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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지금은 핵실험 할 때가 아니다

중앙일보 2014.04.29 00:10 종합 27면 지면보기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총리가 사표를 냈다. 세월호 참사 열이틀 만이다. 위험에 빠진 오너를 구하기 위한 고용사장의 고육책(苦肉策)인가. 이번 참사는 백기사나 희생양 몇 명으로 수습될 문제가 아니다. 선장과 선주를 붙잡아 십자가에 매단다고 끝날 일도 아니다. 국민은 박근혜 정부의 민낯을 똑똑히 보았다.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무참하게 무너졌다. 국민이 국가를 믿지 못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을까. 박근혜 정부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다.



 해양수산부의 위기 대응 매뉴얼에는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충격상쇄용 기사 아이템을 적극 발굴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 크고 화끈한 기사로 물타기를 해 국민의 관심을 호도하란 얘기다. 지금 대통령 주변엔 은근히 북한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북한이 타이밍 맞게 장거리 미사일을 쏘거나 4차 핵실험을 한다면? 언론의 관심이 금세 북한으로 쏠리면서 세월호 참사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청와대에 쏠린 비난의 화살도….



 지금 대한민국은 상중(喪中)이다. 지난주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얼떨결에 문상객이 됐다. 양국 정상은 서로 상례(喪禮)를 차리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한목소리를 냈다.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같은 도발을 강행하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경고했다. 오바마는 나아가 북한의 끔찍한 인권 상황을 거론하고,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지지 입장도 표명했다. 흡수통일 의도를 담고 있다고 북한이 극력 비난한 ‘통일대박론’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퇴로를 차단한 채 북한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은 모양새다.



 예상대로 북한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전면대결을 선언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미국과는 말이 아니라 오직 힘으로 맞서야 하며 전면 핵 대결전에 의한 최후의 결산밖에 없다는 믿음이 더욱 확고해졌다”고 목청을 높였다. 계속 핵무력 증강의 길로 가겠다는 선언이다. 북한은 이미 핵실험 준비를 마쳤다. 4차 핵실험은 시기 선택의 문제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북한 핵 문제는 도발과 제재의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대북제재가 기대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석유자원을 가진 이란처럼 잃을 게 많은 나라가 아니다. 중국이란 결정적 구멍도 있다. 북한 체제의 불안정을 원치 않는 중국은 제재에 동참해도 북한의 숨통이 끊어질 정도까지 압박하진 않는다. 제재 카드가 북한에 안 먹히는 이유다.



 대화를 재개해 북한의 핵 활동을 일단 현 수준에서라도 동결시키는 것이 그나마 나은 대안이다. 제재 일변도로 몰아붙이면 결국 북한의 핵 보유고만 늘려주는 꼴이 되고 만다. 북한이 4차 핵실험 카드를 흔들고 있는 지금이 대화 가능성을 모색해 볼 수 있는 기회지만 한·미 정상은 이를 외면했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오바마는 미사일 방어(MD) 체제를 제일 먼저 언급했다.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 체제를 독자적으로 추진하되 미국 MD와의 상호운용성을 강화키로 했다는 것이다. 중국을 의식해서 ‘독자적’이란 표현을 썼을 뿐, 사실은 미 MD 체제에 연동시킨다는 의미다. 그렇게 하려면 미사일과 레이더 시설 등 거액의 군사장비를 미국에서 들여와야 한다. 한·미 정상은 또 한·미·일 3국간 군사정보 교류에도 합의했다. 북한의 핵 위협을 구실로 한국을 한·미·일 3국 동맹의 틀로 끌어들여 대중(對中) 견제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한국에 대한 무기 판매까지 늘릴 수 있으니 미국으로선 일석이조(一石二鳥)다. 성과도 없는 ‘전략적 인내’ 노선을 오바마가 5년 넘게 고수하고 있는 이유일지 모른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쏘고, 4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세월호 참사의 충격을 덮을 순 없다. 한국 국민이 느끼고 있는 세월호 트라우마는 그 정도로 크고 깊다. 북한이 지금 핵이나 미사일로 도발을 한다면 한국의 민심은 북한에 완전히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순서가 있다. 지금 한국 국민에게는 비통함을 삭이고,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 사태를 수습하고 책임을 따지고 시스템을 정비할 시간도 필요하다. 동족의 슬픔을 외면한 채 핵실험 단추를 누른다면 한국인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응어리를 남길 것이다. 핵실험이든 미사일 발사든 지금은 때가 아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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