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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밥상에서 찾은 역사·문화 … 맛깔나고 색다른 인문학 파티

중앙선데이 2014.05.17 01:05 375호 26면 지면보기
저자: 김미려 출판사: 인포그룹느루 가격: 1만5000원
‘감추어진 식탁-옛사람과 나누는 한 끼의 식사’라는 제목에 반사적으로 ‘한식 세계화’가 떠올랐다. 스토리텔링의 시대에 음식에도 스토리를 입혀야 한식 문화가 풍성해지고 외국인에게도 어필할 수 있다는 주장에 익숙한 터라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전통 음식의 유래 따위를 이야기로 풀어낸 ‘한식 스토리텔링’ 책이겠거니 싶었다.

『감추어진 식탁』

책장을 펼치니 반전이었다. 이 책에서 음식은 소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음식을 위한 스토리가 아니라 역사와 문학을 맛깔나게 즐기기 위해 음식을 등장시켰다고 하는 편이 옳다. 국문학과 불문학, 시각디자인과 비교문학을 두루 전공하고 한복려 선생에게 궁중음식을 사사한 저자는 그 모든 분야를 통섭해 ‘식탁 위의 인문학’으로 빚어냈다.

음식과 이야기의 관계는 직접적이지 않고 매우 추상적이다.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와 뉴욕의 퓨전 프렌치레스토랑 ‘카페 불뤼’, 조선의 개국공신 권근과 보졸레 누보가 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삼국유사의 서동 설화와 하루키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그리고 한류스타 배용준의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 달콤한 마 요리를 매개로 하나로 엮이는 등 저자는 시대와 국경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무한 상상력을 펼친다.

상상으로 접붙인 음식과 이야기의 궁합이 생뚱맞지 않고 절묘한 것은 우리 전통음식과 역사, 문화에 대한 치밀한 고증을 근거로 했기 때문이다. 조선 초기 불교를 이단시한 정도전의 『불씨잡변』에 서문을 붙인 권근의 경우를 보자. 공적으로는 성리학자로서 불교를 배척해야 했지만 불교를 향한 개인적 이끌림을 떨쳐내지 못하고 유가 윤리와 불가의 깨달음을 결합하려 했던 흔적에서 그의 식탁에 놓인 사찰음식 고소 겉절이를 상상하는 식이다. 고소의 향기가 정치활동에 지친 눈과 머리를 말끔히 씻어주고 구도를 도왔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약으로서의 기능을 가진 고소와 사찰식물들의 효능을 식품영양학적으로 살피고 간단한 레시피까지 곁들인 뒤 향기 면에서 ‘구도’의 철학을 공유한다고 할 만한 와인과의 마리아주 제안까지 지식의 파도를 탄다.

시각디자인 전공자로서의 심미안도 도처에 동원된다. 화려하면서도 품위 있는 황진이의 이미지를 오이 특유의 초록빛이 비쳐 나오는 투명한 미만두에 비유한 것은 황진이를 상징하는 모시 저고리와 패션디자이너 정구호가 아트디렉팅한 영화 ‘황진이’의 영상을 지배했던 싱그런 녹색을 엮어낸 결과다. 춘향과 몽룡의 피크닉에 등장했을 법한 오미자 착면(젤리)은 아름답지만 온도 조절을 잘 해야 하는 젤리의 텍스처와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대표작 ‘신춘향’ 무대를 온통 물들인 강렬한 핑크빛으로 첫사랑의 이미지를 은유한 디저트다.

‘서여병’ ‘착면’ ‘모점이법’ 등 이름조차 낯선 음식들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옛 음식’이지만 이 책은 결코 역사와 문학 속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옛 인물들을 위한 옛 식탁을 재현해 거기에 어울리는 현대인들에게 시식을 시키고 그들의 사진과 감상까지 곁들였다. 영국인들이 햄릿의 무덤을, 미국인들이 톰소여의 울타리를 만들어 전 세계의 독자를 유혹하듯 우리 역사와 문학의 ‘알리바이’를 살아 있는 미각으로 주장해 봄직 하다는 제안이다. 미각이야말로 무덤이나 담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각적인 21세기 문화수요자들을 만족시키는 강력한 알리바이가 된다. 하지만 먹는 모습이나 ‘맛있다’는 직설법은 애써 피했다. 음식으로 저마다의 단상을 촉발시킬 뿐이다. ‘알리바이’조차 시적이길 택한 것이다. ‘감추어진 옛 식탁’에 놓인 것이 음식이 아닌 문화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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