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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어장치 교체" 4년 전 권고 묵살했다

중앙일보 2014.05.09 01:49 종합 10면 지면보기
8일 오전 대구도시철도 2호선 문양차량기지에서 터널 내 전동차 화재·탈선에 대비한 비상대응훈련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2010년 서울메트로에 구형 ‘자동열차정지시스템(ATS)’ 차량을 신형 ‘자동운전시스템(ATO)’ 차량으로 조속히 개선하라고 권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0년 1월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탈선 사고에 대한 조사보고서에서다. 지난 2일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 사고에서 오작동한 ATS 신호체계에 대한 개선 권고가 이미 4년 전에 있었지만 제대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서울메트로, 철도위 지침 무시
2년 전 부산 사고도 닮은꼴
대책 공유 안 해 재난 반복



 본지가 8일 입수한 ‘2010년 1월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탈선 사고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위원회는 ATO 도입과 함께 구형 ATS 신호장치 위치 조정 등을 서울메트로에 요구했다. 사고조사위 관계자는 “ATO 설비를 도입할 경우 신호 미확인 등 사람 잘못으로 인한 사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신도림역 탈선 사고는 2010년 1월 20일 오후 7시40분쯤 승객을 내린 후 신정차량기지로 가던 전동차에서 발생했다. 기관사가 정지신호를 보지 못하고 주행하다 전환 중인 선로에 올라타며 발생한 사고였다. 이 사고로 2시간가량 전동차 운행이 중단돼 퇴근길 시민이 큰 불편을 겪었다. ATS에 의해 전동차가 비상제동을 실시했지만 제동거리가 짧아 탈선을 막을 수 없었다.



 서울메트로는 2006년부터 2호선 ATS를 ATO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선로 설비는 마쳤지만 차량 개조 작업은 지난 8년간 43%만 ATO로 바꿨다. 이 때문에 ATS와 ATO, 두장치를 연결해주는 인터페이스까지 3가지 시스템이 혼재 돼 오작동과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서울메트로 측은 “차량교체 없이 ATO 장치를 개량할 경우 1편당 30억원의 비용이 소모된다”며 “일부 개량보다 신차 구입이 비용·안전성 측면에서 낫다고 판단해 차량 교체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ATO 설치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비용 문제도 있지만 시험운행을 해야 하는 불편함, ATO가 도입되면 자동화에 따른 인원 감축을 두려워하는 노조 등의 반발이 열차 개선을 막는 주요 원인이다”고 지적했다.



 ◆2012년에도 부산지하철 탈선 사고=상왕십리역 추돌 사고가 일어나기 2개월 전인 3월 철도항공위는 ‘부산교통공사 3호선 배산~물만골역 간 전동열차 충돌·탈선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무력한 관제실과 급커브 구간, 뒤늦은 안내방송과 200여 명 부상’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2년 전 부산지하철 사고는 상왕십리역 사고와 쏙 빼 닮았다.



 2012년 11월 3호선 물만골역 인근 선로에 승객 400여 명을 실은 열차가 고장으로 정차했다. 관제소는 고장 열차를 끌어가기 위해 견인열차를 보냈다. 이때 견인열차의 기관사는 자신의 위치를 관제소에 정확히 보고하지 않았다. 관제소 역시 정차열차와 견인열차의 간격을 확인하지 못했고, 기관사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또 물만골역 선로는 상왕십리역과 마찬가지로 급커브 경사 구간이었다. 후발 열차가 앞 열차를 발견하고 급제동하기에는 제동거리가 짧았다.



 두 사고의 대응 과정도 비슷하다. 승객을 실은 열차의 기관사는 안내방송을 하려 했지만 전력이 끊겨 승객들에게 안내방송이 전달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혼란이 가중됐고 200여 명이 부상했다.



사고 후 부산교통공사는 관제소의 실수에 대응할 수 있도록 운전실에 태블릿PC를 설치해 열차 운행 위치를 표시키로 했다. 또 사고 시에도 방송할 수 있도록 방송선을 늘렸다. 곡선 구간에서는 제한속도를 준수하도록 교육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서울메트로 등과 공유되지 못했다.



국가재난관리학회 이명선(이화여대) 수석부회장은 “일본은 사고가 발생하면 원인과 개선책을 유관기관과 공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며 “한국에선 다른 기관에서 발생한 사고는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한다”고 지적했다.



안효성·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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