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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캐릭터 나만의 세상 만드는 기쁨

중앙선데이 2014.05.03 02:21 373호 9면 지면보기
홍콩에 기반을 두고 전 세계에서 전시를 여는 제이슨 시우의 작품. 피규어의 얼굴에 눈·코·입 대신 스피커를 형상화한 ‘스피커스 시리즈’다.
국내 첫 아트 토이 디자이너 쿨레인의 ‘미스터 시리즈’
인형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다. 뻔하지 않은 디자인, 게다가 정교한 기술력도 갖췄다. 뭣보다 어른들이 열광한다. 바로 ‘아트 토이(Art Toy)’ 얘기다.
‘아트 토이’라는 말 자체가 생경할 수 있지만 말 그대로 장난감이 예술로 업그레이드 된 오브제를 일컫는다. 아기자기하고 올망졸망한 겉모습을 지니면서도 아티스트들의 개성과 컨셉트가 묻어난 하나의 ‘작품’이다. 그 가치 역시 여느 예술품처럼 보는 이의 안목에 달려 있다.

예술 장난감의 세계

국내에서는 3~4년 새 남다른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커지면서 매니어층도 조금씩 늘고 있다. 최근 들어 아트 토이 전시가 하나 둘씩 열리더니 전문 갤러리까지 생겨났다. 1일부터 5일까지 서울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는 ‘아트 토이 컬처’ 전시도 이런 변화에 맞춘 행사다. 국내외 작가 80여 팀이 참가해 개성 넘치는 아트 토이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주말, 순수했고 상상력 넘쳤던 과거로의 추억 여행이 시작된다.

국내 세라믹 토이 아트팀 토인즈의 ‘아이언맨 커스텀’
디자이너의 창작 영역으로 자리
이번 행사의 주제는 ‘디스 이즈 낫 어 토이(This is not a toy)’. 700여 점의 전시품을 단순한 놀잇감으로 보지 말라는 당부이자 경고다. 토이보다는 아트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행사를 기획한 스페이스 크로프트 박근형 실장은 “단순히 캐릭터의 축소가 아닌 디자이너의 순수 창작 영역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강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가별로 부스를 꾸민 행사장이 이를 증명했다. ‘귀엽다’ ‘예쁘다’ 식의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디자인이 많았다.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전 세계에서 전시를 여는 제이슨 시우의 작품이 대표적. 피규어의 얼굴에 눈·코·입 대신 스피커를 형상화한 ‘스피커 시리즈’는 보면 볼수록 기괴하기 짝이 없다. 데이비드 플로레스, 제이슨 프리니 등의 작가들은 해골을 모티브로 삼은 작업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공주’에서 벗어난 여자를 형상화한 작품도 있다. 싱가포르에서 탄생한 작가그룹 마이티 잭스는 백설공주에게 사과 대신 두 손 안에 폭탄을 안기고 방독면을 씌웠다. 프랑스 작가 아지의 경우 한 쪽 눈을 머리카락으로 가린 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스컬스킨’을 만들어 냈다. 두 작품 모두 공주의 아름다움을 일부러 은폐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흥미롭게 읽힌다.
소재 역시 가장 흔한 플라스틱 외 종이나 도자기 등을 사용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대표적인 게 국내 작가 그룹 모모트. ‘페이퍼 토이’로 잘 알려진 이들은 종이로 스파이더맨, 스타워즈 시리즈 등 다양한 캐릭터를 만드는데, 그 형태는 물론 디테일까지 네모나게 통일시켰다. 모모토란 이름 역시 ‘네모 네모 로보트’의 줄임말이다. 이들 작품은 접근하기 쉽고 부담 없는 종이를 이용하지만 모든 대상을 입체화시키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밖에 무스토이와 토인즈는 도자기 아트 토이를, 어글리즈는 패브릭을 이용한 봉제 인형을, 플로 토이즈는 레진(합성 수지)을 이용한 피규어를 선보였다.

싱가포르 디자이너 잭슨 오의 ‘배드 애플’
90년대 중반 홍콩 젊은 작가들이 시작
아트 토이는 1990년대 중반 홍콩에서 시작됐다. 중국 반환을 코앞에 두고 대륙을 겨냥해 대량으로 만든 싸구려 플라스틱 곰인형이 애물단지가 된 것. 젊은 아티스트들이 나서 장난감에 그림을 덧입히거나 모양을 일부 바꿨다. 당시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에서 이 곰인형들은 뜻밖에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하나의 독립적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유럽·미국·일본 등에서도 신진 작가들의 도전은 이어졌다.
이처럼 역사가 짧다 보니 아트 토이라는 말의 개념도, 호칭도 아직은 정립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흔히 액션 피규어(구체 관절이 있고 실제 형태를 6분의1 사이즈로 축소한 형태)를 아트 토이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대다수 작가·수집가들은 엄밀히 다르다고 말한다. 국내 첫 아트 토이에 대해 전문 작가인 쿨레인이 긴 설명을 해줬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처럼 원작이 있는 캐릭터를 만들었다면 정교하더라도 창작은 아니다. 작품이 인기가 있어 캐릭터가 뜨는 거지 누가 그 캐릭터를 만들었느냐가 중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만든 사람의 철학과 의도가 들어 있고, 보는 사람도 이를 알아봐 줘야 아트 토이인 거다.” 가령 눈에는 항상 엑스자 표시를 하고 흰 장갑을 손에 끼우는 캐릭터를 보면 미국 작가 커즈(kaws)의 작품이라고 눈치채는 식이다. 최근에는 이런 의견을 반영해 아트 토이라는 말 대신 ‘디자이너 토이’ ‘디자이너 피규어’라는 말이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왜 굳이 어른들이 이 예술적 장난감에 빠지는 걸까. 아트 토이 전문 갤러리 ‘피프티 피프티’의 손상우 매니저는 키덜트 문화의 확장을 얘기한다. 불안하고 우울한 현실을 피해 아이로 되돌아가고 싶은 귀소 본능이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접목된다는 의미다. 작품이지만 근엄하지 않고, 갖고 놀 수도 보고 즐길 수도 있는 유희가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이다.
그러면서 그는 ‘2차원에서 3차원으로의 변형’을 가장 큰 강점으로 꼽았다. “원래 그림이 좋았던 아티스트가 있다고 치자. 그가 그린 캐릭터가 평면이 아닌 입체로 만들어져 나오는 거다. 마치 생명을 얻은 것 같지 않겠나. 더 끌리는 게 당연하다.” 아트 토이 디자이너 대부분이 그래픽 분야에 있거나 일러스트레이터인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아트 토이는 소량 생산을 기본으로 한다. 일부는 수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정교함을 요하기도 하거니와 아직은 관심을 갖는 이들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보통 한 디자인에 100~200개를 만든다. 여기에 시리즈로 컬러와 모양을 변형시켜 수량이 추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반 제품처럼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고 추가 생산을 하는 일은 별로 없다. 20cm 크기면 보통 5만~6만원 선, 유명한 작가의 경우 70cm 대형 사이즈가 70만~80만원까지 한다. 한정판이 되는 경우가 잦아 빈티지 예술작품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가격이 올라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매장 오픈 기념으로 만든 아트 토이는 선물용으로 제작됐지만 지금은 500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는 게 업계의 후문이다.

극소수 매니어층이 주도하는 키덜트 문화
국내에서 아트 토이에 대해 입소문이 퍼진 건 2005년 전후다. 미술 관련 종사자들 사이에서 매니어층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8년 연예인들이 방송을 통해 아트 토이를 취미로 노출시키며 대중에게 전파됐다. 지드래곤·탑 등 아이돌 스타와 가수 서인영 등 ‘트렌드 세터’로 평가받는 스타들이 아트 토이를 수집하는 모습이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것이다. 이후 인터넷 카페에선 회원 수가 수만 명까지 늘어나고, 전문 온오프 매장이 생기기도 했다. 쿨레인 같은 전문 제작 그룹만 10여 개가 넘는다. 피프티 피프티의 손 매니저는 “핫 트렌드가 모여 있는 가로수길에 갤러리를 냈다는 것 자체가 아트 토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행처럼 번지지 않는 건 아트 토이 자체가 매니어층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명품이 대중화되면 또 다른 명품을 찾는 것과 같이 아트 토이 수집가 대부분이 ‘남과 다르고 싶다’는 이들이라는 전제가 깔린다. 앞서 언급한 한정판의 희소성과 잘 부합되는 부분이다. 더구나 고수급 수집가들의 경우 외부에 알려지길 꺼리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수집가들은 보통 작가들과 직접 연락을 주고 받으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구매하기도 한다. 브랜드 컨설턴트인 문행천씨는 중학교 때부터 아트 토이를 모아 왔다. 지금은 5t 트럭 두 대분 분량 정도가 됐다.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에 오른 작품을 사고, 홍콩·태국·대만 등으로 아트 토이 페어를 보러 다니기도 한다. “처음에는 액션 피규어 쪽으로 무조건 모았다. 하지만 7~8년간 디자이너들을 알게 되고 나름 분류를 하면서 나와 스타일이 맞는 쪽으로 수집 방향을 잡게 됐다.” 그는 작가들과 직접 인터넷으로 연락하는 사이가 되면서 한정판 작품의 경우 먼저 살 수 있는 특권도 누린다. 작업 중인 작품의 정보도 먼저 받을 때가 있다.
이제 막 대중의 시선을 받고 있는 아트 토이. 행사 첫날 기자 간담회에서 쿨레인은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이제는 아트 토이 디자이너를 전업으로 삼겠다는 이들이 많아요. 많이 팔리는 아이템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작품들을 보여줘서 시장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 할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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