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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그래도 대한민국이 희망적인 것은 …

중앙일보 2014.05.01 00:10 종합 27면 지면보기
오랜만에 온 중국인 친구의 첫마디는 ‘세월’호 였다. 중국인들도 이 사건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사고도 사고지만 관료사회의 무능과 부패에 ‘한국도 어쩔 수 없는 후진국’이라고 한단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중국엔 시진핑이 있는데, 한국엔 아무도 없더라.” 중국에선 대형재난 시 시진핑이 앞장서면 공산당이 움직여 어찌 됐건 민심이 봉합됐단다. “요즘 중국에선 한류가 화제의 중심이고, 코리안 스타일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데 지금은 과연 한국이 선망할 만한 나라가 맞는지 헷갈린다.”



 그래서 그에게 말해줬다. “한국 정부와 정치가 삼류인 건 맞지만, 시민정신은 일류이므로 선망해도 된다”고. 안산을 취재하고, 보통 시민들과 말을 나누고, 침몰 순간 우리 아이들이 보여준 수준 높은 시민정신을 확인했으므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비극의 도시 안산은 차분했다. TV가 보여주는 일부 선동적인 장면을 시민들의 모습이라고 상상한다면 잘못이다. 시민들은 슬픔을 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에서 과장해 보태는 동정심을 경계했다. 한 시민은 말했다. “단원고는 원래 학구열이 높고, 진학률도 안산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학교예요. 풍족하진 않아도 어렵고 소외된 이웃도 아니고, 그러므로 지나친 관심과 동정은 필요 없어요.”



 어린 학생들의 빈소는 경건하고 차분했다. 그 슬픔의 강도를 생각하면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한 아버지는 아들의 장례용품을 가장 싼 것으로 골랐다. “국민 세금으로 마련하는 것이니 비싼 것을 쓸 수 없다”며. 우리는 동영상을 통해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질서 있게 지시를 기다리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걸 보았다. 사회 시스템이 이렇게 형편없었다는 걸 알기엔 아이들 수준이 너무 높았다.



 이 사건을 얘기하는 보통 시민들도 결론은 ‘내 탓이오, 내 죄로소이다’였다. 한 독자는 e메일에서 “몇몇 사람들을 비난함으로써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저지른 잘못을 스스로 눈감아 버려선 안 된다. 세월호 선장의 무능과 후안무치가 바로 나의 자화상”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사과 말씀’에도 담기지 못한 진정성과 반성이 이들에겐 있었다.



 중국인 친구에게 말했다. “이렇게 시민들의 자존감과 의식이 살아있고,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질서를 지키며 타인을 배려하는 아이들이 자라는 나라인데 왜 대한민국이 희망적이지 않냐”고.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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