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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산골에 소박한 집, 화가 닮았네

중앙일보 2014.04.28 00:25 종합 25면 지면보기
화가 장욱진의 ‘자화상’에 등장하는 보리밭을 실내로 끌어들이고 제단화처럼 유화 여러점을 모아 배치했다. 화가의 맏딸인 장경수씨는 “아버지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말했다. [사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보리밭 사이 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문득 노래 한마디를 들은 듯하다. 미술관 안에 펼쳐진 푸른 보리밭을 따라 들어가면 누런 보리밭 그림이 관람객을 맞는다. 화가 장욱진(1917~90·사진)의 1951년 작 ‘자화상’이다. 검은 연미복 차림의 화가 뒤를 강아지와 까치 네 마리가 좇는다. 윤용하 작곡 ‘보리밭’이 1952년에 발표됐으니 한국전쟁의 피난길에서 마음이 통해 피어난 명작들이다.

'독' '밤과 노인' 등 유화 60점
탈속의 경지 담담히 보여줘



 28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211번지에 문을 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작지만 주옥같은 장욱진의 유화 60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소장자가 외부에 내놓는 건 마지막이라고 다짐한 49년 작 ‘독’부터 화가가 죽음을 예감한 듯 타계 열흘 전에 그린 90년 작 ‘밤과 노인’까지 장욱진의 작품 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특별전이다.



 양주시와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 4년 여 준비해 세운 미술관은 ‘장욱진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리게 군더더기 없이 작고 단순하면서도 울림이 크다. 연면적 1851㎡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장욱진이 좋아했던 집의 구조와 그림 정신이 잘 담겼다는 평을 듣는다. 경기 북부 최초의 국공립미술관으로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와 다양한 레지던스 시설의 구심점 구실을 할 예정이다.



 장욱진은 평생을 “심플(simple)하게” 살고 싶어 했고, 살다 갔다. 직업은 “까치 그리는 사람”이었다. “그림은 나의 일이요, 술은 휴식”이라며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라 했다. 까치·나무·개·소·집·해·달·산·아이·가족 등 화가가 가장 잘 알고 좋아했던 것들을 되풀이한 그림은 어린아이의 눈과 지극히 까다롭게 세련된 안목 사이를 오간다. 화가는 같은 대상 을 반복해 그린 까닭을 ‘회화적 압축’이라 설명했다. “같은 걸 그리다 보면 결국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거니까 정직한 것”이고, “자꾸 반복할수록 그림이 좋은 것”이라고 생전에 말했다.



 장욱진미술관을 설계한 ‘최-페레이라 건축’의 최성희씨는 “화가의 작품과 스타일이 곧장 하나의 방향성과 형태와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고 회고했다. 미술관은 ‘방’으로 시작된다. 관람객이 만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어울리며 관계 맺는 ‘방’의 이음이며 중첩이다. 장욱진의 그림은 그 방들 곳곳에 시절과 마음을 품고 펼쳐진다.



 장욱진은 2001년 한국 화가로는 희귀하게 전작(全作) 도록(『장욱진 Catalogue Raisonne 유화』)을 냈고, 이 작품 총서로 박수근과 이중섭이 겪었던 가짜 그림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총서의 책임자이자 이번 미술관 개관준비위원장을 맡았던 정영목 서울대 교수는 “미술관을 찾는 이들이 정신적 위안을 받는 곳이길 희망한다”고 했다. 하늘·나무·집·사람 네 부류로 작품을 갈라 장욱진의 탈속한 성격과 문인화적 요소, 가족애와 불교 경향 등을 두루 살필 수 있게 했다.



 ‘세월호’ 참사 애도기간을 감안해 개관식을 6월 16일로 연기한 미술관 측은 개관식 날까지 무료로 관람객을 맞고 이후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을 받을 예정이다. 매주 월요일 휴관. 031-8082-4245.



장흥=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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