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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피땀 스민 광복군 공원 청소부라도 했으면

중앙일보 2014.05.13 01:09 종합 23면 지면보기
광복군 후손 자오성린씨는 틈만 나면 마을 입구의 광복군 주둔지를 찾아 젊은 날 생부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는 “이제 아무런 회한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계시던 광복군 옛터에 기념비가 세워지고 공원이 생긴다니 정말 기쁜 일이죠. 그곳에서 청소부라도 하며 여생을 살고 싶습니다.” 중국 산시성 시안(西安) 교외 두취(杜曲)진의 광복군 주둔지에 이달 하순 기념비가 세워진다는 소식을 누구보다도 반기는 사람이 있다. 주둔지 옛터와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둔 마을에 살고 있는 자오성린(趙生林·68)씨다. 어릴 때 중국인의 가정에 입양돼 중국인으로 자라났지만, 그는 조국 해방을 위해 이국 땅에서 젊은 날을 바쳤던 광복군의 후손이다.


중국 시안서 만난 후손 자오성린씨
"친척 있다면 한번 보고 싶은 게 꿈"

 1942년부터 두취진에 주둔한 광복군 제2지대는 청산리 전투의 영웅 이범석 장군이 지휘한 광복군의 주력부대였다. 이 장군은 휘하의 정예요원 50명을 골라 인근 마을인 타이이궁(太乙宮)에서 미군 전략정보부대(OSS) 교관으로부터 사격·폭파·도강 등의 특수훈련을 받게 했다. 자오성린의 생부도 이 훈련과 관계있는 인물인 듯하다. 그는 “부친은 매일 군복 차림으로 멀리 타이이궁까지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곤 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마을 노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며 이 지방 행정당국이 주민들로부터 채록한 구술 기록 등을 보여주었다.



 광복군은 45년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중 해방을 맞았고 대원들은 이듬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게 된다. 자오성린이 태어난 것도 이 무렵으로 추정된다.



 “한 광복군 대원이 쌍둥이를 낳았는데 아마 아이 둘을 키울 여력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땔감 공급 등의 일로 광복군 부대에 출입하던 중국인의 소개로 그중 한 아이를 출생 사흘 만에 중국인에게 양자로 보냈어요. 그 아이가 지금 이렇게 나이가 들었습니다.”



 중국인으로 자란 자오성린은 10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인민해방군(중국군)에 지원 서류를 낼 때 비로소 나를 키워준 엄마가 생모가 아니며, 나는 한국인의 후손이라고 말해 주더군요.” 적잖은 충격을 받았고 생부모가 누구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당시는 국교조차 없어 한국인 부모를 찾을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세월이 흘러 90년대 후반 광복군 제2지대 출신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 두취진에 다녀갔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전화와 편지로 연락을 취했다. 혹시라도 생부에 대한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지만 성과는 없었다.



 “부친은 이미 돌아가셨을 걸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광복군 주둔지에 기념비와 기념각이 세워지면 많은 한국인이 찾아 오겠죠. 혹시 그중에 나의 친척이라도 있다면 꼭 한번은 만나보고 싶은 게 마지막 꿈입니다.”



시안=글·사진 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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