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직 때 규제 만들고 … 퇴직 후 산하기관서 2모작"

중앙일보 2014.04.29 02:30 종합 4면 지면보기
‘관피아’의 먹이사슬은 ‘갑을’관계가 연쇄적으로 이어진 피라미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최정점에는 중앙정부 고위 퇴직관료들이 서 있다. 이들은 규모가 큰 공공기관·민간협회,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차지한다. 위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자리를 나눠먹는 먹이사슬 구조는 국민이 잘 알지 못하는 각종 협회·조합까지 이어진다.


관료 일자리 먹이사슬 어떻게
공기업 → 산하협회로 옮겨 다녀
금융권 요직은 모피아가 독식
감사원도 재취업 … 견제 한계

 이 중에서도 대표격은 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인 ‘모피아’. 재무부에 뿌리를 두고 재정경제부를 거쳐 지금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로 이어지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퇴직관료 집단이다. 이들은 연봉이 최고 5억~6억원(2013년 기준)에 달하는 금융공기업을 독차지해 왔다. 최근 낙하산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면서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의 CEO 자리를 놓쳤지만 이 두 곳은 모피아의 전유물이었다. 이 두 곳의 행장 후보 하마평에도 막판까지 모피아의 전·현직 차관 이름이 올라 있었다.



 금융회사 외에도 알짜가 많다. 한국거래소·예탁결제원·한국투자공사의 이사장·사장과 은행연합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현재는 공석)의 협회장 역시 모두 모피아 출신이다. 공모를 하면 10여 명의 후보가 몰려들지만 모피아가 후보로 나서면 다른 후보자들은 들러리가 되기 십상이다. 정부 규제를 감당하려면 방패막이가 필요하다는 논리에 따라 산하기관과 민간협회도 모피아 출신 기관장의 영입을 원하면서다. 모피아는 금융감독원장을 독식하다시피 한다. 또 부원장 자리 셋 가운데 수석부원장은 늘 모피아 몫이다. 지금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퇴직한 최종구 전 기재부 국제업무관리관이 수석부원장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모피아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남긴 자리는 금피아(금융감독원 마피아)가 차지한다. 지난 3월 말 금융회사 주주총회에서 금피아들이 연례행사처럼 은행·증권·보험·카드사 감사를 줄줄이 차지한 이유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들이 자율규제 기능을 잘하면 좋지만 결국 전관예우를 통해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선배들이 방패막이 역할을 하면서 현직에 있는 후배들의 감독 기능은 무뎌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 나아가 저축은행 사태나 원전비리 때처럼 뇌물까지 동원된다.



 다른 관피아들의 먹이사슬 구조도 다르지 않다. 그동안 모피아에 가려져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산피아(산업통산자원부 마피아) 역시 먹이사슬의 촉수를 깊고 넓게 뻗치고 있다. 산피아는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 같은 대형 공공기관이 먹이사슬의 출발선이다. 이들 기관의 사장은 모두 지식경제부·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출신이다.



 관피아는 생명도 길다. 산하기관에서 협회로 옮기는 갈아타기를 통해 이모작·삼모작은 기본이다. 부실경영을 해도 다시 컴백한다. 한 번 관피아는 영원한 관피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현태 전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지난해 8월 공공기관 평가에서 최하위등급(E)을 받고 물러났지만 같은 해 12월 임기 3년의 한국석유화학협회 상근부회장에 취임했다. 2008년 3월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 보험사업단장으로 퇴직한 뒤 6년 새 세 번째 갈아타기에 성공한 경우다.



 국피아(국토교통부 마피아) 역시 알짜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퇴직관료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2008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퇴직한 국토부 소속 4급 이상 공무원 314명 중 118명(31.7%)이 유관단체에 재취업했다. 퇴직 당일이나 일주일 이내 자리를 옮긴 사람도 63명에 달한다. 재직 중에 미리 갈 곳 정해둘 정도로 낙하산이 일상화돼 있다는 얘기다.



 퇴직관료들은 정부와의 커넥션을 앞세워 민간기업에도 깊숙이 진출해 있다.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상장사 매출기준 3위까지 총 30대 기업 사외이사 136명의 출신을 조사한 결과 검찰·법원·공사 등을 포함한 정부 측 인사는 55명에 달했다. 특히 대형 로펌 ‘고문’으로 활동하며 사외이사로 재직 중인 경우가 많았다.



 국회와 감사원의 견제는 크게 약화됐다. 감사원 출신 퇴직관료들도 일반 정부부처 퇴직관료들과 뒤섞여 낙하산 인사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다. 국회의원들은 관피아에게 지역구 예산을 따거나 지역구에 도로 건설을 부탁하느라 관료들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치려면 정부 유관기관에 전문성이 있는 민간 전문가를 대폭 수용하는 개방형 인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들이 퇴직 관료들과 산하기관들을 통해 먹이사슬을 형성하는 핵심 고리는 규제”라며 “관료들이 경쟁적으로 규제를 양산해놓고 퇴임 후 공공기관을 거쳐 협회까지 내려가 호의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김동호 기자

김원배·김현예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