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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마지막 될까봐, 잊혀질까봐 두렵습니다”

중앙선데이 2014.05.17 23:58 375호 4면 지면보기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 바닥에 빈자리들이 늘어났다. 자원봉사자들은 남아 있는 가족들의 불안감을 키우지 않기 위해 빈 담요를 걷어내지 않고 있다. 최승식 기자
쉰두 살 아버지의 얼굴이 검게 탔다. 양 볼에 깊은 골이 파였고, 휑한 눈은 쑥 들어가 있었다. 한 달 전 진도군실내체육관에서 처음 봤을 때보다 몸무게가 5㎏ 이상 줄어든 것으로 보였다. 헤어스타일은 군인처럼 짧게 바뀌었다.

[세월호 한 달] 진도 못 떠나는 가족들

 단원고 2학년 2반 지윤(가명)양의 부친 허모씨(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16일 오전 힘없는 걸음으로 체육관에 들어섰다. 맹골수도의 바지선에서 수색작업을 지켜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한 발이라도 가까이 가면 아들·딸이 나올까 하는 생각에 그를 포함한 6명의 실종자 가족이 이날 바지선과 해경 함정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가 바지선에 있는 동안 3구의 시신이 잠수부의 손에 이끌려 올라왔다. 단원고 학생 두 명과 승객 탈출을 돕다 자신은 배에 갇힌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45)씨였다. 유치원 선생님이 되겠다던 17세 소녀 지윤양의 모습은 이날도 보이지 않았다.

진도 팽목항에 16일 실종자 가족을 위한 조립식 주택이 옮겨지는 장면(왼쪽 사진). 실종자 가족들은 이곳의 사용을 원치 않고 있다. 실종 상태인 단원고 학생인 딸에 대해 기자와 얘기하고 있는 허모씨의 뒷모습(오른쪽 사진).
제대로 잘 수도 먹을 수도 없었던 한 달
불이 훤히 밝혀진 체육관 바닥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누웠던 허씨는 한 시간 뒤쯤 일어나 부인 옆에서 한동안 세운 무릎 쪽으로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었다. 그러곤 담배를 들고 체육관 마당으로 나왔다. 애타는 아비의 기다림은 그렇게 두 달째로 접어들었다.

 -머리는 왜 짧게 깎았나.
 “머리를 단정하게 하면 아이가 물에서 나온다는 얘기가 있어서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는 부모가 머리 손질을 하면 자녀의 시신이 발견된다는 믿음이 퍼져 있다. 한 어머니가 머리카락을 자른 다음 날 딸의 주검을 찾은 데서 시작됐다. 체육관에는 미용사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어제 오후에 본 시신들의 상태는.
 “머리만 봐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된다. 부모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그 모습이 어른거려 먹을 수도, 잘 수도 없다.”

 -지금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은.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아이를, 가족을 하루빨리 찾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없다. 유가족이 대통령을 만나든 말든, 검찰 수사가 어디로 가든 관심도 없다. 우리들의 가족이 아직 물속에 있다는 것을 세상이 잊지 않았으면 한다.”

 허씨 옆에 앉아 있던 안산 빛나교회 이주몽 목사는 “지금 가족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내 자식이 마지막 한 명이 되는 것, 그리고 잊혀져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경 “끝까지 수색” … 가족들은 못 미더워
17일 현재 실종자 수는 19명. 그중 단원고 학생은 8명이다. 교사 4명과 승무원 3명, 일반 승객 4명도 아직 물속에 있다. 애타는 기다림 속에 체육관과 진도 팽목항을 오가는 가족들은 자식을, 형제를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지윤양의 담임교사 전수영(25·여)씨를 기다리고 있는 부친 전제구(53)씨는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을 국민이 이해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도 15일 바지선에서 수색 작업을 지켜본 실종자 가족 중 한 명이었다.

 이틀 전 가족 10여 명은 ‘1차 수색 완료’에 대해 김석균 해경청장이 설명하는 진도군청의 기자회견장을 예고 없이 찾아갔다. 이들은 “마지막 한 명을 찾을 때까지 수색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김 청장은 “약속한다”고 말했지만 가족들은 그다지 미더워하지 않았다. 가족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는 바닥 이하다. 1차 수색 완료라는 표현이 주는 ‘일단락’의 뉘앙스도 이들을 자극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슬그머니 배 인양 얘기를 꺼내는 이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조금이라도 덜 상한 자식을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달라”고 말했다.

 16일 팽목항 방파제 옆에 다섯 동의 조립식 주택이 들어섰다. 체육관 바닥이나 팽목항 천막에서 지내는 가족들을 위해 정부가 뒤늦게 마련한 공간이다. 대여섯 평 규모의 방이 하나 있는 구조다. 신원확인소(신원 확인 때까지 인양된 시신이 안치되는 곳)에서 5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인양된 시신의 특징을 듣고 가족들이 천막에서 확인소까지 약 200m의 길을 허물어진 마음을 추스르며 걸어야 하는 고통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이날 그 누구도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허씨와 전씨도 마찬가지였다. 허씨는 “거기에 편하게 누우면 아이가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조립식 주택을 사양하는 이유에는 가족들 간의 연대와 유대가 끊길 수 있다는 걱정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지금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버티는 중이다. 이곳에선 말 없이 서로 팔을 쓰다듬어 주는 게 인사다. 정부가 수색작업을 끝내기 위해 조립식 주택에서 떨어져 지내는 가족들을 따로 접촉해 개별적 동의를 이끌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퍼져 있다. 한 실종자의 친척은 “이런 것을 해주려 했으면 진작 했어야지 이제 와서 뭔 뒷북이냐”고 말했다. 간이 주택을 바라보던 한 자원봉사자는 “자식 잃은 부모가 저렇게 저 집에 혼자 있다가 자식 따라 가겠다고 ‘나쁜 마음’이라도 먹으면 어쩌려고 저런 것을 가져다 놓았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이곳에서 공무원들은 ‘늘 생각이 짧은’ 존재다.

불안감 줄이려 체육관 담요 안 치워
실종자 수가 줄어들면서 체육관과 팽목항에 남겨진 가족들의 고립감은 커간다. 체육관에는 약 250장의 담요가 깔려 있다. 그중 대부분은 이제 빈 공간이다. 가족·공무원·기자·자원봉사자 등 최대 6000명이 북적이던 체육관에는 이제 400명 정도만 남아 있다. 약 30명이 실종자 가족이다. 체육관 바닥 안쪽에 차려진 정부 지원센터의 공무원 수가 가족보다 더 많다. 바닥에 앉아 나누는 가족들의 대화가 관중석에서 들릴 정도로 적막하다. 대형 TV에 등장하는 방송 뉴스의 진행자가 흥분한 어조로 세월호와 구원파를 거론하지만 눈길을 주는 가족은 드물다. 군에서 온 의료 봉사진이 가족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이따금씩 혈압계를 들고 돌아다니지만 가족들은 대개 손사래를 친다.

 가족이 떠난 자리의 담요를 걷어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체육관과 팽목항의 자원봉사를 총괄하고 있는 전남 자원봉사센터의 이성태 사무국장은 “빈자리 처리 문제를 놓고 봉사자들끼리 의논을 했다. 남은 가족들의 불안감이 커질 것이라는 의견에 따라 그대로 두기로 했다. 봉사자들이 담요 하나하나씩 걷고 청소한 뒤 다시 까는 일을 흔쾌히 하겠다고 해 그렇게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도 실종자를 찾지 못한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도록 돕는 일이 우선”이라고 했다. 다음은 이 국장과의 일문일답.

 -실종자 가족 수가 많이 줄어들면서 체육관이 아닌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겨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주 마우나리조트 사건의 희생자가 10명이었다. 그것도 대형 참사였다. 지금 남은 실종자는 그 두 배에 해당된다. 세월호 희생자가 300명이 넘어 실종자 19명은 소수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런 생각을 바꿔야 한다. 실종자 가족들이 지내는 장소의 문제는 전적으로 그들의 의사에 따라야 한다. 만약 가족들이 지나치게 큰 공간을 사용해 많은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그들 스스로가 장소를 옮기겠다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 가족들은 늘 현명한 판단을 해왔다.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지금 가족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시신을 끝내 못 찾는 것이다. 너무 두려워서 그것은 아예 언급도 안 한다. 그 다음으로는 최후에 남게 되는 몇 가족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수색 초기에 시신을 찾은 가족보다 최근에 이곳을 떠난 사람들이 남은 가족을 위로하러 많이 온다. 남겨진 이들의 고통을 함께 겪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자원봉사자 수가 가족들의 열 배쯤 돼 보인다.
 “봉사자 수가 가장 많았을 때는 지난달 20일로 팽목항과 체육관 두 곳을 합해 2350명이었다. 지금은 400명 정도로 줄였다. 전국에서 오겠다는 사람이 많지만 만류하고 있다. 요즘엔 주로 대학생들을 받고 있다. 이곳을 보고 우리처럼 무책임하고 비겁한 어른으로 자라지 말라는 교육의 의미도 담겨 있다.”

망각은 또 하나의 공포
실종자 가족들을 옆에서 지켜봐 온 자원봉사자들은 자식의 시신과 함께 진도를 떠나는 이들의 고통과 안도가 교차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했다. “며칠 전 이 앞을 지나는 수진이 엄마에게 ‘오늘 점심은 짜장면입니다’라고 했더니 ‘오늘은 못 먹어요. 딸 찾았어요’라며 덤덤히 대답하고 떠나더군요.” 대한적십자 봉사 텐트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조리사 박영규(61)씨의 말이다.

 팽목항의 실종자 가족 전용 천막 옆의 게시판에는 이런 글귀가 씌어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월드컵이 열립니다. 그러면 국민의 관심이 그리로 쏠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 비극적 사건들은 세인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갈 겁니다’. 아픔의 망각에 익숙한 한국인들의 자화상은 희생자와 실종자의 가족에게 또 하나의 공포다. ‘인간과 기억 아카이브’라는 단체를 이끌고 있는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김익한(44) 교수는 지난 14일부터 대학원생 등 9명을 동원해 세월호 사건에 대한 기록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팽목항과 체육관에 붙어 있는 ‘염원 쪽지’에서부터 기자들의 취재수첩까지, 모든 것이 기록의 대상이다. 그는 “유가족들에게 잊혀지는 것은 버려지는 것이다. 정부가 기억을 보존하지 않으니 시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팽목항의 세월호 침몰 유류품 보관소에는 주인 잃은 물건 500여 점이 모여 있다. 슬리퍼 한 짝, 아무 문양이 없는 셔츠처럼 주인을 구별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건들은 6개월 뒤에 폐기된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은 이 유류품처럼 잊혀지고 버려지게 될 운명을 걱정한다. 지윤양 아버지 허씨가 나지막이 말했다. “반년 뒤면 사람들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살지 않을까요. 여태껏 우리가 그렇지 않았나요. 벌써 ‘일상으로 돌아가자’ 이런 말이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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