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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의료 한류, 정부도 거들어야

중앙일보 2014.05.09 00:38 경제 10면 지면보기
선승훈
대전선병원 의료원장
‘17만4067㎞’. 대략 지구 4바퀴 반이 넘는 이 거리를 지난 1년간 다녔다. 11개국 30여 개 도시를 방문했다. 해외환자를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4년 전 보건복지부 해외환자 유치 선도병원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해외환자 유치는 우리 병원의 주요 전략이 됐다. 중동에서 독감에 걸리고 모스크바 공항에서 새우잠을 자며 48시간 대기한 적도 있다. 섭씨 40도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영하 40도의 러시아로 이동하며 하루에 80도의 온도 차를 경험하기도 했다.



 2010년 90여 명에 불과하던 해외환자는 지난해 3300명을 넘어섰다. 러시아 오렌부르크시 시장과 우즈베키스탄 전 대통령 주치의 같은 환자도 있었다. 이들은 시 관용차를 한국산 고급차로 바꿀 만큼 친한파가 됐다. 그들의 소개를 받은 또 다른 많은 환자가 한국행을 택했음은 물론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의사에게 몸을 맡긴다는 것은 웬만한 ‘신뢰’가 전제되지 않고선 힘든 일이다. 의료관광 정책으로부터 시작한 해외환자 진료와 해외 의료진 연수는 언어와 문화의 벽을 넘어 한국의료의 국제적 신뢰를 쌓는 일이었으며, 과거 우리가 선진국으로부터 의료기술을 배웠던 것처럼 이제 우리가 민간 의료외교 역할을 수행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해외환자는 20만 명을 넘어섰다. 해외환자 유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9년 6만여 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증가세다. 해외환자가 국내에서 쓴 진료비는 2009년 547억원에서 지난해 3500억원을 넘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국내의 낮은 의료수가로 인한 병원들의 어려움과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의료시장의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병원들이 철저한 진료 특화와 준비 없이 모두 의료관광에 뛰어드는 것은 국가적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많은 투자와 노력, 시행착오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우리 병원의 경우 해외환자의 비중은 전체 환자의 1%를 조금 상회한다.



 의료관광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세심한 관심과 지원,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해외환자는 불법체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비자 발급이 까다롭다. 진성환자인 경우 비자 발급 절차가 완화돼야 한다. 특히 베트남과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선 이러한 연유로 비자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있다. 의료관광 에이전트에 대한 지도·관리, 의료분쟁 시 해결방안 등은 선행돼야 할 과제다. 이번에 완화된 메디텔 설립을 비롯한 규제완화 등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한 전방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이를 발판으로 대한민국이 쌓은 우수한 의료기술과 병원경영 노하우를 해외에도 수출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



 의료관광의 가치는 늘어나는 해외환자와 국내 고용창출 등 보이는 성과는 물론 국가적 신뢰도를 쌓는 민간외교의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그간 K팝이 이끌었던 한류외교를 이제 의료계가 이어가는 것이다.



선승훈 대전선병원 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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