고 경쾌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에 소개된 평면 회화 작품 중 ‘나의 영원한 영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점을 찍어서 그림을 그리되, 여러 가지 색으로 염색한 세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 밝고 화려한데다 문양이 다양해 재미있다.



장 큐레이터는 “한가람미술관 전관을 다 쓰는 큰 규모의 전시는 어린이들이 끝까지 보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구사마의 작품은 밝고 재미있어서 아이들도 즐겁게 관람한다”고 말했다.



‘소멸의 방’에서 스티커를 붙이는 전지오 학생기자.
미술관 3층에 전시된 ‘소멸의 방’은 관람객이 참여하는 작품이다. 크고 작은 동그라미 스티커를 하나씩 받은 뒤 신발을 벗고 하얀 방에 들어가 원하는 곳에 스티커를 붙이면 된다. 애초엔 하얀 소파, 하얀 식탁과 식기류 등을 배치해 가정집처럼 꾸며놓은 순백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전시 기간 동안 관람객이 스티커를 붙여 나가면서 최초의 모습은 사라져가게 된다. 전지오 학생기자도 가구에, 또 자신의 옷에 스티커를 붙이며 즐거워했다. 스티커 행렬은 전시장 앞 기념품 판매대에까지 이어졌다.



‘인피니트 미러드 룸’
거울과 물방울, 같은 모습을 무한히 복제하다



물방울 무늬와 함께 구사마 작품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장치는 거울이다. 전시장의 막다른 곳엔 ‘ 니티 미러드 룸(Infinity Mirrored Room·무한 거울 방)’이 있다. 네모난 상자 방에 두세 명씩만 들어가 문을 닫고 1분씩 관람하는 작품이다. 관람 도우미가 “물 조심하세요!”라고 경고한다.



사방의 벽과 천장에는 거울이 설치됐고, 관람객이 서 있는 발판을 제외한 바닥엔 물이 채워졌다. 허공에 설치해둔 색색의 꼬마 전구가 거울과 물에 반사돼 수천, 수만 개의 별이 반짝이는 우주의 한 가운데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르시스 가든’.
미술관 2층 테라스 공간에는 ‘나르시스 가든’이라는 제목으로 은색 공 1500개가 설치됐다. 표면이 거울처럼 반짝이는 공이다. 그 앞에 서면 자신의 모습이 무한히 반복되어 비치는 걸 경험할 수 있다.



전시를 모두 둘러본 전지오 학생기자는 “어지럽지만 재미있다. 호박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소감을 전했다. 장 큐레이터는 “구사마 야요이는 자기가 예술로 치유 받았던 것처럼, 동일본대지진부터 세월호까지 재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이 된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작품 ‘호박’ 앞에 앉은 구사마 야요이.
구사마 야요이의 삶



‘전위미술의 살아있는 전설’ 구사마 야요이(85)의 작품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는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고, 어머니가 홀로 아이들을 키웠다. 구사마는 열 살 무렵, 빨간 꽃무늬 식탁보의 잔상이 온 집안에 떠다니는 듯한 환영에 사로잡혔다. 어머니는 훈육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해 딸을 매로 다스리려 했다.



구사마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그림을 그린 게 아니었다. 그는 “똑같은 영상이 자꾸 밀려오는 공포, 어둠 속에서 반복적으로 벽면을 타고 뻗으며 늘어가는 하얀 좁쌀 같은 것이 보이면 내 몸에서 넋이 둥둥 빠져나간다”고 말한다. 그걸 하나 하나 벽에서 끄집어내 스케치북에 옮겨놓으면 정신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진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교토시립미술공예학교에서 일본화를 공부하고, 1952년 첫 개인전을 열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57년 뉴욕에 홀로 건너갔다. 자신의 정신질환을 알게 된 것도 뉴욕에서다.



어느 날 캔버스를 무한한 망과 점으로 채워 넣던 그의 붓은 무의식적으로 화폭을 벗어나 식탁, 바닥, 방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구사마는 급기야 점이 자신의 손에서부터 번지기 시작해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환각에 시달렸다. 공포에 질린 그는 병원에 실려갔고, 정신이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날 이후 구사마는 캔버스 밖으로까지 작품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조각·퍼포먼스·설치미술·미디어아트 등의 다양한 미술 장르를 아우른 한편 시와 소설도 썼다. 그는 66년엔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 앞에서 은색 거울 공을 개당 2달러에 판매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는 당시 비엔날레에 초대 받지 못한 작가였다. 그로부터 27년 뒤인 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 대표작가로 선정됐다.



물방울 무늬로 장식한 강아지 조각.
파리 퐁피두센터, 런던 테이트모던, 뉴욕 휘트니미술관 등 세계 유수 미술관이 그의 회고전을 열었다. 2012년엔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과 ‘구사마 야요이 컬렉션’ 공동 작업도 했다.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회화 작품 ‘무한한 그물’(2006)은 2012년 도쿄 경매에서 136만7300달러(약 14억4000만원)에 팔렸다. 특히 한국의 애호가들에게 사랑 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구사마는 지난해 한국 경매시장에서 86건을 팔아 낙찰총액(37억9600만원) 1위 작가가 되기도 했다.



그는 73년 일본으로 돌아온 뒤 48세부터 지금까지 도쿄의 한 정신병원에서 살고 있다. 낮에는 작업실 ‘구사마 스튜디오’에서 종일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병원으로 돌아간다. 조수 두 명이 캔버스의 방향을 돌리는 등의 일은 맡아 하지만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건 온전히 작가의 몫이다.



그는 지난해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죽을 때까지 예술을 계속할 것이며, 사후 수백 년이 지나도 유효할 메시지를 남기겠다. 이를 위해 혼신을 다하고 싶다. 미래의 수많은 사람들, 전세계 여러 사람들이 전쟁이나 테러 공포 없이 자신들의 사랑, 생생한 인생을 이어가길 바란다. 나의 예술이 모든 이들께 드리는 답은 이것이다.”



동행 취재=전지오(용인 대일초 5) 학생기자,

도움말=장윤진 한가람미술관 큐레이터

글=이경희 기자 ,

사진=장진영 기자 , 한가람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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