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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혼자만 잘나믄 무슨 재민겨"

중앙일보 2014.04.28 00:10 종합 32면 지면보기
정재숙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세월’호 침몰로 대한민국 세월도 멈추었다. 만성 피로가 아니라 만성 슬픔이다. 일찍이 윤동주 시인이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8번 반복한 뒤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 읊조린 ‘팔복’이 새삼스럽다. 예수 ‘산상수훈’에 대한 그 날카로운 도발은 오늘 우리 가슴에도 치민다.



 문학평론가이자 문화운동가인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이 최근 펴낸 산문집 제목은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이다. 방점은 ‘쓰잘데없이’에 찍힌다. 세상이 쓰잘데없다고 내다 버린 것들을 당신은 잊지 않았는가. 한마디로 “돈 안 되고 번쩍거리지 않고 무용하다는 이유로 시궁창에 버려진 것들의 목록을 만들고 기억해야 할 시간이 아닌가”라고 노학자는 묻는다. 쓰잘데없다고 내다 버린 고귀한 것들이 진도 앞바다에 어린 생명들과 함께 묻혀 있다.



 끔찍한 건 지난 20여 년 여러 매체와 지면에 발표했던 글들을 모은 이 산문집이 현재형이라는 사실이다. 책 어느 곳을 펼쳐 읽어도 지금 우리 얘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느낌에 지은이도 놀란다. 세월호는 이미 20년 전, 아니 수십 년 전 대한민국 호의 이름이었던가 싶다.



 도정일 교수가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의 목록을 기억하자고 말하는 이 순간에도 ‘쓰잘데없다’고 낙인 찍힌 것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있다. 시장에 내놔봐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이란 이유에서다.



 그중에서도 지역 대학 일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과 폐지와 통합 사태는 대한민국 세월호의 시대 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지난 10일 원광대는 서예문화예술학과를 폐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012년 이후 정원이 미달하고 전과로 인한 학과 충원 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원광대 서예학과는 1988년 세계 최초로 4년제 정규대학에 독립학과로 설치된 자랑거리였다. 당시 서예계 원로들이 여러 해에 걸쳐 정부기관과 국회에 탄원하는 노력 끝에 어렵게 성취한 숙원사업이었다. 동아시아 정신문화의 한 정점으로 서예를 발전시키겠다는 기세가 충만해 중국과 일본도 부러워하던 학과다. 서예학과는 2007년 ‘특성화 지원학과’로도 선정됐다. 그런 학과가 모순되게도,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지방대학 특성화사업’에 밀려 오욕의 폐과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강원대는 지난달 총장이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를 통합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학기 초부터 초상집이 됐다. 두 과 교수들은 기초학문인 인문학을 육성하고 보호해야 할 거점 국립대학이 어떻게 이런 비민주적이고 근시안적인 밀실행정을 할 수 있느냐고 분노했다. 인문대학에 부과된 정원 감축의 짐 전체를 떠안게 된 두 과는 ‘유럽학부’라는 기형적인 이종교배학과로 떠밀려나게 될 위기에 처했다. 같은 유럽권이라 해도 학문의 뿌리나 역사가 몹시 다른 두 학과를 하루아침에 부대찌개처럼 뒤섞어버리기로 했다니…. 다행히 학과 통합 기도는 무산됐다.



 아이러니한 건 교육부가 인문학 진흥에 예산을 투입하고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가 하면 문화체육관광부에 ‘인문정신문화과’를 신설하는 와중에 지역대에서 이런 역발상적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박근혜 정부의 진심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교육부가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에 투입하는 돈은 앞으로 5년간 1조원 규모라고 알려져 있다.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대학들이 돈 몇 푼 더 따내려고 이렇게 수치스러운 짓에 내몰리는 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대학을 오로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전진기지쯤으로 여기지 않는 바에야 어찌 세상만사를 다 돈으로만 재단하려 드는가.



 세월호 앞에 모두 엎드려 제 죄를 불며 가슴을 치고 있는 요즈음도 남 탓만 하며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을 무시하고 질책하는 이들이 있다. 꼭 10년 전 타계한 고집쟁이 농사꾼 전우익 선생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그 어른이 살아계셨으면 이렇게 일갈하시지 않았을까. “혼자만 잘나믄 무슨 재민겨.”



정재숙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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