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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손주 꿈까지 걱정합니다, 가족이니까

중앙일보 2014.05.03 00:21 종합 1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나는 참 늦복 터졌다

가족의 소중함 돌아보는 책들
잘 때 꿈꾸면 온전히 못 쉴까 봐 …
할머니는 일기 속에 사랑을 담아
1950년대 어느 신혼부부 편지들
사랑이란 믿고 기다려주는 것

박덕성 구술, 이은영 글

김용택 엮음, 푸른숲

240쪽, 1만3500원



행복이

김초혜 지음

시공미디어, 376쪽

1만3800원



저도 양말 정도는

기울 수 있어요


박시현·김준호 지음

따님, 316쪽, 1만5000원



그리하여 가족이다. 그럼에도 가족이다. 세월호 참사라는 대재앙 앞에서 사람들은 새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긴다. 때론 한없이 거추장스러운 존재지만, 절망의 벼랑에 선 누군가의 뒷덜미를 끌어당기는 마지막 희망, 가족.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의 소중함을 돌아보는 책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할머니와 손주가, 이제 막 가정을 꾸린 신혼부부가 서로에게 전하는 뭉클한 사랑 고백이다.



 시인의 가족이라 하여 특별할 건 없다.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66)씨의 어머니 박덕성(86)씨와 그의 아내 이은영씨는 모녀처럼 다정하다가도 사소한 일에 틈이 벌어지는 평범한 고부 사이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밭에 나가 일하던 어머니가 여든이 넘어 기력이 쇠해지며 병원 신세를 지기 시작한다. 약해진 시어머니가 안쓰러워 잠 못 들고 뒤척이던 며느리는 병원 침대 앞에 앉아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나는 참 늦복 터졌다』(푸른숲)라는 책이 탄생했다.



 “아이고 말도 마라. 나 산 걸 어찌 말로 다 하겄냐.” 신혼 때부터 바람을 피운 남편에 대한 원망, 그런 남편을 먼저 보내고 아이들 여섯을 바라보며 막막했던 심정…. 시어머니의 팔십 평생 이야기는 “다 노래였고, 판소리였고, 소설”이었다. 이 사연을 받아 적으며 며느리는 비로소 어머니라는 ‘인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 마음이, 어머니 삶이 내게 아픔과 기쁨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한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달라졌다. 뒤늦게 배운 한글로 자신의 이야기를 삐뚤빼뚤 적어 넣으며, 어머니의 눈빛은 살아나기 시작했다. “어머니, 시 쓰는 대회 나가셔야겠어요”라는 며느리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뻐긴다. “그니까 민세 애비(김용택 시인)를 낳았지. 아무나 그런 아들을 낳을 수 있간디.” 진심끼리 힘차게 부딪쳐 서로를 이해하게 된 두 사람을 보며 김용택 시인은 책 말미에 이렇게 적는다. “삶이 아름다울 때는 진실의 정면 앞에 동등하게 설 때다.”



 우리 할머니들은 손주의 꿈자리마저 걱정이다. “잘 자라. 꿈도 꾸지 마라. 꿈을 꾸어 온전히 쉬지 못하면 건강을 해치니까”라고 당부한다. 『행복이』(시공미디어)는 ‘사랑굿’의 김초혜(71) 시인이 손자 재면군에게 1년 동안 일기처럼 쓴 편지를 모은 책이다. “사랑하는 재면아”로 시작하는 365편의 일기는 2008년 1월 1일 시작해 같은 해 12월 31일 끝이 난다. 시인은 두꺼운 가죽노트 다섯 권에 적은 이 일기를 고이 간직하다 지난해 손자의 중학교 입학선물로 건넸다.



 일기에는 보고 있어도 그리운, 삶의 가장 큰 기쁨이자 희망인 첫 손주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이 절절하게 읽힌다. 톨스토이·칼릴 지브란 등 대가들의 문장을 소개하며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마음의 자세를 전한다. “다른 사람의 흉허물에는 되도록 관대하게 대하고 나에게는 인색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보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보다,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 인품이다” 등 먼저 인생을 산 이의 깊은 성찰이 담긴 따뜻한 러브레터다.



 “Miss 박은 사람이 아니라 천사였습니다.” “이제 준호씨는 저의 초석이며 등불이에요.” 『저도 양말 정도는 기울 수 있어요』(따님)는 김준호(85) 서울대 명예교수와 아내 박시현(79)씨가 첫 만남에서 신혼까지 5년여 동안 주고받은 332통의 편지를 엮은 책이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6·25의 상흔이 채 아물기 전인 1956년, 어려운 시대를 헤치며 두 젊은이가 사랑하고 자식을 낳아 한 가정의 뿌리를 내리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역사가 담겼다.



 오지 않는 편지에 마음 졸이던 밤, 무작정 기대하며 역전에 나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길…. 지금과는 다른 ‘느릿한’ 사랑 풍경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쩌면 사랑이란, 가족이란, ‘끝까지 기다려주는 것’의 또 다른 이름 아닐런지. 김 교수는 서문에 “오늘날 젊은이들도 가끔은 편지로 사랑을 나눴으면 좋겠다”고 썼다. “불 같은 성미의 내가 휴대전화와 e메일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아내의 사랑을 지키지 못했을지 모른다. 몇 날의 지체와 기다림이 나의 사랑에는 매우 유익했다”면서.



시인 김용택의 어머니 "며느리 볼 때 젤로 좋았다"



어머니, 어머니는 살면서 언제가 제일 좋았어요?/ 나는 용택이 선생 된 때가 젤로 좋았다/ 저 건너 밭에서 느그 시아버지하고 일을 하고 있는디/ 용택이가 어매, 어매 부르며 뛰어오더라/ 저놈이 미쳤나, 넘어지려고 왜 저렇게 뛰어온다냐? 하고는 일을 했다/ 용택이가 오더니 어매 아버지, 나 선생 됐어요 하드라/ 잉? 이게 뭔 소리여 우리 용택이가 선생이 되다니/ 정신이 하나도 없드라/ 시상에 우리 용택이가 선생이 되다니/ 나는 그때가 젤로 좋았다/ 느그 시아버지가 키우던 소 한 마리 턱 하니 팔아서/ 용택이 광주 양성소에 보냈다/ 참말로 좋았제잉.



 생각해보니 아니더라/ 뭐가요?/ 용택이 선생 된 때보다/ 니가 용택이하고 산다고/ 우리 집에 왔을 때가 젤로 좋았더라 (…)/ 하루는 니가 우리 집에 왔는디/ 뒷집 사는 정남이가 나를 살짝 불러내더니 저 아가씨 누구냐고 하더라/ “아 누구기는 누구여 나도 몰러” 하고는/ 팽 돌아서 왔더니/ “용택이 각시 될 사람여? 저 아가씨 잡아요” 하드라 (…)/ 자꾸 니가 욕심이 나더라/ 아녀, 이러면 안 되지/ 저 아가씨는 이제 스물네 살이라는디/ 아이고, 우리 용택이는…, 내가 도둑년이다/ 욕심낼 걸 욕심내야지/ 밭을 호미로 득득 긁었다 (…)/ 하루는 아침에 밥을 하는디 용택이가 부엌으로 와서는/ 엄마 쉬, 하면서 손가락으로 지 입을 가리더라/ 왜 그냐?/ 엄마/ 아 긍게 왜/ 은영이 애기 가졌다/ 잉?/ 부지깽이를 집어던지고는 폴짝폴짝 뛰었다/ 인제 됐다/ 용택아 인제 됐다/ 인제 나는 살았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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