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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백성들 피폐 … 곡식 씨 뿌린 뒤 전쟁"

중앙일보 2014.04.28 00:25 종합 25면 지면보기
“팔방 가운데 호남이 조금 온전하지만 그나마 도내 장정들이 모두 바다와 육지의 전투에 나아가고, 노약자들도 수송하는 일에 피폐해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1545~98) 장군이 임진왜란 이듬해에 쓴 편지 전사본(轉寫本·베껴 쓴 문서·사진)이 처음 공개됐다. 편지는 경북 안동 ‘김성일 종가’에서 소장하던 것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자료화했다. 이를 충무공 탄신일(4월 28일)을 앞두고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 출간한 책 『이순신의 리더십』(여해고전연구소) 개정판에 소개했다.


1593년 상관에 보낸 편지 첫 공개

 편지는 1593년 4월 1일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였던 이순신이 경상우도 순찰사 김성일에게 보낸 것이다. 당시 김성일이 이순신에게 “화공을 사용해 왜구를 소탕하라”며 보낸 편지에 대한 답신이다. 이를 김성일의 후손이 옮겨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순신은 편지에서 화공 요청이 어렵다는 소신을 밝힌다. “명나라 군사가 남하하면 함께 수군을 거느리고 나서려 했습니다. 그러면 후방이 염려되므로 왜구를 불로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명군이 오랫동안 지체하는 형세입니다. 만약 왜구의 배를 불사르더라도 배만 없앨 뿐입니다. 정작 왜구는 잠시 멈추는 데 그칠 것입니다.” 이순신의 관직인 수군절도사는 정3품 외관직으로 종2품인 순찰사보다 한 직급 아래였다.



 전란 중 백성의 삶을 대하는 마음도 돋보였다. 이순신은 “석 달의 봄날이 이미 지나고 남쪽의 이랑은 적막하니 변란을 겪은 곳보다 더 심각합니다…(중략) 가까운 시일에 경내로 돌아가서 각 함선의 군사들을 씨뿌리기에 진력하게 하고, 명나라 군사들의 소식을 듣는 대로 즉시 바다에 내려갈 수 있도록 꾀하겠습니다”라며 민생을 염려했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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