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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추기경이 평양교구장 '서리' 인 까닭

중앙일보 2014.05.22 01:57 종합 6면 지면보기
“사목방문입니다. 사목방문입니다.”


1949년 홍용호 주교 공산당에 피랍
교황청, 64년간 실종자로 분류

 21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행 차량에 탑승했을 때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다. “북한에 가는 목적이 뭡니까?” 염 추기경은 “사목방문”이라고 몇 차례나 강조했다.



 서울대교구장은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한다. 염 추기경에게는 서울대교구도, 평양교구도 자신의 사목구역이다. ‘사목방문’이라는 대답은 교구장으로서 자신의 사목지 방문에 가장 큰 의미를 둔다는 뜻이다. 천주교 측은 방문지가 ‘개성’이 아니라 ‘개성공단’임을 분명히 했다. 대북 관계 등을 고려해 ‘최초의 추기경 북한 방문’ 확대 해석에 대해 상당히 신중한 표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 추기경의 북한 방문에 담긴 의미는 각별해 보인다. 추기경의 방북 추진 역사는 오래됐다. 김수환 추기경은 1975년부터, 정진석 추기경은 98년부터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하면서 북한 방문을 희망했으나 추기경의 방북은 성사되지 못했다. 2000년엔 김대중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방북을 권한 적이 있다. 당시 교황청은 북한 내 전교 활동 인정과 성직자 입북 허용 등을 교황 방북 전제조건으로 내세웠으나 북한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2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에서 열린 염 추기경 서임식 때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특별한 관심을 표시한 바 있다. 염 추기경의 방북이 8월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앞둔 사전 답사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것은 그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에선 북한을 향해 ‘침묵의 교회’라고 부른다. 북한의 천주교 역사는 비극적인 현대사와 맥을 같이한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당시 평양교구의 사제 12명이 공산당에 의해 학살됐다. 북한군에게 뻔히 붙잡힐 줄 알면서 “목자가 양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느냐”며 성당을 지켰던 이들이다. 당시 신학생 중 일부만 살아남았다.



 북한 지역에는 모두 세 개의 천주교 교구가 있다. 평양교구는 서울대교구장, 함흥교구는 춘천교구장, 덕원 자치 수도원구는 베네딕도수도원 총원장이 책임을 맡는다. 평양교구는 오랫동안 ‘주교 없는 교구’였다. 제6대 평양대목구장(교구장)이던 홍용호 주교가 1949년 5월 공산당에 납치됐다. 당시 조만식 선생과 함께 투옥됐다. 조만식 선생은 그때 총살됐다. 홍 주교의 생사는 묘연했다. 교황청 국무원은 지난 64년간 홍 주교를 ‘실종자’로 분류했다. 그 때문에 후임 평양교구장 직함에는 모두 ‘서리(대리)’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홍 주교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 주교에 대한 시복 작업이 추진되면서 교황청은 지난해 8월에야 그가 사망한 것으로 인정했다. 염수정 추기경은 현재 ‘평양교구장 서리’지만, 교황청에서 ‘평양교구장’으로 임명할 근거가 비로소 마련된 셈이다.



 평양교구에는 그런 아픔이 있다. 염 추기경의 첫 방북에 ‘침묵의 교회’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답을 할까. 8월 교황 방한 때 북한 측에서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주목된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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