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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강세, 시장은 담담 … 속도가 문제

중앙일보 2014.05.09 00:35 경제 1면 지면보기
5년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던 미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8일 소폭 하락했다. 이에 따라 코스피지수도 9거래일 만에 올라 1950.60에 마감했다.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시장 상황을 살피고 있다. [뉴시스]


“더 지켜보자.”

[이슈추적] 예전보다 덜한 환율 민감도
외환당국 별 움직임 안 보여
대표 수출주도 예상보다 선방
달러 결제 많은 유통업체 이득
900원대 환율 직행은 경계해야



 원화값이 달러당 1020원대에 진입한 7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나온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조심스럽게 한 발언이다. “시장의 쏠림에 대해선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말이 덧붙었지만 원론적인 언급이었다. 8일에도 원화가치는 1020원대 초반에서 움직였지만 외환 당국의 눈에 띄는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담담했던 건 당국뿐이 아니었다. 원화가치의 급변동에도 대표 수출주들은 예상보다 잘 버텼다. 7일 삼성전자의 주가는 2000원(-0.15%) 떨어지는 데 그쳤고, 8일 곧바로 6000원(0.45%) 오르며 135만원대를 회복했다. 전날 0.89% 빠졌던 현대차의 주가도 8일 2.47% 급반등했다. 1930 선으로 후퇴했던 코스피 지수도 하루 만에 1950 선을 회복했다. 삼성증권 박정우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환율에 대한 대비가 어느 정도 돼 있어 과거처럼 주가가 민감하게 움직이진 않는다”면서 “원화 강세가 일시적으로는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내수와 수출의 균형을 회복시켜 증시에 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원화의 향방에 기업과 투자자의 눈이 쏠리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 번도 넘지 못했던 1050원대를 뚫은 지 한 달 만에 다시 1030원 선까지 넘어섰다. 이 추세라면 1000원 선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전망도 흘러나온다. 그런데 원화 강세를 대하는 기업, 투자자, 정부의 반응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지나친 속도’에 대해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원화 강세 자체에 대해선 현실로 받아들이는 표정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환율 급변에도 별도로 대책을 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환율에 대한 대응이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부품을 조달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비중이 늘면서 ‘환율 민감도’도 예전보다 덜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신 부품·원자재 구매 비용은 줄어들어 득실이 상존하는 상황”이라며 “단기 대응보다는 대외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체질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전체 매출의 80%가 해외 공장에서 나오고 결제 통화도 러시아 루블화나 브라질 헤알화 등으로 다양화한 상태다. LG전자도 “환율의 단기적인 변동이 LG전자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내수 업종에는 강한 원화가 오히려 득이다. 대형 유통업체는 해외 수입 물량은 대부분 달러로 계약한다. 상품 운송료나 보험료 등 부대비용도 달러 계약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소비자 가격을 낮춰 국내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요인이 생기는 셈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지난해 51개 브랜드에서 200억원어치를 수입했던 병행수입 품목을 올해는 원화 강세를 활용해 70여 개 브랜드 350억원어치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증시에도 장기적으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자본시장연구원 이승호 연구위원은 “통화가 강세란 건 그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좋다는 의미”라면서 “당장은 외국인들의 차익 실현으로 주가가 조정받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외국인 매수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양날의 칼’인 원화 강세의 득실을 가를 관건은 역시 속도다. 원화는 4월 이후 미국 달러화에 대비해 4.2% 절상됐다. 유로(1.0%)나 엔(1.3%)에 비해 상승폭이 두드러진다. ‘달러 약세’라는 대외 요인에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라는 대내 요인이 맞물린 결과다. 이런 초강세가 지속돼 자칫 ‘세 자리 환율’로 직행할 경우 원화 강세의 긍정적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1020원 수준에서 추가 강세가 나타나면 국내 대형주 40곳의 영업이익 증가율이 당초 예상한 8~9%에서 4~5%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원화 강세 압력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그 강도는 약해질 것이란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미국의 양적완화(테이퍼링) 축소가 마무리되면서 금리 인상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면 달러가 다시 강세로 갈 것이란 예상에서다. 여기에 원화를 밀어 올리고 있는 경상수지 흑자의 힘도 한계를 보일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국투자증권 전민규 연구원은 “지금의 경상수지 흑자는 수입이 줄어 커진 측면이 있다”면서 “수출이 가파르게 늘던 2000년대와는 흑자의 질이 달라 당시처럼 세 자리 환율을 뒷받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정선언·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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