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로벌 아이] 규제의 디테일이 중요하다

중앙일보 2014.05.13 00:20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상렬
뉴욕 특파원
뉴욕의 2만4000개 식당엔 위생등급이 있다. A·B·C다. 매년 위생검사(inspection)에서 A 등급을 받으면 좋지만 B·C등급을 맞으면 고달파진다. B등급은 약 6개월 안에, C등급은 약 4개월 안에 추가 검사를 받게 된다. 검사 항목은 조리기구 청결 상태, 음식물 적정 온도 유지 등 200여 개에 달한다. 식당 주인들에겐 이 검사가 죽을 맛이다. 검사관은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언제 있을지 모를 검사에 대비해 위생 상태를 늘 기준에 맞게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검사 과정에서 사소한 위반이라도 적발되면 수백 달러의 벌금 폭탄이 떨어진다.



 위생등급제의 진짜 위력은 따로 있다. 시장의 힘이다. B나 C 등급을 맞으면 손님 떨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 굳이 시 당국이 위생 상태에 문제가 있다고 확인한 B·C 등급 식당에서 밥을 먹을 이유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찾아가는 식당의 위생등급이 어떤지 어떻게 알까. 간단하다. 식당 출입문에 큼지막하게 위생등급카드가 붙어있다. 검사관은 이 등급카드를 붙이는 위치를 지정해준다. B나 C등급 카드를 부착하는 일은 식당 위생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자기 고백이다. 식당 주인들로선 내키지 않는 일이다. 등급을 감추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적발되면 대가를 단단히 치러야 한다. 위생등급카드 미게시는 가장 엄한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진 벌금이 최대 2000달러였다가 올해 1000달러로 낮아졌다.



 소비자에게 위생등급을 알려주는 방법은 이것만이 아니다. 뉴욕시가 만든 웹사이트에 들어가 레스토랑 이름을 치면 그곳이 어떤 등급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어떤 내용의 위생 항목을 위반했는지도 소상하게 나온다. 스마트폰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식당들의 등급 사기를 봉쇄하는 또 다른 채널인 것이다. 최근엔 한끼 식사비가 수백 달러나 되는 유명 레스토랑이 C등급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뉴욕시는 4년 전 시작한 위생등급제에 성공적이라는 자체 평가를 내리고 있다. A등급 식당 비율은 65%에서 88%로 뛰었다. 시의 식중독 발생 건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뉴욕시의 위생등급제는 규제 작동 시스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목표는 뉴욕 식당들의 위생 상태를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등급을 매기는 것은 그 출발점이다. 출발점과 목표 사이엔 방해 요소들이 활개칠 수 있는 큰 간극이 있다. 검사공무원과 식당이 유착하거나, 식당이 등급을 속이면 제도는 무용지물이 된다. 식당 주인들이 위생 상태 개선보다 벌금을 선택하면 제도는 생명력을 잃는다.



 정작 사람들에게 규제가 먹혀 들게 하는 것은 디테일이다. 위생등급카드를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부착하도록 강제하고, A등급이 될 때까지 불시 검사를 계속하며, 등급을 웹사이트에 올려 시민들과 공유하는 것이 그런 사례다. 규제는 선의만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규제의 디테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이상렬 뉴욕 특파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