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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36일, 할 일 안하는 국회

중앙일보 2014.05.22 02:16 종합 1면 지면보기
세월호 참사 36일째인 21일 국회는 정부를 상대로 이틀째 긴급 현안 질의를 했다. 그러나 22일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6·4 지방선거 때문에 의원 대부분이 자리를 비워 회의 진행에 차질을 빚었다. 288명인 재적의원 중 의사정족수인 58명(재적의원 5분의 1)을 채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박병석 국회 부의장이 “양당 원내대표들은 의원실에 (본회의에 참석하라는) 문자를 넣어달라”고 요청한 후에야 가까스로 본회의를 열 수 있었다.


장관 불러 호통 "네탓" 정쟁
안전·관피아 해법 뒤로 밀려
지방선거 몰두, 본회의 차질
"국가 위기에 당선에만 관심"

 질의응답에서도 실효성 있는 대책이나 날카로운 지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함을 지르고 호통을 치거나 장관들을 윽박지르는 구태가 재연됐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비난이 나올 정도였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아무런 준비 없이 시민 감정에 편승해 정부에 큰소리만 치는, 뻔한 질문과 뻔한 답변이 오가는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했다. 익명을 원한 새정치연합의 한 중진 의원도 “세월호 참사란 국가적 비극을 추궁하고 설명을 듣는 자리인데, 정족수가 부족해 기다려야 했다는 것은 굉장히 민망한 상황”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한 달이 넘도록 정치권은 ‘개점휴업’ 상태다. 국회에서 열린 참사 관련 세미나는 6건에 불과했다. 지난 19일엔 ‘수상재난 상황에서의 안전확보를 위한 수영교육 활성화 방안 토론회’를 개최하려다 들끓는 여론의 비판에 취소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뇌물과 청탁을 근절하기 위한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안은 1년 넘게 잠자고 있고, 국회에 계류된 18건의 선박안전 관련 법안과 결의안 중 본회의를 통과한 건 5건(27%)에 불과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안전의식을 높이고 재난구조를 선진화할 법안 제·개정과 대안 마련에 나섰어야 했지만 여야 모두 임박한 지방선거 공천 등 정치 일정에 치우쳐 본연의 임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7선 의원을 지낸 조순형 전 의원은 “정부가 해경을 해체하고 국가기관을 문책하는 충격적인 방법을 내놨지 않았느냐”며 “사실 국회가 정부 못지않게 해상안전 관련 입법을 제대로 해왔는지, 잘못한 건 없는지 검토하는 활동을 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여야 원내 지도부가 5월 국회를 열면서 모든 위원회가 안전에 관한 입법을 전면 재검토한다든가 하는 국회 운영의 원칙에 합의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정치인들이 ‘청와대 수석 책임지라, 내각 사퇴하라’고 소리만 질렀지 국민과 접촉하고 설득해 민심을 수습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노력한 일이 있느냐”고 말했다.



여야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꼽히는 관피아(관료 마피아) 문제 척결을 위해선 신상털기식 인사청문회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제도 개선을 위한 토론회나 관련 회의는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국회는 말로만 사과하고, 말로만 대책을 세우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정치권은 22일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여야 지도부가 전국을 돌며 선거운동을 지휘하는 등 총동원 체제에 들어갈 태세다. 따라서 앞으로도 상당 기간 국회의 업무 공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을 뽑는 지방선거는 지역 위주로 차분하게 치르고 의원들은 국회에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국가가 위기 처했는데, 시장이나 군수 당선시키겠다고 지역구에 내려가면 정치가 신뢰를 받겠느냐”며 “여야 지도자가 국회에 모여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논의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권호·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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