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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승무원은 마지막이야!

중앙일보 2014.04.28 00:10 종합 35면 지면보기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꽃이 바람에 진다. 채 피기도 전에 여린 꽃잎들이 허공에 흩날린다. 봄꽃처럼 싱그러운 열일곱 살 안팎의 고등학생 등 백수십 명이 봄바람에 꽃잎 지듯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엘리엇의 ‘황무지’가 아니더라도 4월은 우리에게 잔인한 달이다. 독재에 항거하다 희생된 4·19의 영령들 때문만이 아니다.



 1970년 4월 8일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34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5년 4월 28일 대구 지하철 공사장에서 도시가스의 폭발로 101명이 희생됐다. 토목건축이나 위험물 관리에 관한 입법적·행정적 체계가 완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급하게 땅부터 파헤친 안전의식 결여가 원인이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아침의 진도 앞바다, 수학여행에 나선 고등학생 등 470여 명을 태우고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물살 거센 맹골수도에서 좌초할 무렵, 25세의 신참 3등 항해사에게 조타실을 맡긴 대리 선장은 침실 안에 있었다.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방송으로 승객들의 발이 객실에 묶여 있는 동안 선장과 기관사 등 선박직 선원들은 승객 몰래 전용 통로로 배를 빠져나와 맨 먼저 구조선에 올랐다.



 그렇게 살아나온 선장이 한가롭게 젖은 돈이나 말리고 앉아 있을 때, 스물두 살의 임시직 승무원 박지영씨는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주고 대피시키느라 동분서주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언니는 왜 구명조끼 안 입어요?” 학생의 물음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승무원은 마지막이야.” 선장도, 항해사도 헌신짝처럼 내던진 책임윤리·직업윤리·생명윤리가 아르바이트 여대생의 입에서 울려 퍼졌다.



 그 절체절명의 재난 현장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때마다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 앞에 머리를 조아리던 어린 학생들은 가라앉는 배 안에서 조국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분노와 절망의 마지막 숨을 품고 바닷속으로 잠겼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생명윤리도, 우리 사회의 책임윤리·직업윤리도 함께 바다에 잠겼다. 행정안전부의 간판을 굳이 안전행정부로 바꿔 달면서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외치던 이 정부 아닌가.



 간판을 바꾼다고 내실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안전의 내실이란 정신적으로는 책임의식의 확립, 실제적으로는 치밀한 안전관리 시스템과 체질화된 훈련이다. 그 치열한 노력이 있었던가. “다시는 불행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 얼마나 많이 들어온 공염불인가. 몇 명 감옥 가고, 몇 명 물러나고, 결의대회 몇 번 하면 그만이었다. 책임지고 물러난다? 거짓말이다. 물러나는 것이 무슨 책임인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무책임 때문에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여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주고 실종된 여섯 살배기 오빠,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숨진 고등학생, 첫 제자들을 살려내고 배와 함께 물에 잠긴 새내기 여교사, 기우는 배의 난간에 매달려 제자들에게 구명조끼를 던져주던 담임교사,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 뛰어들어 구조에 힘을 쏟던 이름 없는 잠수대원, 이들의 희생과 헌신은 어둠 속 한줄기 섬광처럼 빛났다. 그런가 하면 비탄의 울음바다에서 무슨 사진이나 찍으려다 쫓겨난 정·관계 사람들의 처신은 얼마나 누추한가. 구조 현장의 지리멸렬한 지휘체계, 필수 인력과 장비의 늑장 투입, 재난 전문가가 배제된 재난대책본부의 관료주의…, 온 국민의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누가 ‘선진국의 문턱’ 운운하는가. 배 한 척 침몰해도 이렇듯 공황상태에 빠지는 터에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하면 어찌할 것인가. 안전관리가 엉망인 곳이 여객선 하나뿐일까. 우리 사회 각 부문의 책임의식이 혁명적으로 쇄신되지 않는 한 선진화의 길은 아득히 멀다. 재난 관련 법안들을 무더기로 방치한 채 오로지 정파 싸움에만 몰두해 온 정치권, 몸 사리기에 급급한 관료들에게 쇄신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지쳤다. 공직사회보다 역량이 뛰어난 민간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기업·공장·학교·병원·공연시설과 사회·종교단체들이 미흡한 여건에서나마 최적의 재난 대응 시스템을 스스로 갖춰나가면 무책임한 관료와 정치권도 마지못해 뒤따라오지 않겠는가.



 4월은 잔인한 달이지만 부활절의 계절이기도 하다. 다 피지 못하고 서럽게 진 우리의 꽃다운 넋들이 안식의 영혼으로 부활하기를 기원한다. 생명이 다하기까지 제자리를 지킨 박지영씨의 빈소에는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바친 조화가 놓여 있었다. 유언 같은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가 총체적으로 무너진 대한민국의 생명윤리를, 우리 사회의 책임윤리와 직업윤리를 일깨우고 있다.



 “승무원은 마지막이야!”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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