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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원숭이 재롱, 홍학 군무…국민 행복지수 높여줬죠

온라인 중앙일보 2014.05.09 11:26



30돌 맞은 서울대공원















































창경원 잔디밭에 홍학 100여 마리가 나타났다. 난생처음 보는 빨간 새 무리가 ‘백조의 호수’의 선율에 맞춰 우아하게 군무를 췄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쇼가 끝나도 사람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1969년 창경원 동물원 개장 60주년을 맞아 첫선을 보인 홍악 군무는 단숨에 동물원 대표 공연이 됐다. 공연 시작 한두 시간 전부터 관람석이 가득 찼다. 워낙 인기가 많아 입장료 아닌 입장료도 받았다. 방석을 깔아놓고 10원씩 받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당시 창경원 입장료는 50원이었다. “기차 시간 다가오는데….” 시골에서 올라온 아빠는 홍학 군무를 봐야 한다고 조르는 딸아이 성화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어린이날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 10명 중 9명이 “창경원 동물원 구경”을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창경원에 다녀오면 최소한 일주일은 학교에서 최고 스타가 됐다. 집채만 한 코끼리를 실감나게 표현한답시고 한껏 두 팔을 펼쳤고, 홍학의 고고한 군무를 재현할 때는 어설픈 동작으로 홍학 흉내를 냈다.



그때는 어린아이는 물론이고 어른도 ‘창경원 앓이’를 했다. 어른들은 대신 창경원에 벚꽃 피기만을 기다렸다. 창경원 연못 춘당지에 배를 타러 나온 연인이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난데없이 창경원 타령을 늘어놓는 이유는, 지난 1일 서울대공원이 올해 개원 30주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서울대공원은 84년 창경원을 창덕궁으로 복원하면서 탄생했다. 창경원 동물원에 살던 동물 130종 891마리가 이사 간 새 집이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이다. 창경원 시절부터 따지면 올해는 105주년이 되는 해다. 서울대공원은 86년 국립현대미술관, 88년 서울랜드가 문을 열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들이 공원이 됐다.



서울대공원은 돈을 벌려고 만든 시설이 아니다. 그래서 입장료가 싸다. 어른이 3000원이고, 어린이는 1000원이다. 동물원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지만, 그래도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 토종 동물을 보존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동물보호 목소리가 커지면서 여론의 뭇매도 맞았고 고쳐야 할 부분도 아직 있지만, 서울동물원은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착한 동물원이다.



“옛날 전국체전 개막식 때 날린 비둘기, 전부 여기서 기른 거예요. 그 비둘기 숫자 맞추는 게 얼마나 중요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 호되게 훈련하는 쇼도 없앴고. 요즘은 거의 모시고 살아요.” 38년째 동물원에서 일하고 있는 전돈수(58) 사육사의 말이다.



이 서울대공원 개원 30주년을 맞아 창경원 시절부터 오늘까지의 이야기를 전한다. 오랜만에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 데리고 서울대공원에 나가보는 건 어떨까. 삼대의 추억을 더듬는 뜻깊은 하루를 약속한다.



145종 902마리 미국서 공수… ‘하늘을 나는 노아의 방주’ 아시나요

창경원서 서울대공원까지 동물원 105년




이 서울대공원 개원 30주년을 맞아 창경원 동물원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준비했다. 고궁 벚꽃 나들이에 잠을 설쳤던 할아버지·할머니의 어린 시절도, 난생처음 보는 코끼리에 눈이 휘둥그래진 엄마·아빠의 흑백사진도, 돌고래 쇼 보겠다고 2~3시간 줄을 서도 마냥 좋았던 시절도 전부 그 안에 있다.



그 시절의 명소 창경원 동물원



“아! 좋다 터졌구나/창경원의 봄바람//노리깽이 구다사이/노리깽이 구다사이//동물원 가세/동물원 가세”



1940년대 유행했던 ‘동물원 가세’라는 가요의 한 대목이다. ‘노리깽이 구다사이’는 “승환권(전차 차표) 주시오”라는 일본말을 표현한 것이다. 봄이 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이 노래를 읊조리며 창경원 벚꽃이 만개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창경원 벚꽃놀이는 7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울의 봄을 대표했다. 창경원은 일제가 창경궁을 유원지로 바꾸면서 붙인 이름이다. 일제는 조선 왕조의 기를 꺾겠다고 창경궁 전각을 허문 자리에 동물원을 짓고 벚나무를 심어 1909년 11월 1일 공개했다. 이후에 창경궁, 아니 창경원은 계절마다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진귀한 동물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 놀이명소로 거듭났다.



60~70년대 창경원 구경은 모든 국민의 꿈이었다. 시골에 사는 사람이 “창경원 다녀왔다”고 하면 “출세했다”고 치켜세울 정도였다. 밤 벚꽃 놀이가 특히 인기였다. 불 밝힌 오색전구 아래 삼삼오오 모여 앉아 몰래 가지고 온 술을 나눠 마셨다. 기타는 물론이고 꽹과리나 장구를 치는 사람도 있었고, 휴대용 전축을 틀어놓고 ‘고고춤’을 추는 젊은이도 있었다. 74년 서울시내 5대 궁(宮)의 입장료 수입이 8억9600여만원이었는데, 창경원에서 5억8000만원을 벌어들였다.



1909년 개장 당시 창경원은 약 4만6280㎡(1만4000평) 규모로, 동물은 모두 72종 361마리가 있었다. 이후에 전국에서 동물을 포획하면 무조건 창경원으로 보냈다. 1932년 기록을 봤더니 창경원 동물은 185종 650마리나 됐다. 23년 사이에 창경원은 두 배 이상 성장한 셈이었다. 당시만 해도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이 뉴스였다. 외국에서 동물을 들여오거나 새끼를 치면 바로 신문에 났다.



그때야 최고라고 칭송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창경원 동물원은 열악했다. 고(故) 오창영 서울대공원 초대 동물원장은 『한국동물원 80년사』에 “창경원은 동물 감옥에 불과했다”고 기록했다. 창살로 만든 우리에 동물을 넣고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사육사도 대우가 안 좋았다. “옛날 사육사는 3D 업종 중 하나였어요.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을 그냥 데려왔지. 76년 월급이 3만3000원이었는데, 그때 쌀 한 가마가 5만원이었습니다.” 76년 창경원 동물원에 입사해 오늘까지 자리를 옮기지 않은 서울대공원 동물원 전돈수(58) 사육사의 증언이다.



관람 예절도 엉망이었다. 동물에게 돌과 먹던 음식을 던지며 못살게 굴었다. “창경원 유인원은 팔도 술을 다 맛봤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했다. 가장 엽기적인 사건은 61년 일어난 ‘창경원 꽃사슴 사건’이었다. 한 정신이상자가 창경원에 침입해 꽃사슴의 목을 베어 갔다. 범인은 탑골공원에서 “녹용을 먹고 힘을 기른 다음 코끼리를 타고 북진통일을 하겠다”고 소리치다 잡혔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창경원은 폐허가 됐다. 창경원에 살았던 동물도 전부 죽었다. 전쟁이 끝나고 정부는 창경원부터 보수했다. 전국적으로 창경원에 동물 보내기 운동을 전개했는데,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한국은행은 맹수의 왕 사자를, 제일제당은 가장 비싼 아시아 코끼리를 기증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54년 동물원은 다시 문을 열었고, 창경원 밤 벚꽃 놀이는 58년 재개됐다. 오 전 동물원장은 창경원 재개장 날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꽃이 만개한 4월 20일(일요일)에 20만 명이 모였다. 한풀이의 한마당이었다. 웃음이 넘쳤다.” 한 시절을 풍미한 창경원은 83년 12월 30일 창경궁으로 복원됐다. 창경원의 동물은 6개월에 걸쳐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다. 모두 130종 891마리였다.



동물원에서 대공원으로



서울대공원은 60~70년대 경제성장을 이뤄낸 국민에게 국가가 주는 일종의 ‘보너스’였다. 대표 시설은 창경원과 마찬가지로 동물원이었다. 전체 856만㎡(259만 평) 가운데 동물원이 287만㎡(87만8000평)를 차지했다. 애초 계획은 257만㎡(78만 평)였는데, 평양동물원 면적이 264만㎡(80만 평)라는 사실을 듣고는 면적을 늘렸다. 상부에서 “무조건 평양동물원보다 크게 지어라”고 지시했단다.



공사가 한창이던 79년 2차 오일쇼크가 터졌다. 80년 소비자물가가 28.7%나 올라 기획예산부가 사업 규모를 축소하자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동물원은 단순한 레저 시설이 아니라 국력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기 때문이다.



“새는 지쳐 날 수가 없을 때까지 몰아서 잡았고, 맹수는 3일간 굶긴 다음 먹이로 유인했어요.”



전돈수 사육사는 창경원 동물이 서울대공원으로 이사 오던 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압권은 83년 11월의 ‘미국 댈러스 공수작전’이었다. 동물 145종 902마리를 대한항공 특별 전세화물기에 실어왔는데, 댈러스 현지 언론이 “하늘을 나는 노아의 방주”라고 대서특필했다. 그렇게 해서 서울대공원에는 모두 374종 3909마리의 동물이 모였다.



84년 5월 1일 개원 당일 방문객은 75만 명이나 됐다. 동물원에서 4㎞ 떨어진 남태령까지 구름 인파가 이어졌다. 나흘 뒤 어린이날에는 100만 명이 찾았다. 당시 서울 인구(830만 명)의 약 8분의 1이 서울대공원을 찾은 것이다. 특히 돌고래 쇼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부터 고위 관료, 연예인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돌고래 쇼를 보러 왔다. 서울대공원 개원부터 돌고래팀에서 일한 전 사육사는 “1년에 방송 출연만 120번 넘게 했다”고 그 시절을 증언했다.



방사형 우리로 바꿨다고 하지만, 초창기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창경원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동물이 주인공이 아닌 인간 위주의 동물원이었다. 동물은 콘크리트 바닥이 깔린 쇠창살 안에서 살았고, 동물을 학대하고 조롱하는 관람 문화도 여전했다.



2000년대 들어 서울대공원은 변화를 시작했다. 2002년 환경연합 모임 ‘하호’가 발표한 서울대공원 동물원 실태보고서 ‘슬픈 동물원’의 영향이 컸다. 환경단체는 열악한 환경에 사는 동물들의 이상 행동을 사진으로 찍어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큰 반향이 일어났고, 서울대공원은 ‘생태동물원’을 표방하며 혁신을 도모했다. 콘크리트를 들어내고 흙을 깔았다. 먹이는 폐타이어에 숨기거나 통에 넣어줬다. 동물을 움직이게 하고 머리를 쓰게 하는 것으로, 동물 행동 풍부화 이론에 근거한 조치였다. 서울대공원은 2009년 동물원 이름도 서울동물원으로 바꿨다.



2013년에 이르러 서울동물원은 동물 쇼를 폐지했다. 대신 생태 설명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알락꼬리여우원숭이는 태어나서 4개월 동안 어미 등에 붙어살아요.” 지난주 서울동물원 유인원관 우경미(34) 사육사가 관람객 20명에게 둘러싸인 채 원숭이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었다. “생태설명회 덕분에 관람객 인식도 바뀌고 관람 문화도 개선되고 있다”고 우 사육사가 소개했다.



“서울동물원은 앞으로 ‘동물을 위한 동물원’으로 바뀐다. 종(種) 보전교육센터를 통해 멸종 위기에 처한 토종 동물을 번식시킬 계획이다. 노정래(50) 동물원장은 “동물에게 야생성을 길러주고 원래 서식지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동물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동물원은 2005년 반달가슴곰을 시작으로 돌고래 ‘제돌이’, 삵, 여우 등을 서식지로 보내고 있다.



서울동물원의 자랑? 숲이죠. 30년 전에는 무릎까지 오는 묘목이었는데,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자랐어요. 다른 곳에서 아무리 돈을 써도 자연만큼은 따라올 수가 없어요.”



정년을 3년 앞둔 전돈수 사육사가 나무를 보듬으며 말했다. 청계산 자락에 일렁이는 신록이 서울동물원을 덮쳤다. 사자가 포효하자 새장에 있던 두루미 떼가 날아올랐다. 자연의 생기가 온몸을 감쌌다.



◆이용정보=서울대공원(grandpark.seoul.go.kr)은 서울동물원·식물원·테마가든·자연캠프장·서울랜드·국립현대미술관이 모여 있는 종합 테마공원이다. 개원 30주년을 맞이해 7월 25일까지 미리내다리에서 ‘서울대공원 역사사진전’을 연다. 창경원 동물원 시절부터 서울대공원 초창기 모습을 담았다. ‘동물원과 나’ 사진 공모전은 다음 달 30일까지 이어진다. 지난 30년 동안 서울대공원에서 촬영한 사진을 e메일(anibusking@naver.com)로 보내면 우수작을 가려 선물을 준다.



서울동물원을 입장하기 전에 가이드맵은 꼭 챙기자. 가이드 맵에 소개된 주요 관람로(호랑이길·돌고래길·사슴길·부엉이길)를 따라가면 한 곳도 빼놓지 않고 동물원을 구경할 수 있다. 좀 더 깊이 있게 동물을 관람하고 싶으면 26개 프로그램이 마련된 생태설명회에 참여하면 된다. 가이드맵에 시간표가 나와 있다. 무료 순환버스도 추천한다. 오전 10시~오후 5시, 대동물관에서 매시 정각·15분·30분·45분 출발한다. 동물원 주요 시설 10곳을 지난다. 서울동물원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02-500-7335~8.



글=홍지연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 서울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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