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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15화>퇴원이 반갑지만은 않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4.04.29 09:20
환자나 가족 모두 쾌유를 바란다. 쾌유의 첫걸음은 바로 퇴원이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아버지가 첫 수술을 마치고 퇴원하던 2011년 2월 28일을 잊을 수 없다. 그 때만 해도 아버지는 꽤 기운이 있었고, 아버지 역시 어서 빨리 퇴원을 해 생업에 복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는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암수술 소식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저 "한 달 쉬고 온다" 정도로만 이야기했다.



하지만 3년 뒤인 지금. 퇴원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아버지는 2~3주에 한 차례씩 입원을 하고 있다. 통원치료는 필요할 때마다 하는데, 대개 한 달에 두세 차례 진행한다. 건강한 사람이라면야 잦은 통원에도 짜증이 나고, 입원을 하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3년 투병의 암환자에게는 이야기가 다르다.



우선 병동에는 간호사가 있다. 입원을 오래하면 간호사가 신의 영역에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환자의 통증과 상태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이를 의사에게 이야기해 처방을 받으며, 이를 투약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간호사다. 물론 의사가 최종 판단과 진료를 하지만, 의사는 적고 환자는 많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적은' 당신이라고 할까. 항암치료를 하다보면, 담당 교수 얼굴은 못 보고 퇴원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적어도 통증이 심해질 때 하소연하고 주사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은 입원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래서 퇴원이 반갑지 않다.



또한 입원을 하면 다른 환자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 실제로 항암환자들은 병동에서 다른 환자들과 병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궁금한 점을 주고 받는다. 옛날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에서 보던 마실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다들 나이와 고향을 묻고, 무슨 암인지를 묻는다. 신기한 것은 다들 서로의 신상명세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도, 물어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암 앞에서, 환자복을 입고, 다들 평등한 환자가 된다.



앞쪽 병상에 앉은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에게 항암치료는 몇 번을 했는지, 방사선 치료는 몇 회를 했는지를 물어본다. 그 아저씨는 9회째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신은 30회 넘게 항암치료를 했다면서, 아직은 기운이 있으실 것이라고 부러워했다. 물론 상대편 아저씨 역시 30회 넘게 항암치료를 이겨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투병 의지를 불태울 것이다.



암덩어리가 커져서 만져진다는 이야기를 하면, 방사선을 하면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에서, 암환자가 너무 많아서 정신차리고 자신이 필요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면 투약이 늦어져 하루 더 있어야 된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어떤 때는 역정을 내는 다른 환자의 이야기에 동조하기도 한다.



'환자애'는 짧지만 진솔한 우정이다. 치료가 끝나면 다들 인사를 하고 떠나간다. 퇴원하는 날 오전, 함께 치료받던 4명의 환자가 동시에 퇴원했다. 나이는 다들 60~70대. 70대 아저씨가 형님으로 좌장격이 될 만 하지만, 암 경력(?)이 짧아서 겸손(?)하다. 환자 뿐 아니라 가족들도 서로에게 건강하라며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물론 입원의 단점은 병원비 걱정일 것이다. 요새야 그리 큰 돈이 들지 않아서 걱정하지 않지만, 언제 큰 돈이 들지 모르는 일이다. 특히나 요즘에는 병실이 없다. 여차하면 1~2인실에 입실하지 않으면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 올 지 모르는 일이다. 아버지를 비롯한 병실의 많은 환자분들은 "그러면 치료를 못 받는다"면서 이야기를 하지만, 보호자가 된 자녀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잘 모시고 싶은데 여력이 안 되면 정말 눈물만 난다.



최근 입원 때도 같은 병실을 쓰는 어떤 아저씨는 한 병에 60만원짜리 비급여 항암제를 쓴다고 했다. 한 번 진료에 300만원, 월 600만원이다. 내 잘못으로 살림이 빠듯해 진 것은 아니지만, 월 몇 백만원을 병원비로 쓸 수 없는 아들은 괜히 더 죄송해 말을 못한다. 어제는 항암제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다가 살짝 짜증이 나서 보호자용 침대에서 잠을 자버렸다. 눈을 떠보니 아버지는 1층에 혼자 내려가 방사선치료를 받고 오셨다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모님 역시 방사선 치료를 하기 전 병원비 부담으로 주저하셨다고 한다. 물론 병원비는 내가 내고 있다. 아버지에게 얼마 안 할테니 치료나 잘 받으시라고 몇 번을 말씀드린 뒤에 결심하시는 모습이 기억난다. 3일간 병원비는 57만원이 나왔다. 혹시 몰라 백만원 정도 모아뒀던 것이 이렇게 반가울 수 없다.



이번 입원치료에는 어머니가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지쳤을 듯 싶어 일부러 오지 말라고 이야기했단다. 사실, 어머니도 꽤 지쳤다. 아버지 대신 돈을 버느라 심신이 피곤한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챙겨달라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또한 집에 있을 때는 오롯이 어머니가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는 퇴원을 하면서 간호사로부터 패치형 진통제 듀로제식 사용법을 들었다. 그리고는 한 개 붙여보았다. 왼쪽부터 듀로제식 진통제의 모습, 부착 전(가운데), 가슴에 부착한 모습(오른쪽). [이현택 기자]


어쨌든 아버지는 퇴원을 했다. 퇴원약으로는 마이폴, 타진, 듀로제식 등을 받았다. 지난 3일 입원 기간 동안 다양한 통증 완화 검증을 통해 의사가 처방해 준 약들이다. 특히 듀로제식 가슴에 붙이면 72시간 동안 통증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진통제가 알약은 물론 붙이는 패치, 혀로 녹여먹는 테이프 형태 등이 있다고 하니, 의약품의 발달이 신기하기도 하다.



본가에 왔다. 아버지는 "아무리 작고 불편해도 집이 편안하다"고 했다. 그동안 통증과의 싸움에서 심신이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가 해준 점심을 먹고는, 기운을 차렸는지 잔소리를 한 바탕 하신다. 평소 같았으면 짜증이 났겠지만, 아파서 말도 잘 못하던 모습을 봤는지라 잔소리가 반갑다.



퇴원과 동시에 아버지에게는 미션도 있다. 바로 친척모임 때까지 며칠 동안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다. 내 결혼 후 아버지는 일가친척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싶어했다. 결혼 때 와준 친척들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저녁 한 번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암 통증에 시달리면 모임은 취소될 수밖에 없다.



"아들 결혼식 와 줘서 고마워. 허허허"라고 하면 "축하드립니다. 형님" 소리를 듣고 싶을 것이다. 옛날에는 아저씨들이 '허허허'거리면서 인사하면 좀 이상했는데, 이제는 조금씩 그 마음이 이해가 가는 것보니 나도 영락없는 아저씨다.



퇴원 이후 며칠 동안, 아버지는 통증에 시달릴 것이다. 통과의례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서 견디고 또 최적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외로운 싸움이다. 본인이 정확하게 기록하고 또 증상에 대해 소상히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하루에 수백 명의 암환자를 진찰하는 의사가 다 챙겨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아버지의 하루는 저물어 간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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