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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기 러시아전에 다 걸어라"

중앙일보 2014.05.09 00:42 종합 25면 지면보기
복거지계(覆車之戒).


[허정무의 조언] 브라질 월드컵 D-35
4년 전에도 그리스전 사활
지겹도록 세트피스 훈련
원정 첫 16강에 결정적 도움

 월드컵에 도전하는 홍명보 감독에게 전하고 싶은 한자성어다. 뒤에서 쫓는 자는 앞에 가다가 엎어진 수레에서 교훈을 얻어,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는 의미다. 중국 전한시대 중신 가의(賈誼)가 문제(文帝)에게 올린 말이라고 한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부터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 한국은 고비마다 수많은 실수를 했다. 그 실수를 디딤돌 삼아 한국 축구는 한 발 한 발 성장해왔다. 내가 지휘했던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16강전에서 우루과이에 아깝게 패했다. 돌아보면 너무도 아쉬운 순간들이 많다. 그 실수를 돌이켜보고, 홍 감독은 브라질에서 16강을 넘어 8강까지 달려나가길 바란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맡으면서 홍 감독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팬들은 잘 모르겠지만 홍 감독은 오래전부터 착실하게 월드컵 준비를 해 왔다. 수비수 홍정호가 아우크스부르크에 진출한 직후에는 구단에 협조를 구해 별도의 훈련 프로그램을 줘서 관리했다. 홍정호가 벤치에 머무는 동안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또 기성용의 계약 상황과 몸 상태까지 세세하게 체크하는 것도 놀라웠다.



 이제 월드컵은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23명의 선수도 정해졌다. 지금부터 감독이 해야 할 일은 크게 세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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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는 선수들의 컨디션 체크다. 부상을 당한 선수, 벤치에 오래 머문 선수, 너무 많은 경기를 뛰어 피로가 누적된 선수 등 23명의 컨디션은 제각각이다. 이들에게 각각 적절한 훈련 프로그램을 적용해 컨디션을 균일화하면서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서 월드컵에는 최상의 몸상태로 출전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전략을 세우고, 전술을 가다듬어야 한다. 전술은 상대와 맞붙어 싸우는 방식이고, 전략은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2010년 남아공에서는 코칭스태프 의도대로 경기가 풀렸다. 첫 경기였던 그리스를 반드시 잡고, 아르헨티나에는 져도 좋으나 최대한 비기는 작전으로 갔다. 승점 3점 이상을 확보한 뒤 나이지리아전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었다. 당시 그리스를 2-0으로 이겼고, 아르헨티나에 1-4로 졌다. 그래도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기며 원정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올랐다. 홍 감독 입장에서도 첫 경기인 러시아전이 매우 중요하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파비오 카펠로라는 명장이 이끌고 있지만 러시아는 못 넘을 산은 아니다. 우리 선수들이 충분히 해볼 만하다.



 마지막은 그라운드에서 적용할 전술을 구체화해야 한다. 2010년에도 그리스전을 앞두고는 세트피스에 공을 들였다. 비디오 분석관에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나온 세트피스 영상을 모두 모으도록 해 참고하면서 훈련했다. 세트피스 훈련은 몹시 지루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꼭 필요했기 때문에 반복하면서 숙지했다.



결과적으로 본선에서 세트피스로 2골을 넣었고, 세트피스 실점은 없었다. 돌아보면 이게 16강 진출의 결정적 디딤돌이 됐다.



허정무 2010 남아공 월드컵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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