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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간격 검은 리무진 … 주민들, 내 자식 보내듯 비통

중앙선데이 2014.04.27 00:16 372호 7면 지면보기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한 학생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량이 26일 학교로 향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이곳 주민들은 뉴스를 보지 않는다. 뉴스를 보면 눈물이 쏟아져서다. 경기도 안산시 고잔1동에서 백반집을 하는 김모(58)씨도 그랬다. 하루 종일 뉴스를 피해 야구 중계로, 홈쇼핑으로 TV 채널을 돌렸다. “매일 인사하던 이웃들이 TV에 나와서 울고 있잖아요. 어떻게 뉴스를 보겠어요….” 거리는 이미 상중(喪中)이었다. 가끔 마주치는 주민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었다. 길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목소리를 죽이고 소곤거렸다. “동네 전체가 장례식장”이라며 한 50대 남성이 한숨을 쉬었다.

세월호 침몰 슬픔에 빠진 고잔 1동에선 …

24일 오전 10시. 고잔1동의 좁은 주택가 골목으로 검은 리무진이 들어섰다.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검은 창문엔 근조(謹弔)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다. “어떡해… 어떡해….” 리무진이 노제(路祭)를 위해 단원고 정문으로 다가서자 유가족들이 차를 향해 울부짖었다. 길을 걷던 주민들은 검은 리무진을 마주칠 때마다 걸음을 멈췄다. 사라지는 리무진을 향해 고개를 숙이던 한 주민은 눈물을 닦아 냈다. 이날 검은 리무진은 30분 간격으로 한 대씩 고잔1동을 들어섰다.

세월호에 탄 단원고 학생 325명 중 셋에 한 명(107명·32%)이 이 고잔1동 아이들이다. 그중 80명이 숨졌거나 실종됐다. 빌라 건물마다 한두 명, 규모가 큰 단지형 빌라에선 15명이 넘는 학생이 사라졌다. 고잔동 근처 대형마트 두 곳에서만 10명이 넘는 종사자가 아이를 찾아 팽목항으로 내려갔다. 숨죽인 동네, 고잔1동을 23일부터 사흘간 바라봤다. 너무나도 슬픈 무성영화 같았다.

“학교 들어와 살기 좋아졌는데 … ”
고잔1동은 다세대주택과 연립빌라가 빼곡히 들어찬 서민 주거지역이다. 동네 전체에 5층이 넘는 건물이 없다. 이렇다 할 유명한 빌딩도 없다. 논밭이던 동네에 다세대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한 건 1980년대다. 안산 서부지역에 반월·시화공단이 생긴 게 81년. 정부는 시흥군과 화성군의 일부를 묶어 86년 안산시로 승격했다. 공단 근로자들의 주거를 위한 배후 도시가 필요해서였다. 고잔1동의 다세대주택과 빌라 대부분이 이 시점에 들어섰다.

주택이 들어서고 한참 동안도 북적댄다고 할 순 없는 동네였다. 20년 전인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빌라가 빼곡하진 않았다고 한다. “다들 아파트 살고 싶어 하잖아요. 여긴 상대적으로 외지고, 마을버스도 자주 안 다녔고….” 21년 전 고잔1동에 들어온 식당 주인 김성분(56)씨는 “처음 이사 오니 도둑도 많고 빈집도 많더라”고 말했다. 땅만 사 놓고 집은 대충 지어 놓은 곳도 많았다.

동네가 한층 번듯해진 게 학교 덕분이다. 고잔1동에 단원중·고등학교가 들어선 건 2005년. 학교가 생기니 주민들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새로 이사 온 이들은 대부분 인근 공단에서 일하는 생산직 근로자였다. 고잔1동에 40~50대 주민이 35%로 전국 평균(30.8%)보다 뚜렷이 많은 것도 학교 덕분이라고 동 관계자는 추정한다. 이번 희생자 가족을 비롯해 아이들을 중·고등학교에 보내는 이들이 이 연령대다. “학교가 들어오면서 살기 좋은 동네라는 얘기가 많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아이들 목소리가 자주 들리니까 분위기도 활기가 생겼다고 할까. 우리 동네 잘된 게 다 그 학교 덕인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김성분씨는 말끝을 흐렸다.

잘사는 동네는 아니어도 열심히 사는 동네다. 전체 가구 9172곳 중 기초생활수급가구가 250곳(2.7%), 차상위 계층 가구가 276곳(3%). 저소득 한부모 가정으로 지원받는 집도 137가구(1.5%)에 달한다. 이병인 고잔1동 주민센터 사무장은 “집값이 비싼 편은 아니지만 인근 고잔역 덕분에 교통도 좋고 녹지율이 전국 최고 수준”이라며 “특히 주민들이 성실하고 정이 많기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유난히 3대가 함께 사는 집이 많다. 엄마·아빠가 모두 일하러 가면 할머니·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돌보는 집들이다. 부모는 실종된 아이를 찾아 진도로 내려가고, 지금은 노인과 아이만 남은 집들도 여럿이다. 원고잔공원 인근의 한 2층 연립주택도 그중 하나였다. 8세짜리 꼬마가 80대 할아버지와 함께 형을 기다리고 있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저를 붙잡고 펑펑 우시더라고요. 아직도 배 속에 공기가 있겠느냐고….” 2층에 도시락을 전하고 돌아선 통장이 눈물을 닦았다.

“아이들 왁자지껄 소리 그립습니다”
동네 전체가 슬픔에 빠진 건 그만큼 서로 친밀했기 때문이다. 주택가에 몇 안 되는 상점 중 문을 닫은 곳이 더러 눈에 띄었다. 단원고 뒷문 근처 빌라에 사는 이은화(52)씨는 “이 시간쯤이면 아이들이 몰려 내려가는 소리에 몸살이 났었는데, 지금 그 왁자지껄한 소리가 너무 그립다”고 말했다. 놀이터에서 만난 네 살 아이의 엄마는 “친한 동네 언니가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일하며 악착같이 기른 아들이 아직 물속에 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따금 커다란 울음소리가 터진다. 고잔동 한 술집 주인은 “어제 딱 두 테이블 받았다. 손님 셋이 와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술만 들이붓더라. 계산하러 일어서서는 ‘진도에서 아들 건지고 왔다’며 울음을 터뜨리더라. 순식간에 가게 전체가 눈물 바다가 됐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갈수록 주민들의 정신적 고통이 심각해질 거라 우려한다. 경기도합동대책본부는 23일부터 희생·실종 학생이 집중된 고잔1동과 와동·선부1동에 16개의 심리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상담소 관계자들은 이웃 중에서도 희생자 또래가 겪는 무력감이나 죄책감을 위험하게 바라본다. 상담소를 찾은 한 고등학생은 “길거리에서 사람이 웃는 모습만 봐도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난다”고 털어놨다. 김진영(30) 통합재난심리센터 사회복지사는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당시 경험이나 감정을 자세히 물어선 안 되고 단정적으로 조언하거나 가치 판단을 강요하는 건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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