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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든 시 한 줄]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중앙일보 2014.05.09 00:36 종합 28면 지면보기
동영상은 joongang.co.kr [최효정 기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


삶 고비마다 나를 붙든 시
'자유여'에 이젠 뭘 적을까

잠 깨어난 오솔길 위에 …



내 권태의 벽 위에 …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 폴 엘뤼아르 (1895~1952) ‘자유’ 중에서





고등학교 시절, 문학을 가르쳐 준 선배가 있었다. 10대의 겉멋이었을까, 제목을 가린 한 편의 시를 보여주었다. 그 긴 시를 읽는 중엔 절절한 연애시인 줄 알았다. 당연히 기대했던 여인의 이름 대신, 마지막 줄에 등장한 ‘자유여’는 엄청난 반전이었다.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시집 『이곳에 살기 위하여』에 실린 여러 시편들은 내 유치한 문장들의 원형이 되고 말았다.



 1970년대 대학가에서 숨죽이고 읽었던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자유’의 또 다른 번역이었고, 정희성의 ‘이곳에 살기 위하여’도 엘뤼아르를 향한 오마주로 읽혔다. 이 기시감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엘뤼아르를 멀리하려 했다.



 그러나 집안의 파산으로 잠자리조차 막막했을 때, 유학의 꿈을 끝내 접어야 했을 때, 사랑의 열병을 앓았을 때, 삶의 곳곳에서 지치고 흔들릴 적마다 이 시의 단편들을 뒤죽박죽 끄적거렸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연인의 이름을, 때로는 ‘건축’을, 때로는 ‘역사’를, ‘용기’를, ‘열정’을, ‘순수’를 적었다.



 이제는 어떤 이름과 낱말을 쓸까 망설인다. 슬프게 사라져 그리운 이들, 잃어버린 가치들, 후회스러운 기회들은 많다. 그러나 모두 지나간 대상일 뿐, 다가올 것 가운데 그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고 사랑하는 것일까?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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