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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증거조작 사건은 국정원 관행이 빚은 참사

중앙일보 2014.05.09 00:38 종합 26면 지면보기
김성호 전 국정원장은 “법과 제도가 아무리 잘 돼 있어도 그걸 운용하는 사람이 제멋대로 하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된다”며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을 국정원장에 임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승식 기자]
세월호 참사로 많은 게 묻혔다. 국정원과 검찰 개혁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잠시 여론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을 뿐 완전히 묻힌 것은 아니다. 충격이 가시고 나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인 김성호(64)는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냈다. 양대 권력기관의 생리와 내막을 누구보다 잘 안다. 4·16 참사 보름째가 되던 지난달 30일 그를 만나 국정원과 검찰의 문제점과 개혁 방향을 물었다.

-댓글 사건에서 간첩 증거 조작 사건까지 이 정부 들어 국정원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선 느낌이다. 뭐가 잘못된 것인가.

 “우선 전임 원장의 독단적 리더십과 인사전횡의 후유증이 크다고 본다. 정치권 줄대기나 댓글 사건이 그런 예다. 또 하나는 국정원의 관행 문제다. 과거 중정이나 안기부 시절에는 힘으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옛날에 재판이 끝난 민청학련 사건 같은 것들도 절차 문제로 다 뒤집어지고 있다. 적당히 해도 전처럼 대충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태도로 임하다가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정보의 세계는 사기와 허위가 판치는 살얼음판 같은 세계다.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그냥 내놓다가는 당하기 십상이다.”

 -증거 조작은 법치주의와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위중한 범죄행위다. 그래서 대통령도 사과를 했을 것이다. 이 정도 사안이면 국정원장이 사과가 아니라 사퇴를 했어야 맞는 것 아닌가.

 “국정원에는 해외와 국내 파트가 있다. 해외 파트는 적국을 상대로 하는 경우도 있다. 어쩔 수 없이 그 나라 법을 어길 수도 있다. 그래서 문제가 되면 우리가 적극 감싸야 한다. 국내 활동은 다르다. 법을 지키면서 해야 한다. 일부 직원의 위법 행위라 할지라도 최고 지휘자는 책임질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잘못이 고쳐지지 않는다.”

 -국회 새누리당 혁신연대 모임 특강에서 “너무 애국심이 강해서 그랬을 수 있다”며 증거 조작을 변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성경을 보기 위해서라면 촛불을 훔쳐도 된다는 소린가.

 “간첩 혐의자의 범죄 행위를 입증하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국정원 직원들의 애국심은 남다른 데가 있다. 국가를 위해서는 죽어도 좋다는 신념을 갖도록 젊어서부터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 아닐까.

 “진정 조직을 생각했다면 중도에서 멈췄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번 일로 조직에는 엄청난 해를 끼쳤다. 수사 과정에서 블랙요원 이름이 다 나오고, 협조자가 나와서 증언까지 했다. 그 바람에 대북정보망이 망가지고 조직은 만신창이가 됐다.”

 -국정원의 조직 문화 탓도 있지 않을까.

 “차제에 확실히 바꿔야 한다. 요즘엔 민변 변호사들을 당할 재간이 없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그 쪽에 다 모여 있다. 적당히 조작한 증거로는 어림도 없다. 무죄가 나더라도 법과 원칙에 맞게 해야 한다.”

 -국회 특강에서 “처벌받을 각오를 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라며 “정보원의 신세가 원래 그렇다”는 말도 했다. 교도소 담장 위를 위태롭게 걷는 게 정보원의 숙명이란 뜻인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캐내기가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자기유혹에 빠져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수가 있다. 심지어 ‘이것저것 다 지키면서 할 것 같으면 정보원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를 하는 책임자들도 있다. 이젠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국내 활동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이 허용하는 선을 지키면서 해야 한다.”

 -증거 조작은 법이 정한 금지선을 명백히 넘은 것이다. 당연히 멈췄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사실 내 경우 ‘스톱’을 많이 했다. 테러 용의자를 놓치고, 산업정보가 해외로 유출되는 걸 뻔히 보면서도 어쩌지 못한 경우도 있다. 증거를 확보할 수 없으니 도리가 없다.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부분이다.”

 -제도적 뒷받침이라 함은.

 “국정원 개혁을 위해서는 병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와 법적 토대를 마련해 줘야 한다.”

 -예를 들자면.

 “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도 휴대전화 감청을 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통신회사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무선통신의 경우 통화기록만 있지 내용은 알 수가 없다. 휴대전화 감청을 못해서 테러나 간첩 용의자를 놓친 게 한두 건이 아니다. 산업 스파이도 마찬가지다.”

 -국정원이 운용하는 이동형 감청 장비가 있는 걸로 아는데.

 “김대중 정부 때 일어난 국정원 도청 사건 이후 다 없애버렸다. 정보기관이 휴대전화 감청을 못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미국·독일·영국·이스라엘… 어디고 다 한다.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것도 휴대전화 감청 덕분이었다. 우리는 간첩 용의자가 있어도 휴대전화 감청을 못해 증거 확보가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조력자의 진술에 의존하게 된다. 유우성 사건 경우 여동생의 진술, 이석기 사건은 RO(혁명조직) 조직원의 진술…이런 식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진술을 바꾸면 그걸로 끝이다.”

 -관련 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나.

 “당연히 올라가 있다. 내가 국정원장으로 있을 때도 냈고, 그 전에 지금 야당 중진이 제출한 법안도 있다. 하지만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통과시켜 주지 않고 있다. ”

 -실제로 인권 침해 소지가 있지 않나. 정치적 목적에 악용될 수도 있고.

 “법원의 영장을 받아서 한다. 또 언제, 어디서, 누가 감청했다는 사실을 본인에게 알려주게 돼 있다. 인권 침해나 악용 소지는 없다고 본다.”

 -장비를 다시 도입하면 될 것 아닌가.

 “무선기지국을 일일이 옮겨 다니며 해야 하기 때문에 감청에 한계가 있다. 더구나 정보기관이 직접 하면 의심을 받는다. 그래서 다른 나라도 다 통신회사를 통해서 한다.”

 -국정원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정치적 중립성인데.

 “지금도 법적으로는 중립성이 보장돼 있다. 정치 관여를 하면 징역 5년 이하의 처벌을 받는 것으로 돼 있는데 지난해 말 국회 국정원 개혁특위에서 7년으로 올렸다. 공소시효도 10년으로 늘려 정권이 바뀌어도 처벌할 수 있게 했다. 정치개입으로 문제가 되면 파면되고, 연금도 못 받는다. 내부고발을 허용하고, 외부에 신고해도 면책이 되도록 한 것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상명하복 풍토에서 실효성이 있을까.

 “내부고발 제도의 존재 자체가 지휘부에는 큰 부담이 된다. 함부로 정치개입 얘기를 꺼낼 수가 없다. 요즘은 옛날과 다르다. 모든 게 다 드러나게 돼 있다.”

 -제도보다 중요한 건 운용 아닌가.

 “물론이다. 아무리 법과 제도가 잘 돼 있어도 그걸 운용하는 사람이 제멋대로 하면 ‘화이부실(華而不實)’, 즉 빛 좋은 개살구가 된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을 국정원장에 임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보기관은 국가안보기관이면서 동시에 정권안보기관 성격도 있지 않은가.

 “100% 국가안보기관으로 가야 한다. 정권안보는 포기해야 한다.”

 -국내 정보를 취급하는 이상 그게 가능할까.

  “국내 정보 활동 범위는 대테러, 대공, 방첩, 국제범죄 등 국가안보와 국익을 위한 것으로 법에 정해져 있다. 국내 정치는 대상이 아니다.”

 -국내 정보 파트를 없애자는 주장도 있다.

 “그건 무리다. 간첩 활동이나 테러 조직처럼 국내외 구분이 없는 경우가 많다. 국내외 정보를 다 담당하되 국내 정치 정보에선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

 -대통령과 국정원장이 생각하는 개혁은 ‘셀프 개혁’인 것 같은데 그걸로 문제가 해결될까.

 “아무리 날카로운 칼이라도 제 스스로를 벨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국회에 맡기는 것도 문제다. 국회는 공개성이 원칙인데, 정보기관은 비밀성·보안성이 생명이다. 외부로부터 간섭을 받게 되면 국정원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두 가지를 적절히 배합해야 한다. 스스로 하기 힘든 부분은 외부의 개입을 수용하고,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고쳐야 한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검찰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검찰은 소추기관이지 간첩 잡는 기관이 아니다. 간첩 사건은 몇 년, 길게는 몇 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1~2년마다 자리를 옮겨 다니는 검사들이 수사까지 맡는 건 무리다.”

 -간첩 사건 증거 조작과 관련해 담당 검사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기자가 쓴 기사가 허위로 밝혀졌는데도 기사를 출고한 데스크는 아무 책임도 안 지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닌가.

 “위조 또는 허위라는 사실을 검사가 알았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형사법상 원리가 그렇다.”

 -국정원에 대한 검찰 수사를 보면서 “신념 같은 것은 안 보이고 마치 통제불능의 터미네이터를 보는 것 같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헌법의 기본 정신은 자유민주주의다. 그걸 수호할 책임이 검사한테 있다. 검사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국가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간혹 자유민주주의도, 인민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똑같이 하나의 가치라는 가치중립적 입장에서 사건을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댓글 사건을 보면서 특히 그런 느낌을 받았다.”

 - 그렇다고 터미네이터인가.

 “특수부 검사 시절 나는 환부만 딱 집어내 외과수술 하듯 하는 수사를 좋아했다. 요즘은 어디가 아프다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다 뒤진다. 그러다간 수술도 받기 전에 죽는다. 기업수사는 특히 그렇다. 검사들은 엘리트 의식 때문에 자기가 맡은 사건은 무조건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몇 년씩 걸려도 끝까지 파고든다. 적이 죽어야 끝나는 터미네이터 같다. 의혹이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나면 일단 종결해야 한다. 자기가 그린 ‘작품’에 빠져 자꾸 만들어내는 쪽으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

 -대공수사는 현행대로 국정원이 하되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강압이나 인권침해가 있었는지, 증거능력이 있는지만 면밀하게 따져 기소 여부를 결정하면 되는 것 아닌가.

 “동감이다. 검사는 꼼꼼하게 법을 따져 수사지휘를 제대로 해야 한다. 국정원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검찰 개혁의 핵심도 결국 정치적 중립성 아닌가.

 “검찰의 중립성도 제도적으로는 보장이 돼 있다. 상부 명령에 대한 이의제기권도 보장돼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보면 검사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거나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지는 않다. 과거와 달리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상당 부분 확보돼 있다고 본다. 앞으로 특별감찰관제와 상설특검제가 시행되면 더 그렇게 될 것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김성호 전 국정원장은 …

1950년 경남 남해생. 브니엘 고교, 고려대 법대 졸업. 74년 사시 16회 합격. 대검 중수부,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로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 이철희·장영자 사건 등 수사. 노무현 정부에서 부패방지위원회·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과 법무부 장관(2006년 8월~2007년 8월) 역임. 이명박 정부 초대 국정원장(2008년 3월~2009년 2월). 현재 재단법인 행복세상 이사장.

인터뷰 후기

"받아 적고 따르기만 하는 장관
9급 공무원과 뭐가 다른가?
기다린 듯 쓴소리 쏟아낸 그"


인터뷰의 주제는 국정원과 검찰 개혁이었지만 세월호의 참극을 피해갈 순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만기친람형 리더십’ 얘기가 나오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소신을 쏟아냈다.

 “국정 운영은 대통령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사적 연고를 떠나 두루 인재를 구해야 한다. 자질과 인성을 갖춘 사람을 골라 장관으로 앉히고, 일단 임명했으면 그에 따르는 권한을 주고 책임도 지워야 한다.” 장관들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장관도 나름의 철학과 비전을 갖고 정책을 개발하고 집행해야 한다. 소신껏 하다가 임명권자와 뜻이 안 맞으면 그만두면 되는 거다.” 그는 “대통령 지시사항은 장관 컴퓨터에 실시간으로 다 뜨기 때문에 굳이 받아 적고 말고 할 게 없다”며 “받아 적기나 하고 지시에만 따른다면 9급 공무원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했다.

두 시간여 동안 많은 걸 물었고, 그는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200자 원고지 150장 분량을 25장으로 줄이는 건 피 말리는 일이었다. 나름대로 골라낸다고 골라냈지만 알곡이 빠졌다면 전적으로 인터뷰어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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