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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면 장례 치를 줄 알았어요 … 공직자 아니면 이것저것 알아볼 텐데”

중앙선데이 2014.04.27 00:30 372호 7면 지면보기
세월호 침몰 사고로 실종된 전수영(25·가운데 검은 옷)씨가 지난해 스승의 날, 반 학생들에 둘러싸여 축하를 받는 모습. [전수영씨 페이스북]
지난 25일 밤 진도 팽목항. 전제구(53)씨는 홀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상황판 앞을 서성대고 있었다. 진도에 내려온 지 사흘째. 그의 오른쪽 뺨엔 새끼손톱만 한 검버섯이 폈다. 광대뼈와 콧등은 검게 그을렸다.
전씨의 딸은 안산 단원고 2학년 2반 담임 교사인 전수영(25)씨다. 세월호가 검푸른 바닷속으로 사라졌던 지난 16일 오전. 딸은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먼저 입힌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열흘. 딸은 아직 저 야속한 바닷속에 있다.

실종된 단원고 교사의 공무원 아버지 전제구씨


산업통상자원부 해외투자과 팀장으로 재직 중인 전씨가 진도에 내려온 건 사고 8일 만인 지난 23일. 실종된 딸 생각에 가슴은 타 들어갔지만 공무원이란 신분 때문에 주변에 알리지도 못했다.

“한 이틀이면 금세 꺼내 장례도 치를 줄 알았죠. 내색 않고 출근했었는데 뉴스로 딸 이야기가 알려지는 바람에 양해를 구하고 내려왔습니다.”

팽목항에 오자마자 신원미상 시신의 인상착의가 적힌 상황판만 하루에도 수백 번씩 들여다봤다. 실종자 가족 텐트 중에서도 상황판에 가까운 텐트에 자리를 잡았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백예순일곱 번째 희생자, 여성, 학생 추정….”

사망자 인양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아버지의 가슴은 무너진다. 반복되는 방송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학생 추정’이란 말에 고개를 떨궜다. 구조팀에선 ‘따님은 성인이어서 지문 등록이 돼 있으니 확인하실 필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상황실 주변에서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굳이 여기 와서 매번 확인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지문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실종자 수색이 가장 활발할 거라던 지난 24일.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성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곤혹스러워하는 동안 전씨는 가족들 뒤에 까치발을 딛고 서서 지켜봤다. 가족들은 “왜 민간 잠수요원을 제대로 투입하지 않느냐” “우리 아이 얼굴 알아볼 수 있을 때, 한 번 안아 볼 수 있을 때 꺼내 달라”는 성난 말들이 오갔다.

상황이 답답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전씨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아꼈다.

“쉬이 나설 수가 없어요. 공무원이 아니었으면 나도 이것저것 알아보고 했을 텐데….”

30년 가까운 공직생활로 신중함이 몸에 밴 그도 초조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을까. 팽목항 토론 상황을 생중계로 방영하는 진도실내체육관으로 급히 발길을 돌렸다.

25일이 돼서야 부인과 둘째 딸도 진도에 내려왔다. 작은 배낭 하나뿐이던 전씨의 좁은 자리에 가방이 몇 개 늘었다. 그는 팽목항에 가겠다는 가족들을 말렸다. 조용히 체육관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려 퍼지는 통곡, 비명 소리를 듣게 하기 싫어서였다.

“일요일까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다음부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사무실을 마냥 비울 수 있는지… 출근할 수도 없고….”

착실한 맏딸이었다. 외고를 졸업하고 유명 사립대 국어교육과에 들어가 선생님이 됐다. 전씨는 “부임 첫해에 맡은 1학년 애들을 올해에도 만나고 싶다며 2학년을 맡았다. ‘첫 정’을 준 아이들과 추억을 쌓으러 간다고 좋아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고 당일 날 오전 9시10분쯤 아이 엄마한테 전화가 왔는데 딸에게서 ‘배가 가라앉는다’는 문자가 왔다고 했어요. 우리 부부는 그냥 나올 수 있는 건 줄 알았지. 바다가 이렇게나 무서운 줄은 몰랐지요.”

구조 당국이 설치한 조명과 방송사 조명으로 팽목항 주변은 대낮처럼 환했다. 하지만 딸을 집어삼킨 저 멀리 밤바다는 칠흑처럼 어두웠다. 전씨는 이따금 검은 밤바다를 곁눈질하다 상황판을 보러 가겠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내일 또 보자”는 인사는 팽목항에서 달갑지 않은 인사가 됐다. 하루라도 빨리 실종된 가족을 찾아 진도를 떠나고 싶은 가족들의 바람 때문이다. 전씨도 발길을 옮기며 “서울에서 보자”는 말만 했다. 건너편 섬 너머 사고 해역에선 밤새 2분 간격으로 조명탄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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