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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꿈꿔라, 이게 인생이다

중앙일보 2014.04.28 00:27 종합 27면 지면보기
영국 옥스퍼드대의 올 소울스 칼리지(All Souls College) 앞에 선 김성희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 대표. 그는 “(옥스퍼드 석학들은)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면서 “다만 현재 그리고 오늘에 충실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도 쉰 살에 옥스퍼드에 입학해 영어영문학 박사학위를 땄다. [사진 김성희]


10분 남짓의 인터뷰 동영상으로 옥스퍼드대의 속살을 들춰내는 이가 있다. 바로 옥스퍼드대의 지식공유 프로그램인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VOX·Voices from Oxford)’를 이끄는 김성희(63) 대표다. 그가 최근에 펴낸 에세이 『인생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다』엔 그가 옥스퍼드까지 이르게 된 사연이 담겨 있다.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사는 그를 지난 25일 서울에서 잠시 붙잡았다.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 김성희 대표
쉰 살에 유학, 자식뻘과 함께 공부
300여 석학들 지식공유 프로그램
"옥스퍼드식 지혜 VOX서 배우길"



 물론 그도 옥스퍼드 출신이다. 1979년 옥스퍼드대에 방문연구원으로 가게 된 남편을 따라가면서 옥스퍼드와 잠깐 인연을 맺었다. 옥스퍼드가 온전히 그의 몫이 된 건 바로 20여 년이 지난 뒤였다.



서강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그가 한 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을 옥스퍼드대의 한 여교수가 눈여겨본 것. 옥스퍼드대에 입학해 함께 논문을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오십을 바라보는 자신의 나이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옥스퍼드’ 아닌가. 결국 2001년 쉰 살의 나이로 김 대표는 옥스퍼드대 엑서터 칼리지에 입학한다. 공자가 천명을 아는 나이(지천명·知天命)라고 했던 그 나이에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난 지금 뭐하고 있지. 나도 저렇게 웃으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데….” 김 대표가 자신의 아들, 딸보다 나이 어린 동료 학생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영어뿐 아니라 세대 간의 격차, 문화의 차이가 자꾸 그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때 기회가 찾아왔다. 학교에서 선상 파티가 열린 것. 하지만 막상 파티에 가보니 모두 점잔을 떨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피 끓는 청춘이 이렇게 토론 일색의 파티를 벌이는 건 직무유기”라고 말하고 싶었단다. 그가 나서 로큰롤에 맞춘 자이브로 분위기를 달궜다. 그러자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흥겹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김 대표는 댄싱퀸으로 불리며 엑서터 칼리지의 인기 여학생이 되었다.



 김 대표는 옥스퍼드대에서 4년6개월 간 영어영문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배움’의 소중함을 깨달은 김씨였다. 그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옥스퍼드대 석학들의 지식을 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2009년 탄생한 게 옥스퍼드대 석학들의 인터뷰를 이어가는 VOX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간 유명 인사가 300여 명에 이른다. 김 대표는 “모두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하는 분들이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규정 짓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렇게 단순한 인생철학이 한국인들은 익숙치 않다. 그 역시 “저도 아이들 키울 때 교육에 대해서 엄청난 계획을 세웠는데 아이들이 애써 피해가는 것을 무척 실망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깨달았다. 장황한 계획보다 바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대표에겐 옥스퍼드대의 ‘써니(Sunny) 할머니’란 별명이 따라붙는다. 그의 영어 이름이 ‘써니’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간다. 그가 VOX를 이끌고 나가는 것도 바로 이런 마음가짐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그는 “VOX를 통해 어제보다 오늘 더 발전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고 수줍은 소망을 전했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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