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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과 렘브란트가 만났을 때 …

중앙일보 2014.04.29 00:19 종합 19면 지면보기
알랭 드 보통은 미술관이 사람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곳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은 치유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네덜란드 라익스 미술관 . Olivier Middendorp 촬영. [사진 Rijks Museum]


“슬픈 일들이 더 슬퍼지는 건 우리가 혼자 슬픔을 견디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의외로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데 있다.”

암스테르담 라익스미술관 전시
일상의 고통 덜어주는 미술
철학자 드 보통의 해설 붙여
"감상에 방해" 부정적 평가도



 영국의 스타 철학자 알랭 드 보통(45·Alain de Botton)의 말이다. 예술에 치유의 힘이 있다고 말해왔다. 그는 “만일 세상이 좀더 따뜻한 곳이라면 우리가 예술 작품에 이렇게까지 감동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에게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국의 미술사가 존 암스트롱(John Armstrong·48)과 함께 지난해 펴낸 『영혼의 미술관』(원제 Art as Therapy·치유로서의 예술)에서다.



 마음을 다독이는 예술의 힘에 대해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그가 이번엔 사람들과 예술 작품이 만나고 교감하는 현장으로 찾아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드 보통이 네덜란드 암스텔담의 라익스 미술관(Rijks Museum)의 새로운 전시에 참여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25일 개막한 전시 제목은 ‘예술은 치유다’(Art Is Therapy).



알랭 드 보통
 ◆미술관으로 간 철학자=라익스 미술관은 네덜란드 국립 미술관으로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간 순찰’(1642)), 베르메르의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1663~64) 등의 걸작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작업을 끝내고 지난해 4월 새로 문을 열자마자, 지난 한 해에만 300만 명이 찾았을 정도로 암스텔담의 대표 명소로 꼽힌다.



 ‘예술은 치유다’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모으는 것은 새로운 형식의 캡션(caption·짤막한 해설문)이다. 작품에 대한 기본 정보를 담은 전통적인 캡션과는 별도로 소장품 150점에 대해 쓴 짤막한 글을 대형 ‘포스트 잇’ 디자인으로 미술관 곳곳에 붙여놓았다. ‘운명’ ‘정치’ ‘섹스’ ‘돈’ ‘기억’이라는 주제에 대해 쓴 글은 작품 주변뿐만 아니라 미술관 아트숍, 카페, 옷 보관소, 입구 곳곳에 붙었다.



 17세기 풍속화가 얀 스틴(Jan Steen)의 ‘성 니콜라스 축제’(1626) 그림 옆에 붙은 글귀는 다음과 같다. “허무함과 죄책감, 자신과의 불화를 겪고 있는 당신은 어쩌면 이 그림과 약간 닮았을 것이다.” 또 ‘ 기억’이라는 주제로 많은 주검이 보이는 19세기 사진 전시장에는 “이 미술관에서 가장 슬픈 곳… 여기서 당신은 울고싶어질 것”이라고 썼다.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렘브란트의 ‘야간 순찰’ 그림 옆에 쓴 글은 다소 엉뚱하다.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는 견디기 힘드네. 더 한적하면 좋으련만.”



 ◆“참신한 실험” vs “감상 방해”=드 보통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어느 미술관을 가나 캡션이 똑같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예술이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들, 즉 사랑과 우정, 일과 지위, 기억과 도덕성 등과 관련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틀에서 벗어나야 예술의 치유적 힘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라익스 미술관은 “철학자가 자신이 말해온 이론을 현장에 옮긴 최초의 전시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드 보통의 캡션 작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가디언은 “그의 통찰은 별 깊이도 없고 따분하다”며 “미술관 곳곳에 붙은 쪽지가 오히려 작품 감상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관람객의 생각을 자극하는 훌륭한 프로젝트’라는 의견과 ‘관람객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가두는 행위’라는 시각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은주 기자



◆알랭 드 보통=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으며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런던에서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를 창립해 운영해오고 있다. 『여행의 기술』 『행복의 건축』 『불안』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일의 기쁨과 슬픔』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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