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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풍경] 어린이연극 지킴이 송인현 대표

중앙일보 2014.05.03 00:26 종합 15면 지면보기
송인현 대표가 연극 ‘까만 닭’의 소품을 머리에 얹고 닭 흉내를 냈다. 분무기에 철사를 엮어 닭 모양을 만들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경기도 오산시 꿈두레도서관 다목적홀. 극단 민들레의 ‘돈도깨비’ 공연이 펼쳐졌다. ‘돈도깨비’는 여러 도깨비 얘기에 봉산탈춤 사위를 접목한 어린이연극. 장구·북·꽹과리의 장단이 흥겨웠다. 도깨비 탈을 쓴 배우와 서너 살 꼬마들이 힘 자랑하듯 씨름을 하는 장면도 정겨웠다.

학교든 마을회관이든 … 아이들만 있으면 전국 어디나 무대죠
어린이 극단 민들레 18년째 꾸려와
창작·연기 겸업 … 1년에 150회 공연
중요무형문화재 봉산탈춤 전수자
옛 이야기서 한국 문화 DNA 찾아



 모레 5일은 어린이날.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처럼 아이들이 실컷 뛰노는 세상을 희구하는 이가 있다. 어린이연극 전문극단 민들레의 송인현(55) 대표다. 1996년 극단 설립 이후 줄곧 우리 정서와 가락이 살아있는 무대를 만들어왔다. 창작·연출·연기 1인 3역을 맡아왔다.



 하지만 올해 어린이날은 마냥 즐거워할 수 없는 일. 세월호 참사에 모든 이의 가슴에 휑한 구멍이 뚫렸다. 많은 이웃의 참척(慘慽)에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을 노래할 수 없는 요즘이다.



 - 아이들에게 몹시 부끄럽다.



 “뭐라 말하겠나. 제 초등학교 여자동창 남편도 세월호에 갇혔다. 아직 소식이 없다. 손을 쓸 방법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 한창 공연할 시즌인데.



 “4월 말~5월 초 단체공연이 7개 잡혔는데 모두 취소됐다. 국가적 재난인데 어쩔 수 없지 않나.”



 - 20년 가까이 어린이연극을 해왔다. 학생들의 희생이 남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극단 소식지에 ‘뉴스레터’를 쓰는데, 이번에는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했다. 선장 개인의 잘못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직시할 때다. 자기 혼자만 살 궁리를 해온 구태(舊態)에서 벗어나야 한다.”



 - 천주교 신자인가. 세례명은.



 “베드로다. 성당에는 1년에 한두 번 나갈 정도다. 다만 제 주례를 서준 신부님에게 예술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



 - 어떤 신부이신데.



 “화가로 유명한 조광호(67) 신부님이다. 부제(副祭) 때 구상(1919~2004) 시인 밑에서 문학을 공부했는데, 독일 유학을 다녀온 다음에 미술로 방향을 틀었다. ‘데생도 못하는 분이 무슨 그림을…’ 하고 딴죽을 걸었더니 ‘우리나라 미술은 데생에서 시작해 발전이 없다. 예술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하시더라.”



 - 무슨 뜻인가.



 “독창성을 찾으라는 얘기였다. ‘잘했느냐, 못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 것이냐, 아니냐가 소중하다’고 했다. 큰 충격을 받았다. 나름 잘나가는 배우 시절이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잘나고 못나고가 아니다. ”



 송씨는 서울예전(현재 서울예대) 연극과를 나왔다. 대학 시절 중앙일보·TBC 주최 전국대학축제경연대회 대상, 연극협회 이사장상 등을 받았고, 졸업 후 대학로 일대에서 주로 활동했다. 2006년부터 3년간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 이사장도 지냈다.



 - 연극은 배고픈 일이다.



 “대입을 앞두고 아버지께서 부르셨다. ‘광대 배(俳)’를 쓰시며 ‘사람(人)이 아닌(非)’ 짓거리라 하셨다. 제가 그 옆에 ‘뛰어날 우(優)’를 붙였다. ‘배우는 사람보다 뛰어난, 신과 인간의 매개자’라 했더니 ‘네 마음대로 해’ 하시며 방을 나가셨다.”



 - 호기가 넘쳤나 보다.



 “지금도 생각에 변함이 없다. 저를 액터(actor)가 아닌 샤먼(shaman)이라고 부른다. 작품을 빚는 게 신탁(神託)이고, 신탁을 받기 위해 공부하는 게 기도라고 믿는다.”



 - 어린이연극은 우리 문화계에서 불모지에 가깝다. 이 험한 길을 선택한 계기라면.



 “95년 이탈리아 움부리아 여름 페스티벌에 참가한 적이 있다. 외국 배우들에게 탈춤도 가르치며 함께 작업을 했다. 그런데 연출가에게 자주 지적을 받았다. ‘하늘과 땅의 신’을 표현하라고 해서 한국 전통무용 동작을 했더니 ‘그게 아니야’라고 했다. 그 순간 소름이 돋았다. 문화적 유전인자가 달랐던 것이다.”



 - 한국적인 것을 말하는 건가.



 “단군의 후예라는 것을 꺼내려는 게 아니다. 김치를 먹는다고 한국인이 되는 건 아니다. 사람의 정체성은 ‘문화 DNA’가 결정한다. 그 실마리를 옛이야기에서 찾았다. 아이들을 가장 우리 아이답게 키우려면 우리의 연극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 말처럼 쉽지 않았을 텐데.



 “96년만 해도 ‘신데렐라’를 하면 1000명이 오지만 ‘콩쥐팥쥐’를 하면 300명이나 들까 하는 시절이었다. ‘깨비 깨비 도깨비’ ‘어사 박문수’ 등 창작극을 3년 동안 열심히 했지만 남은 것은 1억원이 넘는 빚뿐이었다.”



 - 어떻게 지금까지 왔나.



 “저 혼자에게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아닌지 외로움이 깊어졌다. 돌아보면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그때 독서단체 어린이도서연구회를 만났다. 한번 특강을 했는데 뜻이 통했다. 전국의 회원들이 ‘네 작업이 중요하다’며 제 연극 ‘똥벼락’을 추천해줬다. 여기저기서 초청이 밀려들었다. 이후 매년 신작 2~3개 작품을 선보이는 기반이 됐다.”



 송씨는 봉산탈춤(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전수자다. 대학 시절 ‘탈춤을 배우면 돈을 준다’는 말에 혹해 ‘연극에 도움이 되겠지’ 하는 판단에서 배운 게 그의 최고 자산이 됐다. 관객과 함께하는 작품을 주로 공연해온 까닭에 그에게는 모든 곳이 극장이 된다. 마을회관·학교·공터 등 간단한 세트를 세울 공간만 있으면 전국 어디든지 달려간다.



 그는 2007년 고향인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이화3리에 민들레연극마을도 조성했다. 봄(심기축제)·여름(품앗이축제)·가을(걷기축제) 등 해마다 계절별로 농촌체험과 연극을 결합한 잔치를 열고 있다. 올해도 10일부터 봄축제가 시작된다, 아이들은 연극 ‘남복이 차복이’를 감상하고 모내기, 탈 만들기, 누에고치 공예 등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게 된다.



 - 1년에 공연은 얼마나 하나.



 “작품 준비하고 연습하고 공연하고 쉴 틈이 거의 없다. 150일 정도 무대에 서는 것 같다. 탈춤을 춘 덕분에 50대 중반임에도 텀블링에 자신이 있다. 지금도 매일 아침 한 시간 남짓 손녀 앞에서 탈춤을 추며 몸을 챙긴다. 목동 집에서 극단이 있는 마포아트센터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 학교연극을 늘 강조해왔다.



 “옛 남사당패들이 마을을 찾아다니듯 매해 30~50차례 초등학교를 방문한다. 연극을 본다는 것은 느낌과 정신을 공유하는 행위다. 소박한 공동체 체험이다. 또 같은 작품을 봐도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절로 다양성을 습득하게 된다. 공생과 다름, 이만큼 귀한 게 있나.”



 - 왜 어린이만 보고 사는가.



 “우리는 먹는 것이든 입는 것이든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준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살면 어른들도 바뀌게 된다.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1899∼1931) 선생의 뜻도 비슷했을 것이다. 돈만, 공부만 강조하는 이 시대에 순수한 가치가 무언지 보여주고 싶다. 그런 건강한 사회를 위해 작은 초석을 놓는 심정이다.”



 - 기성세대에 대한 질타로 들린다.



 “아이들과 좋은 양식을 나누면 세상도 달라질 것이다. 경제만능주의로만 움직이는 사회는 곤란하다. 세월호 비극의 뿌리도 거기에 있다. ‘흥부전’에서 못마땅한 게 흥부가 선을 쌓아 부자가 되는 대목이다. 부자가 되려고 착한 일을 하는 건 아닐 터다. 서로 다른 친구를 이해하고 함께 사는 마음을 키우는 것, 그게 어린이연극의 처음이자 끝이다.”



1년에 1번 … 자전거 1인 극단



자전거 자체가 무대가 된다. 배우는 단 한 명. 송 대표는 매해 한 차례 ‘자전거 극단’을 꾸린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다니며 공연을 한다.



 극장은 따로 없다. 마을회관이면 족하다. 숙소도 그곳에서 해결한다. 시골 아이들, 주민들과 함께 한바탕 연희(演戱)를 펼친다. 행장(行裝)은 단출하다. 일반 자전거 한 대와 공연소품을 실은 작은 트레일러 하나. 송씨는 여름이 끝나가는 8월 말부터 열흘 남짓 자전거 무료 유랑공연에 나선다. 올해로 5년째를 맞는다.



 단골 레퍼토리는 ‘까만 닭’. 유기견·얼룩소·매미·병아리·족제비·닭 등 동물 캐릭터를 내세워 우리 시대 자연 훼손과 환경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자전거가 소가 되고, 분무기가 닭이 되고, 구둣솔이 족제비가 되는 식이다. 연극이 끝나면 현지 주민들과 두런두런 얘기꽃도 피운다.



 “첫해에는 수원에서 출발, 목포와 부산을 찍고, 서울로 돌아오는 코스였어요. 총 25일이 걸렸죠. 마지막에는 죽는 줄 알았습니다. 왜 이렇게 힘든 일을 자청하느냐고요. 무엇보다 체력을 위해서입니다. 배우의 무기는 몸이잖아요. 한 번 돌고 오면 못할 게 없어 보입니다. 그 다음 1년을 버틸 자신감을, 평소 잊고 살았던 야성을 되찾는 시간인 셈이죠.”



 송씨는 올해 경남 하동 일대를 찾아갈 계획이다. ‘똥벼락’의 원작자인 김회경씨가 내려가 살고 있는 곳이다.



 “지리산 주변 마을을 돌 작정입니다. 몸도 챙기고, 연극도 하고, 자연도 만나니 1석3조는 이런 걸 두고 하는 말 아닐까요.”



글=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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