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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안전은 불편함에 대한 보상이다

중앙선데이 2014.04.26 23:45 372호 2면 지면보기
26일 오전 본사가 위치한 서울 서소문로의 한 건물 앞에선 대형 크레인이 차도 일부를 막아선 채 작업을 하고 있었다. 행인들을 위한 안전통로도 제대로 확보하지 않은 채. 행인들은 10여 층 위의 건물 보수작업 현장 아래를 무방비로 지나가야 했다. 길 건너 몇십m쯤엔 파출소, 걸어서 10여 분 거리엔 경찰청을 두고도 안전 사각지대는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무슨 사고가 나면 흔히 안전 불감증이 도마에 오르곤 한다. 그러나 잠시 와글와글할 뿐 슬그머니 불감증이라는 비정상이 정상으로 다시 자리 잡는 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세월호 침몰사고도 그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안전에 대한 불감증은 도처에서 효율과 욕심과 일등주의에 찌든 우리를 유혹한다. “설마 사고 나겠어” 하며 말이다.

 왜 그럴까. 구조적으로 안전에 눈을 감고, 위험을 알면서도 감수하는 게 당사자들의 당장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최근 며칠 새 논란을 부른,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직행좌석형 광역버스의 입석 운행도 그렇다. 지금까지는 제 시간에 버스를 타고 가려는 승객과, 그들을 꽉꽉 채워 돈을 벌려는 버스회사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공공의 가치인 안전은 뒷전에 밀렸다. 그러다 갑자기 안전규정을 지켜 입석을 금지하면 모두가 불편해진다. 승객은 제 시간에 움직이질 못하고, 버스회사는 수입이 줄어든다. 버스 대신 자가용을 몰고 나오는 이들로 교통은 더 나빠진다. 임시 증편이나 지하철 건설 등 대체 교통수단 마련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이 상황에서 “승객 불편을 덜기 위해 입석을 일부 허용하겠다”는 버스 회사의 설명은 “승객 안전은 뒤로 미루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안전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엄청난 비용과 대가를 들여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 무능한 관료들이 득실거리는 정부에만 맡겨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안전이란 불편하고, 귀찮고, 비싸고, 때로는 힘든 과정을, 사회 구성원들이 골고루 감수할 때 온전히 확보할 수 있다. 대형 사고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그 부담을 감당하겠다는 용의와 의지가 필요하다.

 이런 기본적 인식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전은 펄럭이는 현수막 속의 구호에 머물게 된다. 그러다 대형 사고가 또 터지고, 모두들 내 탓이오 가슴 치며 통곡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국가 개조를 거창하게만 볼 이유가 없다. 우리의 안이한 의식을 함께 바꿔 나가는 게 나라를 안전한 곳으로 고칠 수 있는 길이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생활 구석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안전수칙을 되살려내야 한다. 국면 돌파를 위해 총리·장관 몇 명 바꾸자, 말자 하는 식의 저급한 정치 논란보다 교통신호 하나 잘 지키려는 개인의 실천이 안전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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