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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14화>아버지의 위시 리스트

온라인 중앙일보 2014.04.28 14:36
항암 입원 동행기 연재도 이틀째다. 오늘은 아버지의 '위시 리스트'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겠다. 아버지는 음식을 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암에 걸린 뒤로는 음식에 예민했다. 어떤 음식은 너무 싱겁다고, 어떤 때는 짜다고, 어떤 것은 조미료 맛이 강해서, 달다고, 맵다고 등 맛에 대한 모든 혹평이 쏟아질 때도 있었다. 때로는 맛있다는 음식점을 자주 가자고 하지만, 어떤 때는 그 음식은 절대 안 된다고 이야기 한 적도 있었다.



왜 그럴까.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나: 왜 그리 음식에 민감합니까.



아버지: 왜 그리 생각하냐. 내가 음식에 민감하냐.



나: 뭐 음식이 맛 없으면 역정내고 … 맛있는 것 먹고 싶다고 매일 이야기하시지요.



아버지: 에헴. 그렇지. 그건 말야. 항암치료를 하면 구토가 나고 내장에서 약품 냄새가 나. 지금은 너무 많이 하니깐 향내가 나는데. (웃음) 그러면 목에서 안 받아. 그러면 뭘 먹어도 항암제 같아. 그러니깐 맛있는게 생각나는 거야. 좋은 것 먹으면 덜 구역질 나고, 더 먹고 싶고.



나: 술을 못 먹으니깐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아버지: 그렇지. 맥주를 먹는다 하자. 그러면 안주를 먹을거 아니냐. 소주에는 찌개. 술, 담배를 안 하니, 먹는 것 외에는 낙이 없지.



나: 그럼 뭐가 주로 먹고 싶죠?



아버지: 옛날에 내 엄마(돌아가신 할머니)가 해줬던 것이 생각난다. 근데 나는 엄마가 어릴 때 돌아가셨으니깐 나름대로 맛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지. 그래서 위시 리스트가 있다. 먹고 싶은 것들.



나: 지금은 뭐가 먹고 싶어요.



아버지: 소갈비 구이.



그래서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다. 아내도 아버지가 아프시다고 하여 "아버님 드시고 싶은 것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라고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걸 곧이 곧대로 해석, "며느리가 먹고 싶은거 보내라고 아침에 문자를 보냈으니, 네가 소갈비를 구워오라고 연락하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아내는 불평없이 조용히 유명 갈비집에서 양념갈비 구이를 사왔다. 갈비탕 세 그릇과 함께.



며느리가 사온 소갈비 구이를 보자 아버지의 얼굴에는 금세 화색이 돌았다. 오른쪽 손이 아내. [이현택 기자]


아버지의 식사 위시리스트는 3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고 했다. 월별 스케줄이 있다. 이 달의 목표처럼, 이번 달에 먹어야 할 것들을 만들고 있다. 일별로 스케줄도 있다. 직장인들의 점심ㆍ저녁 스케줄을 생각하면 된다. 아침에는 뭐, 점심에는 뭐, 이런 식이다. 같이 먹을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이름과 메뉴도 적어둔다.



근데 기왕에 먹으려면 맛도 좋으면서 몸에 좋은 것을 먹고 싶다는게 아버지의 이야기다. 그래서 매일 음식 프로그램을 시청하기도 한다.



어제는 죽이 드시고 싶다 하여 내가 죽을 사왔었다. 아버지는 녹두죽, 나는 야채죽이다. 휴가를 받은 불효자는 아버지를 위해 '특제 반찬'도 하나 준비했다. 사실 나는 음식을 잘 못한다. 하지만 휴가로 쉬는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반찬 하나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만들어봤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와 함께 뱅어포를 즐겨 먹었다. 고추장 소스에 재운 뒤 구워서 먹는 뱅어포는 우리 집의 '추억 음식'이다. 내가 집에서 뱅어포를 만들었다. 요리 책 보고 하니 할만 했다. 맛있게 드셨지만, 식사량이 줄어 구입한 양의 1/3 정도만 드셨다.



입원을 앞두고 아버지와 식사를 하던 광경. 아들이 웬일로 만들어 온 뱅어포 구이에 대해 "좀 짜다"는 혹평을 하면서도, "괜찮게 만들었다"고 맛있게 드셨다. 동그라미 안은 뱅어포의 모습 [이현택 기자]


또 아버지는 얼마 전 함께 먹었던 장어 이야기를 한 번 더 하셨다. 다음에 먹으러 가야겠다. 민물장어의 맛이 좋았고, 바닷장어와는 어떤 점이 다르고, 예전에 김포의 시장에서 사왔던 장어의 맛이 어떻고 등 이야기가 이어졌다. 언젠가 기력을 회복하면 성남의 모란시장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 아버지가 들려주는 엄마의 새댁 시절 '깨알 실수'=다들 그랬겠지만, 우리네 70~80년대는 다들 어려웠다. 80년대 초 새신랑으로 가정을 꾸렸던 아버지 역시 그랬다. 음식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는 어머니의 새댁 시절 음식 관련 굴욕 사건들을 이야기했다. 누군가의 굴욕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웃고 떠드는 것은 비단 내 세대의 취미가 아닌가보다. 아버지에게 엄마의 옛날 이야기를 들어봤다.



80년대 초, 아버지는 있을 곳이 변변히 없어 서울에 사는 동생들과 함께 거주했고, 결혼 후에도 어머니는 시동생들과 몇 달 같이 살았다. 하루는 어머니가 큰 마음을 먹고 돼지고기를 사왔다고 한다. 돼지고기를 맛있게 만들어주겠다고 하여 기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돼지고기를 설탕에 무치고 있었던 것. 여군 출신으로 음식을 한 가지도 할 줄 몰랐던 어머니는 불고기에 설탕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생각하고는, 그냥 설탕으로 돼지고기를 만지작 만지작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지적하자, 얼굴이 빨개져 조용히 돼지고기를 버리고 새로 사왔다고 한다. 누가 요리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동생들 중 하나"라고 했다.



국수 이야기도 있다. 아버지는 얼큰하게 김치국수를 먹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원래는 칼국수로 먹어야 하는데, 집에서 해먹기 귀찮으니 끓는 물에 소면과 김치와 고추장을 넣어 살짝 매콤하고 칼칼하게 먹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끓는 물에 국수를 넣어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찬물에 국수와 고추장, 김치 등을 넣고 같이 끓인 것이다. 그래서 죽처럼 잘게 가늘어져, 숟가락으로 먹었다고 한다. 맛없다고 하면 안될까봐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드셨다고.



물론 지금 어머니는 살림 30년의 경력으로 맛있는 요리를 뚝딱 해내신다. 지금의 어머니가 국수를 그렇게 해 왔다면 아버지는 역정을 내셨겠지.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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