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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의 차이 나는 차이나] 해외선 중산복, 국내선 점퍼 … 시진핑 옷에 담긴 뜻은

중앙일보 2014.04.28 00:21 종합 21면 지면보기
지난달 22일 네덜란드를 방문한 시진핑 주석(왼쪽 둘째)이 국왕 부부 초청 만찬에 개량 중산복을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중앙포토]


의식주(衣食住)에서 의(衣)가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유는 무얼까. 예의를 중시한 고대 중국의 전통과 관련이 있다. 남을 대할 때 첫인상을 좌우하는 게 옷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옷 입기 나름이고 말은 안장 달기 나름이다(人?衣服馬?鞍)’란 말이 나왔다. 옷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특히 정치 지도자의 입음새는 통치 철학을 담기도 한다. 중국에선 최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드레스코드가 뜨고 있다. 외교와 내치의 경우 둘로 나뉜다.



 국제무대에서 시진핑의 차림새가 처음 주목을 받은 건 지난달 네덜란드 방문 때다. 네덜란드 국왕 주최의 환영 만찬에 중산복(中山服) 또는 인민복(人民服)으로 불리는 옷을 입고 나왔다. 여기엔 중국의 고민과 고려가 배어 있다. 시진핑은 네덜란드 국왕과의 첫 만남에서 양복을 입었다. 그러나 이어진 파티에 또다시 양복 차림으로 나설 수는 없었다. 상대는 연미복을 입는데 시진핑 또한 연미복을 입든지 아니면 이에 어울리는 다른 옷을 입을 필요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이 선택한 게 중산복이다. 중산복은 청조(淸朝)를 타도한 신해혁명(辛亥革命)의 주역 쑨원(孫文)이 즐겨 입던 옷으로 그의 호인 중산(中山)을 따서 중산복으로 불린다.



쑨원 즐겨 입던 중산복, 예의염치 상징



주석은 국내 현지시찰 땐 수수한 점퍼 차림을 즐긴다. [중앙포토]
 중산복의 유래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베트남에서 양복점을 운영했던 화교 황룽성(黃隆生)이 광저우(廣州)에서 쑨원의 주문을 받고 동남아 화인들이 즐겨 입던 옷을 변형해 만들었다는 설이다. 두 번째는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의 재단사 왕차이윈(王才運)이 쑨원으로부터 닝보의 간편복에 서양 옷의 편리성 등을 추가해 달라는 부탁에 따라 지었다고 한다. 마지막은 쑨원이 일본 체류 시 자주 입던 학생복을 가져와 상하이의 한 양복점에서 고쳐 입은 게 시작이라는 주장이다. 일본 유래설은 일본의 중국 침략 이후 사라졌다.



 중산복은 쑨원이 1923년 광저우에서 중국혁명정부의 대원수로 취임하며 입어 유명해졌다. 쑨원은 중산복 상의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강조했다. 네 개의 큼지막한 주머니는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상징한다고 했다. 춘추시대의 관중(管仲)은 예의염치를 국가의 네 가지 근본이라 했다. 그는 이 중 하나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부족하면 위험에 빠지며, 셋이 무너지면 근간이 뒤집히고, 넷을 다 갖추지 못하면 망한다고 했다. 쑨원은 이 네 개의 주머니를 크게 만들어 수첩이나 책을 넣을 수 있게 했다. 항상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였다.



 그리고 상의 한가운데 다섯 개의 단추를 달았다. 이는 쑨원이 서양의 삼권분립에 대응해 제시한 오권(행정권·입법권·사법권·고시권·감찰권) 분립의 정신을 의미한다. 양 소매엔 각 3개의 단추가 있다. 이는 그가 제창한 민족·민권·민생의 삼민주의와 공화혁명의 이념인 평등·자유·박애를 나타낸다. 옷깃은 세워서 접은 단정한 형태로 엄격하게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고, 옷의 뒤는 트지 않아 국가가 분열되지 않고 통일됨을 지향한다는 뜻을 담았다.



양복 대신 중국 고유 특색·자신감 강조





 쑨원을 받드는 장제스(蔣介石)와 마오쩌둥(毛澤東) 모두 중산복을 즐겨 입었다. 대륙의 패권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기 전인 1945년의 충칭(重慶) 회담 때 장과 마오 모두 중산복을 입고 나와 기념 사진을 찍은 모습은 인상적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마오의 중산복엔 약간의 변화가 가해졌다. 개혁의 날카로움과 마오를 다른 사람보다 더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기 위해 옷깃을 보다 예리하게 만들었다. 이는 서방에 ‘마오룩(Mao Look)’으로 알려졌으며 50~60년대 대륙을 풍미했다.



 중산복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건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다. 서방의 선진 기술 수입에 열을 올리던 중국은 83년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가 선전(深?)을 방문해 “특구 간부는 옷을 잘 입어야 한다. 과감하게 양복을 입어라”는 지시를 내리며 양복이 중산복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후 중산복은 중국 지도자가 군대를 사열할 때 가끔 모습을 비치곤 했을 뿐이다.



 그런 중산복이 이번에 시진핑에 의해 부활했다. 그것도 화려하게. 우선 스타일에 변화를 줬다. 과거와 가장 달라진 점은 네 개의 큰 주머니다. 오른쪽 위 주머니는 없앴고 왼쪽 위 주머니엔 장식을 달았다. 아래 주머니 두 개는 잘 드러나지 않게 처리했다. 기존 중산복에 비해 훨씬 더 세련되고 또 단정하며 정중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에 중국의 공식 예복(國服)으로 손색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중국 특색의 복식에 현대적인 디자인 개념을 도입해 부상하는 중국의 자신감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사실 중국은 우리의 한복(韓服)이나 일본의 와후쿠(和服)에 비견할 마땅한 옷이 없다. 청의 의복 습속을 그대로 따르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중산복 선택은 이런 고민의 결과이며 앞으로 하나의 표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한편 시진핑은 국내 무대에선 점퍼를 활용하고 있다. 과거 중국 지도부의 암묵적인 드레스코드는 짙은 색 양복에 빨간 넥타이였다. 정장 차림으로 근엄함을 나타내고 붉은 넥타이로 열정을 상징했다. 여기에 까맣게 염색을 한 흑발로 등장하곤 했던 것이 후진타오(胡錦濤) 체제까지의 모습이었다.



민생 시찰 땐 점퍼 … 허례허식 반대 메시지



 그러나 시진핑은 점퍼를 고집한다. 회의를 하거나 민생을 시찰할 때 시진핑은 대부분 점퍼 차림이다. 점퍼는 다림질할 필요가 없고 때를 타지 않으며 활동적이다. 특히 서민들과 자주 어울려 밥을 먹는 시진핑은 옷 소매가 긴 다른 옷을 입었을 경우 국을 뜨면서 밥상의 다른 반찬을 건드리는 불상사를 일으키지 않아 좋다는 우스개 칭찬까지 듣고 있다. 점퍼가 강조하는 건 효율성이다. 이에 따라 이미 중국 TV나 신문에선 점퍼 차림으로 업무를 보는 지방 정부 지도자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시진핑 따라 하기다.



 결국 시진핑의 드레스코드는 성대한 외교 행사에선 중산복을 입어 중국 특색과 중국의 부상이라는 이미지를 함께 추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무조건 양복을 입어 서구 스탠더드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중국 나름의 표준을 제시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또 국내 무대에선 점퍼를 애용함으로써 허례허식에서 벗어나 실무와 효율로 중국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유상철 중국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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