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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생명으로 통했다 … 이어령·김병종의 동행

중앙일보 2014.05.09 01:02 종합 21면 지면보기
생명. 스러진 눈부신 청춘이 사무치게 아픈 이 봄, 우리에게 이보다 더 귀하고 가슴 저미는 말이 있을까. 이 봄날,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영인문학관 내달 30일까지 전시
두 사람 모두 같은 화두 천착
"장르 허물어 통섭을 이룬 향연"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9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열리는 ‘생명 그리고 동행-이어령·김병종전(展)’이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성 이어령(80·사진) 전 문화부 장관이 ‘생명’을 주제로 쓴 시 10편과 김병종(61) 서울대 교수의 ‘생명의 노래’ 연작 20여 점이 함께 전시된다.



 생명은 두 사람을 잇는 하나의 화두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출간한 『생명이 자본이다』(마로니에 북스)에서 노쇠한 자본주의 문명을 복원하기 위해 생명자본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해 전북 도립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 ‘김병종 30년, 생명을 그리다’ 전시회를 연 김 교수는 ‘바보 예수’ 연작과 ‘생명의 노래’ 연작을 통해 생명이란 주제를 천착해 왔다.



 생명이란 공통분모가 있기에, 두 사람의 동행은 더 큰 울림을 만들어 낸다.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 봄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는 김병종 화백의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170×110㎝, 1985). ‘바보 예수’ 연작의 하나로, 죽음 너머의 생명세계를 보여준다. [사진 영인문학관]
 ‘어둠의 벼랑 앞에서/내 당신을 부르면/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너 거기 있었느냐”/…/날 찾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중략)…//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어느 무신론자의 기도2’ 중). 이 전 장관의 시는 마치 피눈물을 흘리며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는 예수를 그린 김 교수의 작품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170×110㎝)에 대한 대답 같다.



 강인숙 관장은 “그림과 문학의 동행은 경이롭고 감동적이었다.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 통섭을 이루는 것은 모든 예술이 하나였던 원초적 광장으로 돌아가는 뜻 깊은 향연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르네상스적 인간’ 이어령의 또 다른 동행을 살피는 전시도 함께 열린다. 그와 함께 문화의 수레바퀴를 끌고 온 길동무와의 인연을 되짚는 자리다. 소설가 김승옥(73)이 그려준 캐리커처부터 백남준(1932~2006)이 그의 환갑 때 보낸 엽서, 건축가 김수근(1931~86)이 그에게 보낸 연하장 등 수많은 문화인들과 교류한 흔적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34)가 11살이던 1991년 아스펜 음악축제에서 보낸 엽서에는 슬며시 웃음도 지어진다. “지난번에 주신 만화책은 참 재미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스펜은 높은 산에 아직도 눈이 있습니다. 장관님 저희 집에 꼭 한 번 꼭 오세요.”



 떠난 자와 남은 자, 그리고 앞으로 더 오래 걸어갈 사람의 동행이 새삼 아름다웠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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