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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랑 고적 답사 … 한 뼘 더 생각이 커진답니다

중앙일보 2014.04.28 00:28 종합 28면 지면보기
최경숙(오른쪽)씨 가족이 2012년 경주 황룡사지를 방문했을 당시 찍은 사진. 큰딸 나연(왼쪽)이와 작은딸 연우에게 삼국유사를 읽히고 가족 넷이 2박3일간 경주에 있는 신라 유적지를 방문했다. [사진 최경숙]


세월호 참사로 초·중·고교의 1학기 수학여행이 중단됐다. 앞으로 수학여행을 어찌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도 뜨겁다. 수학여행이 졸지에 사라져버려 서운할 법한 아이들을 위로해줄 대안은 없을까. 여기 가족 단위의 ‘느린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있다.

『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 최경숙씨
두 딸과 고택·사찰 등 60곳 누벼
부여·보령 코스 뛰어놀기 제격



 “강원도 영월 청령포는 조선시대 단종이란 어린 임금이 작은아버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쫓겨가 살았던 곳이야. 그 어린 임금이 이렇게 둘로 갈라진 나무 줄기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단다. 그래서 이 나무엔 관음송(觀音松)이란 이름이 붙었어. 어린 임금을 ‘지켜보고’ 그의 ‘말소리’를 전해 들은 소나무란 뜻이야. 우리 청령포에 한번 가볼래?”



 엄마 건축가 최경숙(40)씨가 두 딸 나연(9)이와 연우(4)를 데리고 답사를 떠나는 방식이다. “답사를 가기 전에 짧은 책을 함께 읽고 떠나면 아이들 흥미를 키울 수 있어요.” 그는 이런 노하우를 담아 최근 『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이란 책을 냈다.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던 20대 후반 시절, 최씨는 야근에 지친 심신을 답사로 달랬다. 그가 다시 ‘답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0여 년이 지나 ‘부모’가 된 뒤부터다. 대부분의 부모가 휴가 때면 아이들을 데리고 워터파크·놀이동산을 찾거나 해외여행을 떠나기 바빴다. 하지만 그는 국내 답사의 가치를 체득한 부모였다. “나중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답사를 떠나면 자연 속에서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갖게 되고요, 조상의 지혜도 깨달을 수 있지요.” 책에는 2008년부터 최씨 가족이 찾았던 전라도·경상도·충청도권 유적지 60여 곳이 소개돼 있다.



 나이가 어린 두 아이들에게는 뛰어놀 수 있는 곳이 제일이었다. 그가 부여·보령 코스를 추천하는 이유다. 낙화암이 위치한 부소산과 인공연못인 궁남지, 고려시대 절터인 성주사지까지…. 신록이 우거지는 지금이 방문하기 제격이다. 고학년에게는 일제강점기 흔적이 남아 있는 군산을 추천한다. 일본식 가옥과 일본식 사찰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 영화 속 세트장을 방문한 느낌을 준다.



 그는 책에는 나와 있지 않은 한 가지 팁을 더 알려줬다. 최근에 민박을 할 수 있는 전통가옥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충남 논산의 명재고택과 경북 봉화의 권진사댁, 청송의 송소고택 등이다. 그는 “고택 사랑채에서 ‘이리 오너라’ 하며 아이들과 노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전했다. 답사지 인근에 고택이 없으면 아이들이 자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휴양림에서 잠을 잔다.



 답사를 꾸준히 다니다 보니 아이들의 한국사 교육에도 일가견이 생긴 최씨. 그는 한국사는 고학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보통 엄마들의 공식에 반대한다. “요즘엔 아이들이 우리 국토, 문화, 문화재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그러다 초등학생이 되고 고학년이 되면 우리나라 역사는 먼 얘기가 되어 버리죠. 하지만 어릴 때부터 답사를 다니면 우리 문화재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져요.”



 다음 달에 최씨는 또 아이들과 함께 답사를 떠난다. 이번엔 충남 홍성에 위치한 한용운·김좌진 장군 등의 생가를 방문할 예정이다. 아이들에겐 이들의 위인전을 읽어줄 참이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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