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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신데렐라 vs 백두혈통, 김경희 빈자리 앉을 여인은

중앙일보 2014.04.29 00:27 종합 13면 지면보기
평양의 안방 권력이 새 주인을 기다립니다. 40년간 자리를 지킨 ‘경희 고모’가 얼마 전 방을 뺐기 때문입니다. 김경희(68) 노동당 비서. 김일성 주석의 딸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이죠. 김성애(김일성의 후처)가 ‘평양 치맛바람’이란 권력남용으로 1974년 6월 평양시당 전원회의에서 비판받아 위축된 후 김경희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자리했습니다. 3년 전 12월 김정일 사망으로 조카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정은의 최대 후견인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김경희를 낙점한 때문입니다.



 몰락은 급작스레 닥쳤습니다. 지난해 12월 남편 장성택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그녀는 급전직하했죠. 내리 4선 의원을 한 김경희는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도 탈락합니다. 최근엔 기록영화에서도 삭제됐죠. 지워진다는 건 권력핵심에서의 퇴장을 의미합니다. 사실상 숙청인 셈이고 재기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기록영화서 삭제된 김경희 … 사실상 숙청



 무주공산(無主空山)-. 대신 두 젊은 여인이 떴습니다. 먼저 이 자리를 노린 건 이설주입니다. 은하수관현악단 소속 유명 가수이던 그녀는 후계지위를 굳혀가던 청년지도자를 단숨에 사로잡았죠. 2012년 7월 ‘부인 이설주 동지’로 불리며 등장한 ‘평양판 신데렐라’입니다. 김정은과 팔짱을 낀 채 활보하고, 팝콘을 함께 먹는 장면과 걱정스레 지켜보던 노동당과 군부 원로의 표정이 오버랩됩니다.



여동생 김여정은 급부상한 다크호스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투표장에 오빠와 함께 나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그녀를 ‘노동당 중앙위 책임일꾼’으로 호칭했습니다. ‘일꾼’(북한 표기는 ‘일군’)은 북측에서 간부를 의미합니다. 정보기관 핵심 관계자에게 ‘구체적 정보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원래 김예정이란 이름을 쓰며 당 선전선동부의 과장 직함을 가졌는데, 부부장(차관) 이상 자리에 오른 걸로 파악된다”는 겁니다. 당·군 핵심에서 “모든 길은 여정 동지로 통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니 총리나 장관을 능가해 보입니다.



이설주 ‘내조’ 김여정 ‘보좌’ 역할 분담



 25살 동갑내기인 이설주와 김여정, 두 파워 우먼 중 누가 권력중심에 가까운 걸까요. 한마디로 ‘남편 김정은’이 세냐, ‘오빠 김정은’에 힘이 더 실리느냐의 문제라 할 수 있죠. 물론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김정은과의 연결고리가 ‘이성 간 사랑’이냐 ‘핏줄’이냐 하는 겁니다. 여성편력이 대단했던 김정일 때를 꼼꼼히 짚어보면 잠정결론이 가능합니다. ‘북한 퍼스트 레이디가 누리는 권력지위의 유효기간은 최고지도자의 사랑이 식을 때까지…’란 겁니다. 절대권력자의 불꽃같은 사랑이 타오를 때 한없이 반짝이지만 열정이 식으면 버림받고 잊혀져야 하는 운명이란 겁니다.



 두 딸을 둔 김정은의 이설주에 대한 애정은 각별합니다. 스위스산 명품 커플시계를 꼭 차고 다니는 걸 봐도 알 수 있죠.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스위스에서 함께 유학한 여동생과의 끈끈한 혈연도 만만치 않습니다. 종합점수를 내보니 현재로선 이설주의 내조와 김여정의 밀착보좌가 우열을 가리기 힙듭니다. 시누이와 올케의 역할분담이자 안방권력 분점인 셈입니다.



 그동안 평양의 로열패밀리 여인들은 은둔을 강요받았습니다. 김정일과 28년간 산 고영희(김정은의 생모)가 공개석상에 한 번도 나타나지 못한 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습니다. 후계지위에 자기 소생을 앉히려 궁중암투를 벌이던 그늘 속 여인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퍼스트레이디임을 당당히 드러내고, 오빠의 보좌관으로 공직진출에 나섰습니다. 최고지도자를 움직이고, 파워엘리트들을 쥐락펴락할 젊은 여인들의 파워게임이 시작된 겁니다.



이영종 외교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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