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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았네, 간절한 마음이 만든 특별한 눈으로

중앙선데이 2014.05.03 02:25 373호 14면 지면보기
새가 되다 Become a Bird, 2007, Pigment print, 100x150cm
“몹시 추웠던 그해 겨울,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었습니다.

사진기자 조용철의 ‘마음풍경’ 5월 1~18일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하늘과 바람과 구름을 사랑하는 겨울새.
텅 빈 들녘 바람 높이 불던 날,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사진기자 조용철의 신간 『마음 풍경』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붉은 해의 기운을 벗어나서 차가운 하늘 끝으로 날아가는 새를 찍은 사진 옆에 그가 적은 글이다. 그해 겨울, 그는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남은 자신을 원망했던 그때가 올해로 꼭 10년 전이다. 그 세월 동안 마음에 굳은살도 많이 생겼다. 아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봤고 전에는 유심히 보지 않았던 구름도 새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아들은 아버지의 사진 속에서 새가 되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사진을 찍은 사람이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게 되었을까. 처음 조용철 기자의 새 사진을 보았을 때가 그랬다. 기자들은 늘 바쁘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매일 마감을 해야 한다. 급하게 신문에 실어야 할 것에 집중해야 하니 주변을 살피기는 매우 힘들다. 궁금한 걸 참지 못하고 작가에게 물으니 너무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돌아왔다. 먼저 간 아이 이야기며 그 이후에 겪게 된 방황과 깨달음, 그리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확인하게 된 삶의 평범한 진리들. 나의 모든 궁금증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간절한 마음은 특별한 눈을 만든다. 상처받은 그의 마음이 국회 출입기자를 하면서도 의원동산에서 꾀꼬리를 찾아낼 수 있는 눈을 이끌었을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보니 보이지 않던 세상이 놀랍고도 귀했다. 둥지를 보호하기 위해 새끼의 똥을 먹어치우는 어미 새를 보면서 생명의 존귀함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도 되었다. 새에서 자연으로, 자연에서 사람으로, 그의 시선은 점점 더 많은 곳에서 삶의 이유를 찾아 나갔다. 빛으로 만들어지는 사진, 빛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사진을 통해서 그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려고 몸부림친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기자에서 작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철마다 피어나는 꽃들, 거미줄에 걸린 물방울, 뛰노는 아이들, 손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뒷모습, 세상 모든 것에 애정을 쏟아낸 그의 시선이 고스란히 사진에 담겼다. 사진집 출간과 함께 여는 개인전에서는 떼지어 날아다니는 하루살이 사진과 낙하산을 타고 하강하는 사람의 모습을 나란히 걸었다. 세상에 어떤 생명도 하찮은 것은 없다고 힘주어 말하는 듯하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아프게 얻게 된 교훈이지만 무겁거나 우울하지 않다. 영원히 살 것처럼 오만했던 자신을 던지고 우주 속에서 먼지와도 같이 작은 자신을 느끼면서, 그는 세상과 소통하고자 했던 것이다.

고비엔 은하수가 산다 Galaxy Lives in the Gobi, 2012, Pigment print, 50.6x70cm
“고비사막에 가거든 침묵하세요.
그저 보고 느끼고 하나가 되세요.
고비에 서면 누구나 구름이고 풀꽃입니다.
고비의 밤하늘은 별들의 세상입니다.
손에 잡힐 듯 은하수 한가운데 서면 우주와 하나가 됩니다.
우주의 영혼이 내게로 옵니다.
별들이 속삭입니다.
슬픔도 고통도 다 지나가고 만다.
고통이 기쁨이 된다.
고난이 유익이다.”

자연을 찍은 사진은 많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 앞에서 취하는 태도는 대체로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자연을 자연스럽게 찍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조용철의 사진과 글이 특별한 이유는 그의 눈과 마음이 자연에 잘 조율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을 향해 호들갑스럽게 감탄하거나 호기롭게 맞서는 대신 진중한 눈으로 바라보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어 마음을 연다. 사진이나 글을 쓰기 위해 자연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보고 느낀 것이 사진과 글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사진 속에 자연과 사람은 서로 닮았다. 조화로움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일 거다. 조용철의 ‘마음 풍경’은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살이 중에도 우리를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은 생명을 존중하고 세상 만물을 조화롭게 바라보는 마음이라는 교훈을 가장 진솔하게 전해준다.

아픔에서 깨달은 바는 나눔으로 이어졌다. 그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저축하던 돈을 차마 쓸 수가 없어서 2008년에 한무리나눔장학회를 만들었고, 올해엔 26명에게 장학금을 주었다고 한다. “세월호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 중에도 미래에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는 그의 말이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았다. 그가 그러했듯이, 우리도 함께 죄스러움과 절망스러움을 이기는 길을 찾아야 할 때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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