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거친 물살 이겨낸 견내량 자연 미역 생명의 기운 물씬

중앙선데이 2014.05.03 02:38 373호 22면 지면보기
1 짙은 검은색의 물미역은 보통 한산도에서 온 것들이 많다
5월이다. 가정의 달이다. 식상한 수사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 집안은 이보다 더 가정의 달일 수 없는 5월이 되었다. 사연은 이렇다.

정환정의 남녘 먹거리 <15> 통영 미역

5월 5일 어린이날이야 아직 아기가 어리니 그냥 넘길 수 있다 치자. 5월 8일 어버이날은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영부영 지낼 수는 없는 일. 아니, 멀리 계시기에 외려 더 맘이 쓰이는 날이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다. 어버이날의 다음 주부터 내 생일, 아버지 생신, 아기의 돌이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주일 동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메인 이벤트’는 바로 아기의 첫돌.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네 생일이고 내 생일이고 중요치 않다. 그러니 모든 역량(!)을 아기 첫돌에 집중하도록!”이라는 교지를 내리셨던바,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은 상태. 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챙겨두어야 했다.

통영에서 서울로 올라갈 때마다 준비하는 것들이 있는데, 건어들이 첫손에 꼽히고 겨울이면 굴, 봄이면 멍게 등을 함께 포장한다. 그런데 이번엔 미역을 챙기기로 했다. 어머니께서 맛있는 미역이 드시고 싶다 하기도 하셨지만, 무엇보다 내 아이를 키우다 보니 되돌아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통영엔 질 좋은 미역이 천지
사실 우리 집안에서 미역국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나였다. 아니 여전히 나만큼 미역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 생일은 물론이고 가족 중 누군가의 생일을 맞이해 어머니께서 미역국을 끓이시면 거의 대부분은 내 몫이었다. 내가 워낙 많이 먹었기에 일부러 양을 많이 해 끓이셔도 나는 그것마저 다 먹었다.

아내는 내가 이렇게 미역국을 좋아하는지 몰랐기에 결혼 후 처음 맞는 내 생일에 앞서 내가 건넨 “미역국을 좀 많이 끓여도 괜찮아”라는 은근한 조언을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그러니 스스로는 꽤 많이 끓였다고 생각했던 미역국이 단 두 끼니 만에 모두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아 그다음 내 생일에는 꽤 큰 냄비를 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통영으로 내려와 아기를 갖게 되었을 때, 우리는 잔뜩 설렜다. 어떤 미역을 골라놓을지 즐거운 고민에 빠졌으니까. 보통 출산 후 산모가 먹을 미역은 양가 부모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게 일반적인 일이라지만, 우리가 통영에 내려와 살고 있는 상황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통영에서는 품질 좋은 미역이 많이 나기 때문이다.

2 견내량 사이로 마주 보이는 섬이 거제도다 3 지난해 이맘때의 견내량. 모처럼 수확한 미역 덕분에 동네는 활기가 넘쳤다 4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우리집에서는 종종 미역국을 끓여먹는다.
한산도보다 매물도, 매물도보다 견내량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한산도 미역. 육지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섬인 한산도에서는 미역 양식이 성황이다. 물론 기장이나 완도처럼 전국적 유명세를 자랑할 정도로 많은 양을 수확하는 것은 아니지만, 설 무렵부터 시장을 뒤덮는 검은 미역들은 모두 한산도에서 나온 것들이다. 한산도 미역은 무난한 맛이 가장 큰 장점이다. 큰 특징을 찾기는 힘들지만, 그래서 어떻게 먹어도 좋다. 통영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것 역시 바로 이 한산도 미역이다.

관광지로도 유명한 매물도에서 나는 매물도 미역은 한산도 미역보다 맛이 좀 더 강하다. 한산도보다 강한 물살을 견디며 자라기 때문이다. 양식이 아니라 자연산이라 해녀가 잠수를 해 따오는 것 역시 좀 더 각별한 점. 그러다 보니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건어물을 판매하는 가게에서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그러니 매물도에 연락해 정기 여객선을 통해 배달을 받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매물도 미역도 견내량 미역에 비하면 그나마 흔한 편이라 할 수 있다. 통영과 거제가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는 좁은 물길을 견내량이라 부르는데, 수심은 얕지만 물살이 빠른 이곳에서도 미역이 자란다. 양식이 아니라 매물도 미역과 마찬가지로 자연산인데, 그러다 보니 아예 수확이 되지 않는 해가 있다. 요즘은 그럴 때가 더 많아졌다. 지난해에만 예외적으로 조금의 수확이 이루어졌을 뿐 견내량 미역은 근래 들어 통 소식을 듣기 어려운 해가 많았다. 그리고 지난해 우리 부부는 아기가 태어나기에 앞서 우연히 들른 견내량에서 이제 막 말려 포장해 놓은 미역을 샀다. 운이 좋았다. 다만 마트 등에서 판매하는 보통의 미역들과는 달리 물에 충분히 불린 후 꽤 오랫동안 바락바락 씻어줘야 한다는 점이 조금은 번거로운 부분이었지만, 우리 부부의 미래를 낳은 아내를 위한 일이니 불평할 이유는 없었다. 외려 이런 좋은 미역을 구할 수 있어 고마웠을 뿐.

가족과 가족 이어주는 건강 바다풀
물론 전적으로 미역 덕분은 아니었겠지만 아내는 출산 후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아기에게도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있고. 나 역시 남편이자 아빠로, 그리고 가장으로 부끄럽지 않게 내 딴에는 노력을 하며 지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내 아버지와 어머니도 나와 아내가 아기에게 그러하듯 우리를 당신의 몸을 돌보는 것보다 더 아끼고 아껴주셨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로부터 “올라올 때 잊지 않으면 미역 좀 사오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이 평소와는 다르게 뭉클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서 며칠을 보내기에 앞서 짐을 꾸리는 한편 좋은,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미역을 한창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가족과 가족을 이어주는 검고 부들부들한, 하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 같은 건강한 바다 풀을 말이다.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저자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