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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로 간 시인 천상병, 노래로 불러내다

중앙일보 2014.05.09 01:04 종합 21면 지면보기
‘아마도이자람밴드’는 첫 공연 당시 팀명을 묻는 질문에 “아마도 ‘이자람밴드’가 아닐까요?”라고 대답한 것을 스태프가 착각하면서 그대로 굳어졌다. 왼쪽부터 이민기·강병성·이자람·이향하·김홍식. 이자람은 2012년 유민 홍진기 창조인상 문화부문 수상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천상병 시인
욕망이 들끓는 시대에 무욕(無欲)의 시인 천상병(1930~93)이 소환됐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가난이 직업일지언정 한잔의 커피와 두둑한 담배로도 행복한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문학평론가 김우창은 그에 대해 “고고함을 뽐내는 자기 탐닉이 아니라 세상에 대하여 투명하게 있고자 하는 서정적 자세를 정확하게 기록한다”고 했을까. 이 천진난만한 시어를 노래로 불러낸 주인공은 시인의 손주뻘도 더 되는 ‘아마도이자람밴드’다.

'아마도이자람밴드' 새 앨범
천 시인이 살아서 노래 들었다면
'아~ 좋다, 좋다, 참 좋다' 했을 것
우리 음악도 한 뼘 더 자랐죠



 천재 소리꾼이자 전방위 예술가 이자람(보컬·35)을 주축으로 이민기(기타·32), 강병성(베이스·32), 김홍식(드럼·31), 이향하(퍼커션·30)로 구성된 이 밴드는 2005년 처음 결성됐다. 시인과 연이 닿은 것은 2010년 천상병예술제에 참여하면서다. 교과서에 실린 시 ‘귀천(歸天)’밖에 몰랐던 멤버들은 시집과 수필집, 평전 등을 읽어나가며 점점 그에게 매료됐다. 이자람이 ‘피리’ ‘노래’ ‘은하수에서 온 사나이’ 등 7편의 시에 멜로디를 입혔고, 밴드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편곡을 했다.



 “천상병이란 위대한 명인을 만난 게 아니라 옆집 사는 재밌는 아저씨를 만난 것처럼 작업했어요. 그의 말과 수다를 우리가 이해한 수준에서 편하게 해석하고 음악으로 옮긴 거죠.”(이자람)



 그래서인지 심오한 상징이나 비유보다는 일상의 시어들이 노랫말로 건너갔다. 친구 생각이 간절하다고 말하는 ‘동창’은 일렁이는 통기타 반주에 시어들이 아스라이 흩어지고, 가난이 떳떳하다고 외치는 ‘나의 가난은’은 껄렁하면서도 호탕한 목소리가 시종일관 당당히 걸어나간다. 앨범제목과 동명의 곡인 ‘크레이지 배가본드’는 어떤가. 베이스 연주자 강병성의 설명에 따르면 ‘하늘을 안고/바람을 품고/한모금 담배를 빤다’는 미친 방랑자의 터프함을 강렬한 록 사운드에 실어 날랐다.



 타이틀곡인 ‘은하수로 간 사나이’는 무척이나 고독하고 영롱한 노래다. 이자람은 ‘저별은/은하수 가운데서도/제일 멀다/(…)/그 아득한 길을/걸어가는지/버스를 타는지/택시를 잡는지는 몰라도/무사히 가시오(시 ‘은하수에서 온 사나이’ 중 일부)’라는 구절을 읽으며 천 시인이 누군가를 맞이하고 보내는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졌다고 했다.



 만약 시인이 살아서 이 노래를 들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 좋다, 좋다, 참 좋다’라고 했을 것 같아요. 수필집에 보면 선글라스를 선물 받은 시인이 그렇게 말하거든요. 좋을 땐 꼭 ‘좋다’를 세 번씩 말했다고 하네요.”(이민기)



 “술 먹자고 하셨을 것 같아요. 시인은 우리의 인생이 술 한잔과 함께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방탕하게 마시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한 잔 걸치고 기분 좋게 헤어질 수 있는 거죠. ”(이자람)



 지난해 정규 1집 ‘데뷰’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행보를 알린 밴드는 천상병이란 큰 산을 넘어오면서 한 뼘 더 자랐다.



 “1집은 각자 활동하면서 만들었던 곡을 하나씩 모으는 작업이었어요. 그런데 천상병 앨범은 하나의 ‘밴드’로 함께 들여다보고 방향을 정했어요. 천상병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 거죠.”



글= 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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