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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향원정엔 명성황후의 한이 서려 있다는데 …

온라인 중앙일보 2014.04.29 16:36
1 소년중앙 시간탐험대 1기 문민(서울 상명초 5)군.
문화유산국민신탁, 배재학당 역사박물관과 함께하는 소년중앙 시간탐험대(이하 소중 시간탐험대)는 지난 19일 경복궁으로 첫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경복궁은 조선의 법궁으로 조선왕조 500년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곳입니다. 이번 답사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중심으로 돌아봤습니다. 소중 시간탐험대 1기는 코스별로 미션을 수행하고 퀴즈도 풀면서 역사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커버스토리] 소중 시간탐험대 - ①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 시해 사건'



글=황정옥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ㆍ우상조 인턴기자



진행= 박인혜 기자ㆍ황유진 인턴기자, 문화유산국민신탁: 문승현 팀장, 김진형ㆍ임재영 연구원, 권준흥 팀원,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송영미 에듀케이터, 손효선 학예연구원





2 현재 광화문의 모습.


1 코스 광화문 ~ 흥례문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은 소중 시간탐험대는 광화문 앞에서 본격적인 답사를 시작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의 김진형 연구원이 "명성황후가 시해되던 날, 광화문으로 들어오는 일본 낭인패들을 온몸으로 막아섰던 인물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라고 물었다. 주제형(서울 동북초 6) 학생이 “홍계훈 대장이요”라고 대답했다.



홍 대장과 명성황후의 인연은 임오군란부터 이어진다. 임오군란은 구식군대가 신식군대인 별기군에 비해 열악한 대우를 받는 것에 항의해 일어난 난으로 이때 위험에 처한 명성황후를 누이라고 속여 탈출시킨 인물이 홍 대장이다. 하급 무사였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승진했다. 이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동학군을 무찌르고 전주를 탈환해 그 공으로 훈련대장까지 올랐다. 그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는 날, 도성 수비를 맡고 있었고 광화문에서 일본 낭인패들에게 살해당한다.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나 뮤지컬에서 명성황후를 지키는 호위 무사로 나오는 인물이다.



광화문을 지나자 안내소, 매표소가 있는 마당이 넓게 펼쳐졌다. 김 연구원은 “여기는 궁이 아닙니다. 궁궐을 지키는 군사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궐에 해당합니다. 왕이 머무는 ‘궁’과 궁을 지키는 군사들이 머물던 ‘궐’을 합해 ‘궁궐’이라고 부릅니다”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이곳에서 광화문 수비군 교대식이 열린다.



▶ 여기서 퀴즈!



Q1. 조선의 개국 공신인 정도전은 경복궁 전각과 건물들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광화문은 정도전이 지은 이름이 아닙니다. 세종 7년인 1425년 집현전 학사들의 건의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광화문의 본래 이름은 무엇일까요.



Q2. 이 사람은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세도정치가인 안동 김씨에게 “세상에 참 구차한 왕족도 있다”고 비웃음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둘째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서 전세가 역전됐지요. 왕권 강화를 위해 서원을 철폐하고 페허였던 경복궁을 다시 짓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2 코스 흥례문~근정전



소중 시간탐험대는 광화문을 지나고 흥례문에 들어섰다. 흥례문부터 궁 안의 모든 길은 세 개의 길 '삼도'로 나뉜다. 평지보다 약간 높은 가운데 길은 왕이 다니는 길이고 동쪽 길은 문신이, 서쪽 길은 무신이 다녔다. 대문도 삼도와 마찬가지로 동쪽 문은 문신이, 서쪽 문은 무신이 드나들었다. 경복궁의 이런 구조는 유교 사상에서 비롯됐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유교를 통치 사상으로 삼고 주나라의 유교 경전인 『주례』를 기반으로 경복궁을 지었다. 광화문에서 시작해 흥례문·근정문을 지나 근정전을 주축으로 좌우가 대칭되는 구조다. 흥례문에서 근정문을 바라보며 김 연구원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금천 위로 몸을 낮게 낮춘 동물석상이 보이나요?” 소중 시간탐험대는 일제히 “네”라고 대답했다.



“무슨 동물 같아 보이나요”라고 다시 묻자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디선가 “해치요”라는 대답이 들렸다. 김 연구원은 “해치는 광화문 앞에 있는 석상이고 이것은 천록입니다. 하늘의 사슴이라는 의미로 사악한 것들이 궁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는 역할을 하지요. 하지만,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있었던 날에는 천록도 일본 낭인패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곳을 지나 근정전으로 들어갑니다”라고 말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한다. 이후 1910년, 주인 잃은 경복궁에는 일본 정부가 들어왔다. 일본은 궁이 시작되는 흥례문과 근정문 일부를 훼손시키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세웠다. 뿐만 아니라 원래 관악산을 바라보던 광화문의 방향을 목멱산(지금의 남산)으로 향하게 옮겼다. 당시 목멱산에는 조선 신사가 있었다.



명성황후를 시해할 목적으로 경복궁에 난입한 일본 낭인패들은 흥선대원군의 가마를 사정전 근처에 내려놓고 고종과 명성황후가 기거하는 건청궁으로 향했다. 김 연구원은 “명성황후 시해는 치밀하게 계획된 사건이었어요. ‘여우 사냥’이라는 작전명도 있었죠. 일본은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관계를 이용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흥선대원군이 한 것으로 몰고 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으로 흥선대원군 가마를 들고 들어오게 한 거죠. 이미 사방에 무장한 일본 수비대들을 배치해 놓고 말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퀴즈!



Q3. 1905년 을사조약을 발판으로 일제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장악하고 1910년에는 이 건물을 짓습니다. 이 건물은 광화문과 흥례문 사이에 만들어져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 수탈의 핵심 장소로 사용됐습니다. 이 건물은 무엇일까요.



Q4. 경복궁은 고대 중국 유교경전 『주례』의 고공기 편의 원칙에 따라 만들었습니다. 궁궐은 왕과 왕비 등 왕족이 일상생활을 하는 내전과 왕과 신하가 정치를 논하던 외전으로 구분합니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외전인 근정전까지 오려면 총 3개의 문을 지나는데 어떤 문을 지나는지 차례대로 말해보세요.



3 명성황후 뼛가루를 뿌렸다고 전해지는 향원정.
3 코스 향원정~건청궁



근정전을 지나 왕이 정사를 보던 사정전, 왕의 침소인 강녕전, 왕비가 거처하는 교태전을 지나자 아름다운 연못이 나왔다. 연못 가운데는 2층으로 된 육각 누각 향원정이 보였다. 봄꽃이 화려한 향원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시간탐험대 대원들은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김 연구원이 길을 멈추고 설명을 이었다.



“향원정에는 명성황후의 한이 담겨 있어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보고한 일본 보고서에 따르면 경복궁 가장 북쪽에 위치한 건청궁에서 명성황후를 찾아 시해하고 건청궁 동쪽에 있는 녹산에서 기름을 부어 태우고 재를 가까운 못에 버렸다고 기록돼 있어요. 건청궁과 녹산 둘 다 가까운 향원정을 그 못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고종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곳에 명성황후의 재가 버려진 것이죠.”



4 1909년 일제에 의해 헐린 뒤 2007년 복원된 건청궁의 현재 모습.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


5 문화유산국민신탁의 김진형 연구원이 소중 시간탐험대 대원들에게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있던 날, 일본 낭인패들이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설명을 하고 있다.


향원정을 지나 북쪽으로 더 오르자 답사의 종착지인 건청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청궁은 고종과 명성황후가 기거했던 곳으로 이곳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됐다. 건청궁은 쇄국정책을 펼치는 흥선대원군에 대항해 개방정책을 펼쳤던 명성황후의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명성황후는 건청궁에 미국·러시아·영국 등의 대사들을 불러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조선을 통해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일본에게 이런 명성황후는 방해꾼이었다.



6 모든 사악한 것들이 궁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의미를 가진 상상의 동물 천록.
일본은 ‘여우 사냥’이라는 암호 아래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사건을 흥선대원군과 일부 조선인의 소행으로 덮어씌우려 했다. 하지만 당시 조선 군인의 훈련을 담당했던 미국인 다이(W. M. Dye) 장군과 건축가이자 궁궐 수비를 맡았던 러시아인 사바틴(Sabatine, A. S)이 사건을 목격하고 전 세계에 폭로하면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본의 만행임을 밝혔다. 일본정부는 사건을 주한 일본공사였던 미우라 고로가 개인적으로 벌인 일로 마무리하고 그를 본국에 소환해 재판을 받게 한다. 한 나라의 국모를 시해한 미우라 일당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로 풀려났다.



소중 시간탐험대의 첫 번째 답사는 건청궁에서 끝났다. 답사를 마친 성다연(경기 보평초 6) 학생은 “역사의 현장에서 이야기를 들으니 더 생생하게 와닿았다”며 “코스별로 미션을 수행하고 퀴즈를 풀면서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알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 답사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고종의 행적을 쫓아가는 코스로 진행된다.



▶여기서 퀴즈!



Q5. 이 여인은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후손으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흥선대원군에 의해 간택돼 고종과 결혼합니다. 쇄국정책을 주장했던 흥선대원군에 반하여 개방정책을 추진한 이 여인은 누구일까요.



Q6. 조선정부가 러시아와 친해지려 하자, 일본은 서울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을 주축으로 새벽 경복궁에 들어와 명성황후를 시해합니다. 이 사건을 무슨 사건이라고 부르나요.



문화유산국민신탁,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소년중앙이 함께하는 시간탐험대가 경복궁에서 첫 답사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소중 시간탐험대 1기 답사 후기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경복궁에 도착해 고궁박물관을 둘러보던 중 ‘소년중앙 시간탐험대’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을 발견했다. 여러 선생님과 같은 모둠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반가운 인사도 잠깐, 우리는 끔찍했던 그날 속으로 시간 탐험을 시작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지나 흥례문, 근정문을 차례로 통과한 우리는 근정전 월대에 있는 12지신 중 자신의 띠인 동물을 사진으로 찍는 미션을 수행했다. 나의 띠 동물인 원숭이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동물의 모습이 비슷비슷해 찾기가 힘들었다. 뒤쪽으로 왕의 집무실인 사정전, 침전 공간인 강녕전과 교태전을 지나면서 퀴즈를 풀고, 이야기를 들으며 복원 중인 소주방을 지나 건청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도중 선생님께서 향원정에서 잠시 우리를 멈추게 했다. 살해된 후 태워져 남은 명성황후의 시신이 어쩌면 저 아름다운 연못 속에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며 명성황후를 기리는 뜻에서 함께 짧은 묵념을 하자고 했다. 명성황후가 시해될 당시 건청궁 안에는 고종과 세자 순종이 함께 있었다. 명성황후는 건청궁 내 곤녕합에 기거하고 있었다. 일본 낭인패들이 들어와 궁녀를 죽이는 동안 그들은 궁궐 예법에 따라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곤녕합의 닫힌 문을 바라보니, 마치 내가 진짜로 그 현장을 목격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왜 그 자리에서 그냥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고종의 서재였던 집옥재 앞에서 마지막 게임을 하고 단체 사진을 찍는 것으로 이번 1차 답사가 마무리됐다.



글= 이명하 소중 시간탐험대 1기(경기도 평택 현일초 4)



<정답>

1. 사정문

2. 흥선대원군

3. 조선총독부

4. 광화문ㆍ흥례문ㆍ근정문

5. 명성황후

6. 을미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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