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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세월호 비극 앞에 '그들'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2014.05.09 00:29 종합 30면 지면보기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세월호 사고의 발생과 수습 과정의 내막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아연실색하고 있다.



 가라앉는 세월호 선원들과 통화하면서 승객들의 안위는 묻지 않은 해운사, “승객들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여성 승무원들의 무선 교신에 입을 닫은 선장과 항해사, 압수수색이 예정된 한국선급에 정보를 흘려준 해양경찰. 무책임과 탐욕을 앞으로 얼마나 더 목격해야 하는지 절망스럽다.



 국민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줄 리더십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총리, 그리고 장관들은 국민의 정서를 공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국민 아닌 국무위원 앞에서 대국민 사과를 한 대통령, 유족들의 항의를 피해 관용차 안으로 피신한 국무총리, 체육관 바닥에서 절규하는 유족들을 옆에 두고 의전용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은 장관, “80명을 구했으면 대단”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한 해경 간부.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사과 표현은 기회가 닿는 대로 또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했다 하는데, 유족이 기대한 사과가 단지 표현 문제였을까. 아무 직함 없는 자원봉사자들은 유족들 손을 부여잡고 함께 눈물을 떨구는데,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지 궁금하다.



 국민의 분노와 슬픔을 이용해 진영의 결집을 도모하려는 집단은 우리를 더욱 좌절케 한다. 그야말로 우리는 참담한 비극 한가운데 서 있다.



 연이어 터진 서울 지하철 사고는 세월호 침몰이 도처에서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자동정지장치를 수시로 끄고 달렸다니, 도대체 비극은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무너진 신뢰와 원칙을 보며 지금의 무기력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을지 의문이다.



 개인의 안위를 좇느라 공동체에 해악을 끼친 개인과 집단엔 준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 부류가 다시는 공동체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나’와 ‘그들’을 가르는 ‘타자화(他者化)’로는 이런 비극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



 해운사의 안전교육 부재에 기막혀 하는 우리가 자신의 일상에선 타인의 안전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규정 속도를 지키며 주행하는 앞차에 경적을 울리고 상향등을 켜대며 위협한 적은 없는가.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가며 노약자를 넘어질 뻔하게 만들고도 사과도 없이 지나치진 않는가. 원칙을 지키자는 주변의 조언을 “에이, 장사 하루이틀 해보나”라는 말로 뭉갠 적은 없었나. 다수의 편의와 안전보다 ‘윗분’의 심기를 우선시하고 있지 않은가. 관행이 된 의전에 젖어 부하 직원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지는 않나.



 세월호 후유증은 우리의 예상보다 길고도 클 것이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그들’이 더욱 원망스러워질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그들’이 아닌지 스스로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세월호에서 힘없이 스러진 학생들에게 우리 모두가 ‘그들’이기 때문이다.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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