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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기고] 나는 낙하산을 타지 않겠습니다

중앙일보 2014.05.17 01:02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진수
경기도청 문화체육관광국장
“아! 정말 답답해요. 일을 안 해요. 그냥 자리만 지키고 있어요.” “다시는 그런 사람 오면 안 돼요. 정말이에요. 절대 안 돼요.”



 민간에서 온 산하 기관장에게서 듣곤 하는 얘기다. 퇴직 공무원이 가는 자리는 업무도, 통제도 비켜가는 최고의 자리다. 임기가 보장되는 데다 지휘감독권을 쥔 후배 공직자들 자신이 나중에 갈 자리이기 때문이다. 낙하산은 공직자 선후배들이 서로를 끌어주고 뒤를 봐주는 그들만의 거래다. 이처럼 낙하산으로 이뤄지는 소위 ‘관피아(관료 마피아)’는 끼리끼리만 좋은 것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퇴직 공무원의 산하기관 또는 유관단체 재취업을 더욱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고쳐야 한다. 공직자도 이 기회에 권석천 논설위원의 지적(5월 14일자 중앙일보 시시각각)처럼 ‘전관예우의 감칠맛’ 따위는 포기해야 한다.



 퇴직 공직자가 산하기관에 가는 데 있어서 공직자들이 주장하는 몇 가지 명분이 있다. 업무 협조가 잘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확인됐지만 업무 협조는 업무 봐주기다. 특히 인연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관계가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공직사회의 인사적체가 심해 불가피하다고도 한다. 조직이나 기관치고 인사적체가 심하지 않은 곳이 있을까. 공직자들만 외부로 전가할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퇴직하지 않는다고 민간기업 같은 구조조정도 없지 않은가. 공직자가 가지 않으면 정치인이 갈 텐데 그러면 더 좋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고 공직자가 가야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직자가 가지 못하게 되면 정치인도 결국 그렇게 돼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명분 밑에 숨겨져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경제적 이득이다. 공직자가 명예퇴직을 하고 산하기관에 가면 소속기관으로부터 명퇴수당, 재취업기관으로부터 연금 또는 퇴직급여 등을 추가적으로 받는다. 공무원 정년과 같은 시점까지 임기가 보장될 뿐 아니라 적지 않은 돈을 더 벌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잉여이며 불로소득이다.



 공직자윤리법 개정 정도로는 관피아를 막을 수 없다. 관료들의 저력은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의외로 질기고 강하다. 재취업 심사를 강화하고 예외조항을 없앤다고 해도 우회 취업 등 틈새가 존재하는 한 내가 그동안 겪은 경험으로 보건대 그 틈새는 시간이 갈수록 커질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임기 말에는 도루묵이 될지 모른다.



 취업을 제한할 게 아니라 아예 금지시키는 게 맞다. 틈새를 막아 유혹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관피아 개혁’이 아닌 ‘관피아 금지’가 되어야 한다. 산하기관 재취업을 금지시켜도 공직자 입장에서 잉여를 못 얻을 뿐이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중학교 때의 일이었다. 학교에 다녀오니 집이 사라져버렸다.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살던 집이 철거될 예정이었는데 농사를 짓던 부모님은 이사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몇 번의 계고장에도 철거를 않자 관공서에서 중장비를 동원해 삶의 터전인 집을 대번에 무너뜨렸다. 보상도 보잘것없었다. 그때의 상실감은 지울 수 없었다. 지금 그 신도시가 아픔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런 상처를 마음에 지닌 사람이 공직자가 됐고 20년이 흘렀다. 그런데 이번처럼 공직자로서 자괴감이 든 적이 없었다. 안산이 고향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공직자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이 갈수록 엄해지는데 공직자들은 있으되 없는 것처럼 ‘부재중’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월호 이후 숨소리마저 죽이고 있다. 공직자가 무기력과 욕심으로 가득 찬 민낯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분노했다. 죄인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있는 것도 자업자득인 셈이다. 오죽하면 공직자들이 밖에 나가서 공직자가 아닌 것처럼 행동할까. 폭풍이 불면 바짝 엎드리는 것이 그들의 습성이다. 곧 지나가고 말 것이라고 여긴다.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하고 속상하다.



 성난 민심이 폭풍 정도가 아니라 태풍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엎드린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통째로 삼켜버릴 수 있다. 이번에 제대로 못 고치면 소 잃었으니 외양간도 필요 없다고 할지 모른다. 나 같은 소인배가 펜을 든 이유다.



 위기는 기회다. 공직자들이 그동안 닫아만 왔던 입을 열 때가 왔다. 공직자 스스로 ‘나는 낙하산을 타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하자. 나부터 실천하겠다. 고민하고 행동하는 공직자가 왜 없겠는가. 산하기관에 가지 않는다고 잃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떡고물을 버리면 자유가 온다. 덤으로 명예도 가능하다. 거리에 나가서도 더 이상 공직자 신분을 숨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작은 결심이 큰 물결을 이룬다. 이데올로기도, 혁명도 사라졌다. 그럴듯한 거대담론도 보기 힘들다. 생활 속에서의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그 실천들이 모여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산하기관 재취업 안 하기’야말로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이진수 경기도청 문화체육관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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